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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mit Jun 28. 2019

#2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전략적으로 살지만 운의 존재 인정하기

미래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서른이 코 앞인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나겠다고 하면 반응은 극명하게 둘로 나뉜다. 멋있다, 부럽다 아니면 미쳤다, 다시 생각해봐라.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면 거짓이었을 것이다. 독일 유학이랍시고 떠났다가 어학시험도 통과 못하고 돌아왔다던 괴담도 무서웠지만 적지 않은 나이, 지금껏 일궈 온 것들을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행기에 오르던 당시 내 발걸음은 자뭇 비장했었다.


2010년 2월에 첫 입국해 2019년 6월 현재까지 독일에 살면서 유학생 준비생에서 유학생으로 그리고 외국인 직장인으로 나의 신분을 바꾸며 깨달은 점은 타국에서 그곳 사람들과 같은 권리과 혜택을 누리면서 산다는 것은 상상했던 건 이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는 일이며 인생에 있어 성공과 실패 여부내 노력만으로 결정지을 수 없다, 즉 기가 막힌 운과의 콜라보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내 인생은 원래 한 번에 안 되는 일 투성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것도 나에게는 두 번 이상 도전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여러 번 도전하면 그나마 작은 뭐라도 얻는 게 있다는 경험 덕분에 감사하게도 나는 한 번 실패했다고 쉽게 물러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독일에 오자 잘 안 되는 일들의 빈도가 당연히 더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과 조건하에 그나마 경쟁이 가능했는데 독일에서는 모든 조건이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불리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 독일에서의 삶을 차차 전략적으로 꾸려가기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은 머핀과 함께였다.


대학 입학이 확정된 후 내 몸 하나 뉘일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하루에 20개가 넘는 메일들을 꾸준히 보냈지만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 아니어서 그런지 겨우 2개의 대답만을 얻었다. 시간, 노력과 돈을 들여 그곳까지 기차 타고 가서 사람들과 면접 아닌 면접을 치렀는데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군데에서 다 거절 메일을 받았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나를 소개하는 메일부터 싹 다시 썼다. 페이스북에 호감형으로 보일 수 있을 법한 사진들을 올리고 메일에 링크를 걸어두었다. 그렇게  30개 이상 되는 이메일을 또다시 보내고 나니 이번에는 4번의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미리 면접을 볼 사람들의 페이스북도 염탐하는 도중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번에 면접을 볼 한 집은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자주 모여서 밥을 먹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필하면 좋을 거 같아서 면접 전날 부랴부랴 이것저것 재료를 사서 소보로 머핀을 만들었다. 우리가 만날 시간인 오후 2시에 혹시나 마시게 될지 모를 커피에 어울릴 수 있게.


그 당시 소보로 머핀 :)


 WG(Wohngemeinschaft: 독일의 공동주거 형식 중 하나) 사람들은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이런 면접자는 그동안 없었다고 했다. 면접 당일 가져간 그 머핀을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나는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고 결국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내가 머무르고 싶던 그 방을 차지했다.


그 날 발코니에 앉기에 참 좋았던 날씨, 머핀과 잘 어울렸던 커피 그리고 전날 그 방을 거절했던 다른 면접자. 그중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졸업 후 직장을 구하는 것은 방을 구하는 것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일단 조건들이 너무 가혹했다.


독일 제품 디자인 인력 시장은  Technischer Produktdesigner를 찾는 기업과 

Produktdesigner를 찾는 계열로 나눠지는데 요새 각광받는 공학 제품 디자인이나 엔지니어링 디자인은 Technischer Produktdesigner와 가까워서 그렇게 많은 일자리들에도 불구하고 지원할 수 없었고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분야는 거의 모든 회사들이 적어도 2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를 원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한국에서의 경력은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결론은 신입으로 시작해야 하는 건데 도무지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절망스러웠다. 

나의 지원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거절 메일을 받거나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하거나.  


1년 넘게 그렇게 보낸 거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아이디어는 늘 있었으니 제품 기획에 생산 그리고 판매까지 하려고 치면 할 일은 넘쳤다. 그러나 예산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 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는 결론이 나면서 포기했던 회사 지원 카드를 또 꺼내 들었다.




어떤 분야에서 나는 잘 팔릴 수 있을까?


