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떳떳하게, 자신 있게!
어릴 적부터, 나보다 대여섯 살 적은 외사촌 동생은 왼손잡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매사 외할아버지께 툭하면 혼나고 잔소리 듣기 일쑤였습니다. 밥 먹을 때도 그렇고 글씨도 그렇고 무슨 일할 때도 동생은 왼손이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나이들은 지금은 어찌하는지 모르지만 결국 글씨 정도는 오른손으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나이에도 할아버지의 꾸지람이나 잔소리가 참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오른쪽’이란 말은 ‘옳다’에서 파생되었다는 걸 알면 어른들의 그 쓸데없는 고정관념이 이해도 되긴 합니다.
이런 관념은 영어권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Right라는 말이 ‘오른쪽’이라는 말도 되지만 ‘옳다’는 말도 되고 ‘권리’라는 말도 되고 그러합니다. 아마도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은 모양입니다. 글쎄요. 우리 세대가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런 고정관념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 자식이 그러하다면 저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게 재미있었던 것은 사촌 동생의 아버지인 외삼촌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는지, 아니면 직장이 (국내) 미국 은행이어서 약간의 미국식 사고방식 영향을 받아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왼손을 쓰는 아이에게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런 외삼촌을 볼 때마다 참 대단하게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오른손잡이인가, 왼손잡이인가, 아니면 스위치가 가능한가? 그것은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아닙니다. 단지 모든 기구나 편의 시설이 오른손 위주로 되어있는 사회 기반에서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의료용 기구도 오른손 위주로 되어있는 것이 태반입니다. 예를 들어 기관 내 삽관을 위한 후두경도 오른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맞게 제작이 되어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후두경을 잡는 손은 왼손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왼손잡이라도 크게 불편은 없을 것입니다.
프로스포츠의 경기를 보다 보면 왼손으로 경기하는 선수의 수가 제 어릴 적에 비해 확실히 많아졌습니다. 야구, 배구, 테니스나 탁구, 축구에서의 왼발 슛, 굳이 찾아보면 생각 외로 많은 선수가 그러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왼손잡이 선수들이 기교가 뛰어납니다. 어릴 적에는 신기하다며 한 번 더 바라보게 하던 선수의 모습이 이제는 보편화된 모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회의 통념으로 자리 잡는데 한 세대가 흘렀습니다.
한 사회가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소수(小數)의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오른손이냐, 왼손이냐에 따라 응대가 달라지거나 불편을 느껴야 한다면 그 사회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남들과 다를 뿐, 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니다.’ 이 관념이 뇌리나 마음에 아무렇지 않은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좋은 건 좋은 그대로, 나쁜 건 바람직한 쪽으로, 우리 사회에 고착하기까지 부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