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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Aug 07. 2024

브랜드의 기억들

이제는 없는 것들

(이미지출처:프리피아의 화폐수집) 화질도 구린 그 시절의 맥주



요즘도 마트에 가면 종종 케첩이나 마요네즈, 버터에 눈이 가는 일이 생깁니다. 때로는 미원이라는 조미료가 아직도 나오나? 후추는 무슨 브랜드가 있나? 더 나아가 연양갱이나 가나 초콜릿은 요즘도 있나? 궁금해서입니다. 이런 품목들이 궁금한 이유는 소위 같이 늙어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밥상에서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케첩이나 버터를 뜨거운 밥에 비벼 먹는 일쯤은 아마도 내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에 해당할 것입니다.  

   

어느 회사 것이 맛있다더라, 어느 브랜드가 좋다더라는 소문에 워낙 약한지라 특정 회사의 품목이 한 번 히트 치면 반드시 그 후발 주자가 생겨나는 게 그 바닥의 습성입니다. 이것이 서로 상생(相生)의 길을 가면 좋겠지만, 소비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거나 큰 수요의 물결을 예측하지 못하고 거스르다 보면 어느 하나쯤은 자연스레 도태되는 게 다반사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라면처럼 큰 물결을 이루는 게 있는가 하면, 그런 게 있었나 싶은 것도 주변에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이쯤 되면 반드시 한두 종목 정도는 짚어주어야 맛이 나겠지요?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친구들 사이에서 문화 볼펜과 왕자 볼펜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유라야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쓰고 난 뒤 생기는 잉크 덩어리가 모나미에 비해 덜 생긴다는 이유입니다. 노트 필기 때마다 생기는 볼펜 똥은 정성스레 필기하고 나서 노트 여기저기를 더럽히는 원흉 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는지도 모른 채 문화연필은 그냥 별 볼 일 없는 중소기업으로 전락했고, 회사가 없어진 탓에 왕자 볼펜을 기억하는 이는 이제 거의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입니다만 이젠벡(Isenbeck)이라는 맥주가 TV와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조선 맥주와 동양 맥주라는 거대한 산맥 사이에서 상당히 선전(善戰)하는 듯했지만, 단 몇 년 만에 부도를 맞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긴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회사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대대손손 대물림하는 가업이나 기업이 극히 드문 시대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미국인 친구가 한국의 생소한 간판 문화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Since라는 단어입니다. 가게의 역사를 나타내는 의도였겠지만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이 단어는 최소한 한 세기 정도는 지나야 붙이는 단어랍니다. 그것이 정확히 한 세기인지, 아니면 몇십 년 정도인지는 정한 기준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처럼 2000년 이후의 짧은 기간에는 Since를 붙이지 않는다는 거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가업을 이었다, 대대로 이어서 한다는 개념이 타국에 비해 좀 약합니다. 기껏해야 대장간이며 방앗간 정도의 영세 업종 정도나 가능할까,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거의 없는 게 사실입니다. 혹시 모르지요. 제가 기억하는 어릴 적 기업들이 온갖 풍파를 이겨내고 대대로 살아남을지 말입니다. 부디 그러기를 바랍니다. 아빠 어릴 때도 있었어. 할아버지 어릴 때도 쓰던 물건이야. 그리되면 아들딸이나 손주들과의 유대감도 제법 돈독해질 게 분명합니다. 신화로만 남아 있는 단군 할아버지만 거론하기에는 시절이 너무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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