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억의 교향곡
지금의 시절에 문리과대학을 이야기하면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인문학 어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으로 세분화하고 계열별로 나누는 최근의 추세에 비추어보면 극히 구시대적인 이름이 분명합니다. 이게 무엇이냐고 굳이 묻는다면 문과(文科) 대학과 이과(理科) 대학을 합한 이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조합이 문리과대학이라는 범주 안에는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그냥 단과대학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은 어색한 학과의 조합이 형성되곤 했다는 말씀입니다.
소위 공과대학, 음악대학, 미술대학, 의과대학, 치과대학과 같이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어문학이라든지 수학 물리학 등의 공존이 가능한 조합, 그것이 문리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경우의 수는 문리대라는 공간을 낭만 가득한 곳으로 여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群像)으로 문리대가 자주 거론되었습니다.
제가 구태의연한 문리대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의과대학 소속으로 입학하는 줄 알았던 의예과 시절, 우리의 소속은 문리과대학 의예과였습니다. 하지만 ‘왜 의과대학 소속이 아니야?’ 불만스럽게 생각했던 몇 주가 지나자 스스로 문리과대학 소속이 맞겠구나, 싶었습니다. 커리큘럼 대부분은 교양과목으로 채워졌고 전공 필수나 전공 선택이 몇 과목 들어있는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차라리 삭막한 의과대학의 그것보다는 문리대가 적합하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수업만 듣는다면 의예과의 소속이 의대든 문리대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대학 생활의 첫 2년을 수업만 받으며 보내기에는 너무도 반짝반짝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대학 친구들의 예과 시절을 문리대생으로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체육대회라도 하는 날이면 문과 계열과 이과 계열의 감성을 온몸으로 주고받으며 지냈던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모교에 문리과대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과대학과 이과대학도 없어지고 이제는 전공별로 세분되어 인문, 사회, 자연 등으로 갈라진 지 오래입니다. 의예과도 이제는 의과대학으로 자리 잡아 예과 교육을 모두 담당한 지 오래전입니다. 이 정도면 교육체계가 자리 잡았다고 해도 될 일입니다. 그러나 낭만을 이야기하고 감성을 갖다 대자면 아쉬움과 추억의 깊이는 살짝 얕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 감성과 낭만 타령은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대학이 젊은 날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내면의 심연을 다루기에는 현실이 너무도 혹독해졌습니다. 신입생은 입학과 함께 취업을 준비하며, 심한 경우 원하는 학과에 다시 지원하기 위해 반수를 준비합니다. 이 정도면 대학이 아니라 학원이라 불러도 될 판입니다. 이미 대학교의 수도 포화를 넘어선 느낌이며 100% 가까이 등록하는 일도 어려워서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일은 꿈조차 꾸기 어려워졌습니다. 부실대학의 이름표를 다는 일은 단지 종이 한 장의 차이일 뿐이며, 출산율의 저하는 입학 지원자의 수가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혹시라도 시대가 바뀌면 대학의 기능을 대신하는 상급학교가 생기는 건 아닐까요? 이제 대학이라는 이름을 대신할 만한 대명사(代名詞)로는 무엇이 될까요? 바라기는 부디 입가에 스르르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단어이면 좋겠습니다. 부디 대학만이 줄 수 있는 낭만과 감성이 그대로 살아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