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아요?

by 지홀

최근 몇 년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한때 꽤 자주 들었던 질문이 있다.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니 별로 외롭지 않은데요!” 난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라 외롭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게다가 그때는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 직장 후배들이 많아서 그들과 시간 보내느라 바빴다.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들 만나느라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그 외롭지 않냐는 질문이 ‘성적 외로움’을 의미한다는 걸 사십 대에 깨달았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났던 그 남자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은 보통의 남녀가 맺을 수 있는 관계를 그와 나눴기 때문이다. 만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그가 여행 가자고 했다. 더 어렸을 때라면 ‘아직 사랑하지 않는 데 같이 가도 될까?’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내가 단단히 붙들고 있던 틀을 깨고 싶었다. 오래전에 친구가 농담으로 “고이 아껴뒀다 똥 된다”라고 놀림 반 진담 반으로 충고했던 말이 떠올랐다. 혼전순결을 중차대한 문제로 애지중지 여기던 시절에 친구는 과감하게 말했었다. “늙어지고 나면 볼품없어지는 몸, 예쁠 때 보여주고 즐겨야 한다”라고 말이다. 그 시절엔 그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흔 넘어 더 아끼면 안 될 것 같았다. 혼전순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흔 넘도록 제대로 된 경험 한번 없다는 게 더 안타까운 일 아닌가. 결혼한 사람하고 자야 한다는 그 가치는 더 이상 귀하고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지 않았다. 서로 호감 가는 상대를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같이 여행 가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고등학생인가 대학생일 때 아빠는 회사에 마흔 넘은 노처녀가 있는데 그렇게 나이 많도록 결혼 못 하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는 염려와 함께 노처녀로 죽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한 맺힌 처녀 귀신은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내린다고. 그렇다, 처녀 귀신이 되고 싶지 않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성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애초에 그런 외로움을 모른다. 책으로 영화로 간접 경험했기에 그런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상상하고 머리로 이해했어도, 직접 경험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몸이 가면 마음이 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와 여행을 다녀온 후 사랑의 크기가 커짐을 느꼈다. 급속도로 친밀해졌다. 드라마에서 상대를 생각하느라 주변 사람이 말을 걸어도 못 알아듣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그때 무슨 생각을 하느라 못 알아듣는지 알게 되었다. 같이 있고 싶다는 의미가 단순히 옆에 있는 것 이상의 끌림임을 체험했다. 학창 시절 낭만적이라고 여겼던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는 가능하지 않음을, 어쩌면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사랑한다’라고 믿는 마음만 있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육체적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사랑에 공감할 수 없다. 만일 남녀 주인공의 그런 ‘플라토닉’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해도 여주인공의 남편은 뭔가? 아내에게 기만당했음을 알게 되었다면 그는 얼마나 공허하고 허탈했을까.


불륜으로 가정 파탄 나는 흔한 얘기 속에 참으로 다양하고 고유한 각자 만의 사연이 담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둘의 문제는 둘만 안다는 말에는 겉으로 드러난 갈등 이외에 차마 입 밖으로 내기 곤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잠자리에서 느끼게 되는 사랑의 감정과 아닌 것의 차이, 충분한 교감을 하는지, 정서적으로 서로 이해하고 있는지 등 육체적 관계뿐만 아니라 심적 나아가 영적으로 상호 얼마나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는지 둘만이 알아챌 수 있다. 둘만이 알아챌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부족하고 치사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아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매 순간 달라지는 마음 상태가 어느 순간 어떤 방향성을 갖게 되고 그 방향성은 각자 원하는 방향과 틀어진 채로 뻗어나간다. 습관으로 굳어진 관계는 그렇게 틀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원하는 것과 틀어진 방향의 각도가 점점 커지고 그 차이를 극복할 의지가 사라질 때 헤어진다.

헤어짐의 원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이지만, 소위 성격이 안 맞아서라고 하는 것에는 속궁합을 비롯한 이러한 내적 힘듦이 있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실연 후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여자로서의 자신감 결여였다. 분명 나도 서로 다른 가치관, 취향, 관계에서 오는 불만족이 있었음에도 상대에게 더 이상 성적 매력을 어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검열은 꽤 오래 나를 지배했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얻게 되는 트라우마가 이런 종류의 고통이지 않을까 싶었다.


비록 쓰라린 연애로 끝을 맺었지만, 덕분에 세상의 모든 것은 음양으로 이뤄져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전기를 쓰려면 플러그를 꽂을 콘센트가 있어야 하고, 나사를 조이려면 볼트와 너트가 한 짝을 이뤄야 한다. 또한 플러그 핀이 3개라면 3핀 콘센트가 있어야 한다. 플러그가 3개인데 2핀 콘센트를 사용할 수는 없다. 볼트와 너트도 서로 모양이 맞아야 조일 수 있다. 일자 나사에는 일자 드라이버를, 십자 나사에는 십자드라이버를 써야 한다. 물건도 이렇게 서로 맞아야 그 쓸모를 다할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더 말해 무엇할까. 서로에게 맞는 사람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은 크나큰 축복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자연의 섭리를 따르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둘이 아니라 홀로, 어쩌면 미완성인 체로 살아야 한다. 어쩌랴. 받아들일 수밖에. 다행인 건, 사람은 제 짝이 없어도 물건처럼 쓸모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도 자신의 쓸만한 가치를 충분히 증명하는 존재이므로.


인간의 3대 본능은 모두 인간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 식욕을 조절해 살을 빼거나 늘릴 수 있다. 원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수면욕을 줄일 수 있다. 채식 위주 식사를 하다 보면 고기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원래 초식동물은 풀만 먹고도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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