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욱곤 Sep 05. 2024

신발 때문에 미련하다고?

딱 그런 소리를 듣게 생겼습니다.

(이미지출처: 네이버쇼핑) 딱 이런 신발이거든요.


신발, 이 녀석은 시간이 지나 어느 시기가 되면 계속 신을 형편이 못 되어 새 신을 사야 할 뿐 아니라, 때로 다양한 목적에 따라 필요한 신발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집의 신발장에는 내 신발이 몇 켤레 정도는 늘 있습니다. 어릴 적 살림이 궁핍했던 시절의 신발이란 내게 귀중한 보물, 그 이상이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소중하여 아끼고 아끼다가 작아져 신지 못한 경우도 생기고, 그렇지 않으면 조악한 품질 때문에, 많이 사용하지도 못하고 해지는 경우도 참 많았습니다. 고무신에서 시작하는 내 신발의 기억은 늘 애증(愛憎)의 기억이지만 피할 수 없는 필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백화점에 들렀다가 신발 한 켤레를 샀습니다. 요즘은 신발이 참 좋습니다. 그날따라 내게 온 신발은 부드럽고 편했습니다. 그럼에도 내 발에 적응시키려는 과정을 거치려고 주일에 그 신발을 신고 교회에 갔지요. 그런데 오고 가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오른발이 불편하고 아팠습니다. 물론 양발의 크기가 미세하게 차이는 난다지만 이 정도로 아프단 말이야? 궁금했습니다. 괜히 잘 묶었던 끈도 풀어주고 도중에 벗어도 보며 왔지만 별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그러니까 애초부터 잘 보고 사라니까 그런다며 아내에게 잔소리도 듣던 판입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출근도 그 신발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가지런히 놓인 신발의 크기가 서로 다른 짝짝이입니다.          


벽면을 기준 삼아 반듯이 놓아도 보고 바닥을 기준 삼아 반듯이 세워보아도 오른쪽 신이 확연히 작았습니다. 아니! 살 때 확인해 보지 않았어? 네, 확인했지요! 그런데 왜 이래?
 

답은 포장 과정에 있었습니다. 다른 매장과는 다르게 그 매장은 좌우를 개별 포장하여 넣어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치수가 딸려 온 것입니다. 다행히 매장에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연신 죄송하다며 흔쾌히 바꿔주었습니다. 그런 사연도 모르고 신을 적응시킨다는 이유로 내 발을 혹사했고 그 결과물로 조그마하지만, 뒤꿈치의 한 면이 헤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덕분에 며칠을 상처 보호에 공을 들여야 했고 기저질환 때문에 언제나 상처가 꼬들꼬들해질지 아직은 모릅니다. 주변에서 미련하다고 흉봐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제게도 말 못 할 억울함은 조금이나마 있습니다. 미련함에 대한 대가치고는 쓰리고 아프기에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여러 모양으로 나를 건들고 괴롭힐 모양입니다.         


 

살면서 이 정도의 상처 정도야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나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조금은 마음 쓰며 살아야겠다. 결심하고 깨우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흔들리고 내 몸이 무너지며 삶에 큰 영향을 끼칠만한 상처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그것이 몸의 상처든, 마음의 상처든, 다양한 방법으로 치유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늘 든든하게 지내는 중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습관에서의 일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