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C사 퇴사 이후의 일상(1)
시원섭섭하게 C사를 퇴사한 그 다음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는데 느닷없이 핸드폰이 울렸고, 느닷없이 시간 될 때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발신자는 C사 팀장님이었다.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 띄우며 전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가 연결된 팀장님과 근황을 주고받을 것도 없었다. 불과 이틀 전에 만났으니까. 그녀는 잘 지냈냐는 안부를 짧게 건넨 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해보실래요?"
어..., 음..., 아.... 이 세 가지의 외마디를 거듭하며 내 심정을 대변했다. 설마 팀장님한테서 이런 제안을 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 깜짝 놀라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다.
당혹감만 드러내자 팀장님은 급한 일이 아니라며 여유롭게 생각하고 답해달란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내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는지 벌써부터 C사 프리랜서가 되면 어떤 프로젝트를 주로 맡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우선 오후에 확답을 주겠노라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팀장님이 알려준 정보들을 한데 정리해보았다.
내용을 들어보니 인턴 때의 월급보다 (물론 적어졌지만) 그렇게 크게 금액 차이가 나지 않았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편히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어찌 되었건 커리어를 계속 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장점이 꽤 있는 제의였지만, 쉽사리 프리랜서 일을 하겠노라고 답할 수 없었다. 바로 얼마 전에 내가 탈락한 사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들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속에서 먼지 같은 게 표류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끈적한 찌꺼기가 들러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찜찜했다.
결국, 다시 핸드폰 전원을 켰다. 이번에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내 사정을 잘 아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혼자서는 답을 못 내리는 고민이었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지 마. 하지 마.”란 말만 연발했다.
"왜?"
"야.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즉, 친구의 말을 이러했다. 본인이 떨어트려 놓고 퇴사 다음 날 바로 프리랜서 제안하는 그 심보가 뻔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의 단호한 말을 들으면서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당장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장단점을 나눠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직자의 신분으로는 꽤 괜찮은 조건 같았다. 친구가 말한 감정적인 부분만을 빼면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나는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자 메신저 창을 열었다.
[네. 말씀해주신 그 프로젝트에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계약서 내용은 언제 자세히 볼 수 있을까요?]
전송 버튼만 누르면 됐다. 하지만 보내려고 하는 순간 마음속이 꿈틀거렸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음에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퇴사 전날, 아쉽게 됐다며 그저 위로만 건넸더라면 나는 기꺼이 프리랜서 제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규직 사원으로는 불필요한 인재인데 프리랜서용 인재로는 그냥저냥 적합하다'라는 속뜻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나는 그걸 못 본 척하고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이 이미 상할 대로 상해있었다. 끝내 충동적으로 거절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지만 프리랜서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
이 소식을 고민 상담해준 친구에게도 전해주었다. “그냥 하기 싫어서 거절했어.”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라 했다. 내가 무조건 프리랜서 제안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면서 말이다. 친구의 다소 격한 반응에 나도 덩달아 놀랐다.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가 그냥 하기 싫다면서 일을 거절하는 경우는 처음 봤거든.“
그렇기는 했다. 하기 싫다고 해도 장점이 있으면, 하다못해 그럴듯한 이유가 있으면 늘 했으니까. 당장의 감정보다는 매번 앞일을 생각하며 행동했다. 친구의 말대로였다. ‘그냥’이란 말을 앞세워 결정을 내려본 건 정말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년의 내가 알게 되면 기함을 할 일이었다. 왜 이렇게 철이 없어? 라며 비난을 보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불편했던 속이 차차 풀리기 시작했다. 부유하던 먼지도, 끈적한 찌꺼기도 모조리 사라져 갔다. 어린아이같이 구는 거 제법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인생, 가뿐하게 사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이렇게 시작한 돌발행동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원래 시작이 어렵지, 그다음은 어렵지 않은 법이다.
