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방사람이 싫으세요?
영어를 배우다 보면 특유의 intonation이라든지 발음, 악센트를 최대한 원어민에 가깝게 해 보려 노력합니다. 물론 그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에 어찌 따를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노력하면 가까워지려니 하며 애를 씁니다. 그런데 연습해도 어쩔 수 없이 어설플 수밖에 없고 눈감고 들어도 구분할 정도로 표가 납니다. 오늘 책을 읽다 보니 같은 유럽대륙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아일랜드 억양, 독일 억양, 프랑스 억양을 쓴다는 그 표현 뒤에는 말하는 사람의 고향이나 고국을 대략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하기야 같은 대한민국을 누비며 살아도 고향 도둑은 할 수 없을 듯합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전북 익산이 고향입니다. 당연히 충청도 억양이 더 많이 묻어 나오는 사투리를 쓰며 살아왔기에 내 고향에서야 그렇다 쳐도 행여 서울을 가더라도 시골쥐처럼 촌스러운 어투는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 정도는 가지고 살았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습니다. 경기도에 자리한 종합병원에 취직하고 동료와 이야기하던 도중에 대략적인 고향이 들통났습니다. ‘고향이 충청도 세요? 아니면 그보다 밑이세요?’ 그제야 내 말투에 밴 말의 뿌리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도 그럴 게 30년 넘게 살아온 지역의 말투가 어찌 서울말과 비슷하겠습니까? 語不成說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나마 낫습니다. 경상도나 전남 지역은 그 정도가 좀 더 심하지요. 재채기나 미모처럼 숨기려 해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와중에 살아오면서 제가 가장 속상한 건 뿌리 깊이 벤 지역감정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가 남긴 최고의 악(惡)이 아닌가 싶은 정도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내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서로를 반목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상대를 경계합니다. 땅도 넓지 않은 나라에서 겪어야 할 업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이 영국에도 있는 모양입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간의 갈등은 멀리 떨어진 우리도 익히 들어 알 정도이니 말입니다.
사실 그냥 놔두어도 될 정도의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아니면 서로 대대로 노력해야 할 사안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갈등이 모여서 저절로 형성된 게 아니요, 외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면 고쳐야 맞는 일이긴 합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걱정하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이 모여서 지역이나 나라의 (큰 뭉치의) 가치관이 된다면 그다지 심각한 사안이 아닙니다만 그 다름이 우리를 수많은 방향으로 서로 갈라지게 한다면 그 또한 생산적인 현상은 아니기에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냥 사투리나 말투는 귀여움이나 구수함을 표현하는 정도로만 보면 될 일입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그렇게 자라온 걸 어쩌란 말입니까? 살면서 중요한 건 내 고향이 어디냐? 어디 사투리를 쓰느냐? 가 아니라 어떤 가치관이나 사고(思考)를 하며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아직도 특별한 이유 없이 저쪽 사투리를 쓰는 경상도인이 밉고 전라도인이 미우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