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mit Jun 26. 2019

#1 새로운 시작

드디어 백수탈출!!

머리가 커가던 그 언제부턴가 나를 둘러싼 세상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설명할 수도 딱히 규명해 낼 수도 없었지만


다 큰 남동생이 먹어야 할 라면을 꼭 여자인 내가 끓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로부터

여자이니까 합기도보다 피아노를 배우라는 아버지로부터

하고 있는 일 그만두고 결혼해서 자기가 있는 곳에서 같이 살자던 구 남자 친구로부터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던지는 많은 사람들의 물음에

모범답안이 이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점점 나는 그 대답을 하기 싫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보다 10살 많던 사수를 통해 막연했던 답답함의 이유를 어렴풋이 규명해낼 수 있었는데 그 이후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무력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톱니바퀴의 나사 하나로 부품처럼 일하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

누군가로 대체되는 삶을 살겠구나

여태껏 내가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는 평가절하되고

나이 든 여자가 결혼한 여자가 애 있는 여자가

이 정도도 감수 안 하고 감히 일하려고 했어?


한국에서는 남자들에게 일과 개인적인 영역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묻지 않는다.

나는 일과 가족을 둘 다 가지고 싶은데 여자라는 이유로 선택하라고 하는 건가? 도대체 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다 보면 가정을 꾸리고 싶고 가정을 꾸리다 보면

아이를 가지고 싶고 인간적으로 너무 당연한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라는 내 꿈과 커리어가

십 년 안에 박살 나는 걸 눈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거

그 미래가 너무 뚜렷이 보이길래

그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술대학원 합격도 마다하고 무작정 한국을 나왔다.




그렇다. 고생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거다.

자유로우려면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까.


독일 대학 들어가는 과정도 대학 졸업과정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대 서사시지만 차차 하기로 하고


그렇게 독일로 나온 지 어언 8나이 넘칠 때로 넘쳐서 나왔는데

많은 것들을 이뤄갈 수 있어서 어찌나 감사한지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첫 번째 구직활동 실패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이것도 녹녹지 않아서

다시 구직활동 시작한 지 4개월째 감격스럽게도

드디어 취직했다.


물론 한 석 달 뒤면 백수였던 나날들이 그리워질지 모르지만

앞으로 Probezeit(수습기간) 6개월 잘 버텨서 정직원 한 번 가봤으면 싶다 ;)


나 자신에게 늘 인색한 편이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동안의 고생에 대해 칭찬해줘도 되지 않을까


잘 버텨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