마침 상반기 채용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때였다. 취업 사이트 메인에는 구인 중인 수 백 개의 회사 목록이 떴다. 예전 같았으면 되든 말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선 다 찔러보았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직무를 뽑지 않는다면 지원서를 넣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내가 붙을 것 같은 회사의 공고가 뜨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원하지 않은 회사면 그냥 넣지 않았다.
성격도 조금 거침없어졌다. 원체 낯 가리는 성격이라 지인에게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는데 요새는 안부 인사에 적극적이게 됐다. 정확히는 적극적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부끄러움을 잠시 치워두고 그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거나 감사한 마음을 자주 전했다.
그리고 취미가 새로 생겼다. 바로 소설 쓰기다. 나는 C사 퇴사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다. 학창시절 내내 만화에 아주 푹 빠져 살았고, 그 영향으로 디자인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예리한 사람이라면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만화가가 되고 싶은데 디자인과를 갔다고? 만화과는 왜 안 가고? 맞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렇게 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엄마가 반대했다. 취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는 만화 전공은 우려스럽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 만화가가 되고 싶어, 라고 어릴 때의 내가 그리 말하면 항상 엄마의 입에는 이 말이 튀어나왔다. 너 어떻게 먹고살래?
둘째, 나는 예로부터 귀가 얇았다. 반대하는 엄마를 다시 반대할 만큼의 줏대가 없었단 소리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파도가 치는 대로 휩쓸리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꿈을 관철하지 못하고 디자인과로 진학하게 됐다. ‘정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디자인과를 가. 같은 예체능이잖아.’라는 엄마의 의견에 의해서였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당시 나는 미대는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라는, 꽤나 멍청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미대는 거기서 거기가 아니었다. 디자인과 만화는 얼핏 비슷해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분야였다. 그 사실을 슬프게도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남몰래 만화과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번갯불에 콩 볶듯 급하게 준비한 입시가 성공할 리 없었다. 디자인학과 탈출에 끝내 실패한 나는 복학했다. 그 뒤로도 계속 만화를 공부했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었다고 단언하겠다. 나는 본디 줏대가 없는 인간인지라 복학을 함과 동시에 어릴 적 꿈은 빠르게 버렸다.
하지만 그때 완전히 버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C사를 퇴사하고 나서 적어내린 내 버킷리스트에는 ‘창작해보기’가 들어가 있었다. 이야기를 창작하는 일을 여전히 하고 싶었다. 만화라는 형식을 띄지 않아도 좋았다. 사실 어릴 때도 굳이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뭐가 됐든 머릿속에 맴도는 여러 이야기를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싶었고, 그 수단으로써 내가 그나마 자신 있는 그림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본질은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단 마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C사 퇴사 이후 마침 빈 시간이 많이 생겼고 내 눈앞에는 키보드가 있었다. 컴퓨터에는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다.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망령같이 남아 있던 꿈의 갈망을 이제라도 해소하기 위해 타이핑을 치기 시작했다. 논펵션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서 이게 일기인지 소설인지 당최 모를 글을 썼다. 지나치게 형식을 파괴하는 바람에 심히 창의적인 글(이라 하고 잡소리)을 쓰기도 했다. 어째 엉망진창일 뿐인 취미 활동이었지만 쓰는 나는 즐거웠다. 재밌는 게임이라도 하듯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런 일상을 한 달 동안 보냈다. 소설의 글자 수는 어언 10만 자를 넘어가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있었음을 쓰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또 깨달았다. 글쓰기가 더는 취미가 아니게 되었음을.
온종일 붙잡고 있는 이 소설은 이미 흥미를 충족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있었다. 어느새 이 소설은 나의 벗이었고 나의 위로였으며 나 자신이었다. 슬슬 글을 쓰는 게 즐겁지만은 않은 시점에 다다랐음에도 나는 무아지경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쳤다. 어떻게든 완결을 내서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졌다. 작가라는 꿈이 새로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