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지 슬픈 건 보지 않았다. 진짜 사연 같은 얘기에 눈물 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티비 속의 유니세프 광고도, 다큐멘터리의 암말기 환자도 행복을 빌며 채널을 돌렸다.
난 질문에 답을 하다 내 진심을 깨닫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기억도 안 나는 어느 날, 왜냐는 물음에 대답을 생각하다 보니 그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그만 울고 싶다고 했다.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는 것도 싫고, 하도 울어 머리가 지끈대는 것도 싫었다.
올해는 좋은 일이 안 일어나도 좋으니 그저 조용히 지나가게 해 달라는 매해의 소원을 몇 년간 빌었었다. 그 무렵엔 누군가의 안 좋은 소식이 들릴까 전화를 받는 게 무서웠고, 최대한 소식을 외면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타지에 산다는 이유로 핑계를 댔던 그때의 난 이기적임을 스스로 욕하면서도 안 울고 싶었다. 동기들과의 친목도, 수업의 진도도 신경 쓸새 없이 들숨날숨을 제때 쉬는 것이 중요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나. 동기들과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얘기하다 한 사람이 베개를 때리며 소리 내서 운다고 했다. 그럼 풀린다고.
밤. 혼자 남은 방에서 풍선처럼 터질 것 같은 마음속 응어리들이 벅찼던 날이었다. 앞에 보인 베개를 쥐고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눈물이 흘렀다. 계속 때렸다. 마구마구. 방 안에서 퍽퍽 소리가 울렸다. 내 울음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슬픈 걸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좋아하던 시리즈 드라마를 보다 꺼버렸다. 슬펐고, 우리 아빠 닮은 배우 덕에 더 슬퍼서 도무지 픽션으로 볼 수가 없었다. 울지 않는 요즘도 슬픈 건 보지 않는다. 내게 눈물이란 아직 슬픔이라는 의미가 큰지 울일 없는 시간들을 즐기고 감사하기도 바쁘다.
그래도 많이 울어서 웃기도 잘 웃는 거겠지. 산 넘어 산 중에 나타난 쉼터에서 더 많은 웃음을 모아놓는다. 기쁨만 있을 리 없을 거다. 어쩌면 훗날엔 과거보다 가벼운 일에 펑펑 눈물이 날 수도 있을 거고. 그런데 행복해서 불안하다고, 행복할 때 행복해하지 않으면 행복한 순간은 없다. 마음껏 즐기자. 그래도 내 인생은 웃음이 잦았다고 느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