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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May 01. 2023

맑은 소리, 고운 웃음

영창피아노는 아니고요. ㅎㅎㅎ

(이미지출처:Int'l Model Agency About MODEL) 아빠미소를 짓게 하는 아이의 미소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무엇인가? 묻는다면 저는 다름 아닌 사람의 소리가 아닌가! 생각하며 지내 왔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수많은 악기 소리보다 사람의 노랫소리가 최고라며 지내 오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교생선생님께서 뜬금없이 질문 하나를 우리에게 건네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뭘까? 아이들의 입에서는 정말 다양한 대답이 나왔지만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자기는 이렇답니다. ‘석양이 지는 시골길을 광주리 하나 지고, 7살 난 딸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하며 집에 가는 엄마와 딸의 소리.’ 생각만으로도 잔잔한 미소가 훑고 지나갑니다.     


저도 집과 직장 사이를 걷다 보면 수많은 아이를 만납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 뿐 아니라, 다행스럽게도 음지의 아이보다 밝고 순수한 아이들을 더 많이 보는 행운을 누립니다. 내가 저 나이 때는 무엇을 했을까? 어떤 꿈을 가지고 지냈을까? 추억해 보고 아이들이 품은 싱싱한 꿈을 은근히 응원하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느 하루, 물을 사러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계산하려고 계산대에 나왔더니 초등학교 4, 5학년쯤 되는 사내아이가 군것질거리 몇 개를 계산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카드 잔액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뜨자 아이는 당황하면서 내내 아쉬운 표정으로 나가려 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불러 세우고 네가 집은 과자, 다 가져가라고 했지요. 그리고 걔 것까지 모두 계산해 주었습니다. 가서 맛있게 먹고 공부 열심히 해라! 감사합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제게 아이들은 그런 존재입니다. 얼마나 배고팠을까?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돈이 모자랐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런 마음이 먼저이지, 어떻게 돈이 모자란 녀석이 간식을 그리 많이 산 거야? 그런 마음은 아닙니다. 그만한 나이의 아이들이 가진 해맑은 웃음과 고운 대화만으로도 값을 이미 치른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가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이 그러하셨습니다. 오다가다 이것 먹고 가라고 하셨고 예쁘다 예쁘다, 칭찬도 많이 하시고 머리도 많이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모든 아이에게 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철이 없었다지만 눈빛만으로도 진심으로 예뻐하시는구나 알아차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요즘의 세태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는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다른 의도를 품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반응 뒤에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 큽니다. 그 사회적 책임의 뒤에는 어른의 주도로 형성된 사회의 어두움이 있으며, 그 어두움이 신뢰마저 깨트린 셈입니다. 





동네의 아이들은 그 동네의 어른들이 키운다는 얘기를 자주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웃 어른들이 내 자식 챙기듯 챙겼습니다. 저도 부모님께서 외출이라도 하시면 옆집에서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고 형, 누나들과 내내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집에 옵니다. 도울 수 있으면 모두 그렇게 돕고 살았습니다.     


요즘에는 지나가는 아이에게 예쁘다, 귀엽다는 말도 조심스러운 시절입니다. 내 눈에서 떨어지는 건 꿀인데, 그 꿀을 엉뚱한 걸로 받아들이실까 봐 전전긍긍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갑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게 따뜻하게 사는 것인가? 이 따뜻함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 어려운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가족이나 친한 지인이 아닌 다음에야 내 생활이나 생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드러내기가 부담스러운 요즘입니다. 세월이 하 수상하여 자꾸 나를 방어하게 되고 남에게서 멀어지는 게 더 나은 세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얇은 비누향기를 풍기며 여고생 둘이 제 곁을 지나갑니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내용을 슬쩍 훔쳐 들으니 아마도 같은 반 남학생 얘기를 하나 봅니다. 그래! 참 좋은 때구나. 그렇게 맑고 순수하게 자라라. 다 크고 나면 그 풋풋한 열매, 주변에 잘 나눠주는 삶을 살거라. 축복하다 보니 내 눈가에 지어지는 주름 몇 개 덕분에 가는 길 내내 행복함으로 물들어 따스한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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