내가 쌓아온 경력은 거의 패키지 디자인 쪽이다. 독일에서는 일관성 있는 경력에 대한 믿음이 크니까 패키지 디자인 분야로 지원을 제한하기로 했다. 그동안 패키지 디자인을 등한시하고 제품 디자인 작업만 했었는데 그렇게 정한 김에 포트폴리오를 위한 작품을 몇 개 더 만들기도 했다.


나의 장점은 2D와 3D를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다룰 수 있으면서 설득력 있는 디자인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점. 큰 회사들은 오히려 한 가지 분야에 특별화 된 인재를 선호하기에 대도시에 이름이 알려진 큰 회사는 과감히 내 리스트에서 지웠다.    


어떤 회사가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에도 나를 원할까?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매니저급이 아닌 이상 그다지 높은 임금도 아니기에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만둔다. 독일의 젊은 친구들적어도 어느 정도 유흥이 가능한 지역에서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렇게 따진다면 나에게 유리할 수 있는 점은



1. 글로벌한 회사여서 외국인이어도 상관없어야 하고
2. 독일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지역에 위치해서 인력난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나이에 신입이라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도록.
3. 그러면서 패키지 디자인을 하는 회사라면 플러스알파.



그 후 아무 회사나 다 지원서를 내는 소모적인 행동을 그만두고 저 세 가지 조건 중에 얼추 두 개가 충족하면 그제야 지원을 했다. 그 결과 지원서를 내는 빈도수는 현저히 줄었지만 냈다 하면 내는 족족 면접 보자는 메일을 받게 된다. 그 후 몇 번의 면접을 보고 또 몇 번의 탈락을 경험하고 결국 나는 지금의 회사와 근로 계약서를 쓸 수 있었다.  


내가 미리 작업해놓았었던 패키지 작품, 그 작품과 딱 맞아떨어졌던 입사 시험 주제, 그리고 1년 가까이 딱 맞는 인재를 찾아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회사.

그중 하나라도 안 맞아떨어졌더라면 어땠을까?   

  



사람마다 상황과 여건이 다르기에 어떤 전략으로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혹시나 누군가 독일에서의 생활에 대한 조언을 묻는다면 내가 말해주고 싶은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문제 해결 전략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부분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절대 남들과 비교하거나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삶은 100M 달리기가 아니니까. 


누가 어학시험을 6개월 만에 통과하고 대학에 붙었다 하더라도

독일어 부족으로 말미암아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자괴감이 들더라도

매번 밤을 새우며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지만 자비 없는 교수님의 크리틱에 내 영혼이 너덜너덜해져도

졸업 후 일은 해야겠으나 원서를 내는 족족 불합격이 된다 하더라도

내 맘 같지 않은 직장생활에 심난하더라도  

그리고 가족을 제외하고 아무도 나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국 알게 되더라도


자신을 비하하거나 아프게 하지 말고 맛있는 것도 일부러 더 찾아 먹고 재밌는 것 많이 경험하고 더 밝게 웃고 산책도 자주 하며 본인을 사랑하는 법을 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둘째, 외로움을 즐겨야 한다.


이것이 정착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 만나지 말고 독하게 독일어 공부만 해라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언어는 한 인간을 사회와 쉽게 연결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도구이다. 잘 사용할수록 이득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초반에 외롭다고 한국 사람들과만 너무 많이 어울린다면 결과적으로는 득 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독일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어렵다면 독일어 잘하는 외국인 친구와 잘 지내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마음으로 친해지는 친구를 찾기 전까지 무척 외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시간을 잘 분배해 독일 친구들도 만나고 다른 나라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려고 노력한다면 언어가 느는 것은 물론 학교 생활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특히 외롭다고 아무 남자나 만나는 건 금물이다. 한국인을 만나던 외국인을 만나던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남자 보는 기준선을 독일이라고 낮출 이유는 없는 거니까. 




어떤 일이든 결론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공률은 50%라고 믿는다. 그리고 성공이나 실패라고 지금 당장 여겨지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진짜 성공인지 실패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나만의 결론:

실패할지 성공할지 시작도 해보기 전에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본인의 가슴이 시키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보는 게 좋다.



남는 후회 없이 실패하거나 운 때가 맞으면 성공하거나.


 C'es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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