회사 선배가 부쩍 요즘 답답해한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일치되는 답답함이 존재한다. 회사생활을 하며 답답함 없이 일한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상사에 대한 답답함, 후배들에 대한 답답함, 시스템에 대한 답답함, 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 등 답답함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다. 선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를 보는 느낌이 든다.
회사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행복함만을 안고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회사원 중 고민과 답답함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라는 곳은 조직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시스템과 롤에 맞게 움직여지는 곳이다. 자율성은 많이 사라지고 회사의 룰에서 움직여진다.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고난한 시간들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회사원들은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다.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스트레스와 답답함, 고단함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런 고민들이 존재하지 않는 회사라면 너무 좋은 직장일 것이다. 하지 마 그런 회사는 없다. 아마 회사에서 고민이 가장 크게 생기는 이유는 사람의 문제일 것이다. 누구와 같이 일하고 누구와 고민을 이야기하며 풀어가고 누구와 같이 성장해 나가느냐가 회사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정말 서로가 너무 달라 서로를 힘들게 하는 관계라면 헤어지면 좋겠지만 회사는 그렇게 쉽게 사람들을 헤어지게 하는 구조가 아니다. 서로가 달라도 맞추어가며 일을 해 나가야 하는 구조이다. 각자 힘들어하고 답답한 부분들이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선배와 이야기하며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린다.
"답답함도 우리들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지 않을까! 우리 그릇이 내용물을 담을 수 없을 만큼 작아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히 답답함을 이야기해도 그건 나의 문제이지 그들의 문제는 아니잖아. 우리는 그들의 문제라 생각해서 솔직히 말해도 결국은 그 솔직함이 화가 되어 나에게 다가올 때는 나의 그릇이 작았던 것이고 더 이상은 솔직하게 말하지 말자는 결론이 돌아오는 게 현실이지 않을까. 내 그릇을 더 크게 키우고 말을 더 아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돼"
선배와 내가 짧게나마 결론을 내린 것이다. 누구든 솔직하게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솔직함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말들이 오히려 화로 돌아올 때는 굉장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감정적이다. 아무리 이성적이란 사람도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 회사원들은 늘 그런 감정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힘든 선배이고 답답함을 주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답답해하는 사람들에게만 화살을 돌리는 건 정말 우리 그릇이 작은 듯 해. 답답함을 떨쳐버리고 다시 스스로의 그릇을 키우도록 하는 게 나을 듯 해"
우리의 답답함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났다.
지금은 작은 그릇이지만 부족함을 채워 그릇의 크기를 넓혀나가야 한다. 회사가 그 시간을 기다려줄지는 모르겠으나 해볼 때까지는 해 봐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시작도 생각의 크기도 나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듯이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거라 확신하며 누구를 탓하기보다 나를 더 튼튼히 단련시키려 한다.
[일의 격 -신수정 지음] 중
[리더십이란 체스가 아닌 정원 가꾸기와 같다. 리더는 정원사처럼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나무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원사는 환경을 만들어줄 뿐 자라는 것은 나무 스스로다” 이 글을 읽자 '아하!'라는 탄성이 나왔다. 불행히도 장기나 체스의 말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장기를 두는 사람, 체스를 두는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리더가 리더십을 체스나 장기로 여긴다면 이는 리더 자신이 구성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통제하고 지시하겠다는 의미다. 구성원들은 리더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일 뿐이다. 또한, 구성원들은 체스나 장기의 말처럼 필요가 없어지거나 상대에게 패배하면 언제든 퇴출당하게 된다.
* 「룬샷 〈사피 바칼, 흐름출판. 2020) ]
물론 '정원 가꾸기'도 리더십을 설명하는 데 한계는 있지만, 분명 '체스판 보다 훨씬 나은 은유이다. 리더는 정원사처럼 환경을 만들어준다. 구성원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땅도 갈아주고, 물도 준다. 구성원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들을 뽑아준다. 그러나 자라는 것은 구성원들 스스로이다. 리더는 그들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조성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자기가 잘나서 잘 자란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 그 뒤에는 정원사의 땀과 노력이 있는 것이다.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의 솔직함은 오히려 세로를 찌르는 흉기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직함에 앞서 서로 신뢰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개개인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소통한다. 서로에 대해서 존중이 생기고 상사에 대해서도 존경의 마음이 생기면 서로의 말을 기꺼이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못하는 것만 보지 말고 '잘하는 것'을 보라. 여러 가지를 실험해보고 잘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큰 기업일수록 이렇게 하지 못한다. 잘하는 것을 탁월하게 치고 나가기보다 못하는 걸 끌어올려 오만가지 모두 나빠진다.
될까?'를 파악한 후 그 비결을 확산하는 것이, 안 되는 것의 원인을 찾아 잘 되게 노력하는 쪽보다 빠르다. 물론, 후자의 시도로 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다. 그러므로 후자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전자에 더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가볍게 걷기만 해도 꼭대기에 쉽게 오르지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올라가려면 힘껏 뛰어도 쉽지 않은 법이다.
요즘은 어디나 사람의 이슈로 고생하는듯하다. 비둘기 같은 순결함만으로 부족하다. 성경의 말씀처럼 비둘기처럼 순결하되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공자의 덕이 있으되 한비자의 단호함도 필요하다. 이 원칙은 크던 작던 어떠한 조직에든 적용된다.
상사에게 직언을 할 때는 직설적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사의 이의를 섞어야 한다. 이를 통해 상사도 이기고 제안자도 이기고 조직도 이기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억하시라. '직언은 상대의 이익을 섞어서 해야 한다.
신뢰란 상대를 인간으로 보고 존중하는 것이고 그가 잘할 수 있지만 또한 약하다는 것(악하다는 것이 아니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신뢰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 완벽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