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하는 여행이었만 이번 여행의 테마는 '큰 딸 맞춤 여행'이었다. 호주를 여행지로 정한 것도 첫째가 펭귄을 매우 좋아하고 캥거루와 코알라를 직접 보고 싶어 했던 이유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래서 둘째 날의 일정도 첫째의, 첫째에 의한, 첫째를 위한 일정이었다. Taronga Zoo.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시드니의 대표적인 동물원이다. 숙소에서 기차를 타고 두 정거장 이동하여 Circular Quay에 하차했다. Circular Quay는 시드니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오페라하우스를 가기 위한 기차역이면서, 시드니의 또 다른 교통수단인 페리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바라보는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는 자연스러운 파노라마 뷰를 선사해주어 하차 후 한참을 감상하게 만들었다.
여행을 출발하던 날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들어했던 둘째도 이날부터는 정상 컨디션을 되찾아 우리 부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기차역을 벗어나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 넘버가 여럿이라 좀 헤맸지만 물어물어 타롱가로 가는 선착장을 찾아 페리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페리도 시드니 교통카드인 오팔 카드로 탑승이 가능하다. 페리는 이동 수단이지만 이동 중에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를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뷰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페리에서 바라보는 시드니
페리는 약 15분 정도 걸려 타롱가주에 도착했다. 타롱가 동물원은 정상에서 시작해 밑으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관람을 하게 된다. 페리 선착장에서 조금 걸어 정상으로 데려다 줄 곤돌라를 타고 동물원 정상까지 올라갔다. 곤돌라 비용은 동물원 입장료에 포함이 되어 별도로 받지 않는다. 호주의 날씨가 쾌청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와서 경험하는 호주의 날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하루의 시작을 미세먼지 예보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삶인데 여행 중인 잠시라도 그러한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름답고 깨끗한 호주가 너무나도 좋았다.
곤돌라를 기다리는 계단에서 보이는 타롱가주 페리 선착장(좌)과 동물원 정상으로 가는 곤돌라(우)
정상에 도착하고 두 딸의 기념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면서 이 여행이 언니 위주의 여행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유모차에 타고 있던 둘째는 또다시 잠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코알라부터 캥거루, 기린, 코끼리 등등 여러 동물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큰 아이는 동물보다도 놀이터를 더 좋아했다. 이동 중에 만나는 놀이터마다 한참씩을 놀며 지나가야 했다. 블로그 후기들을 통해서 중간중간 놀이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첫째를 위해 잘됐다고 생각을 했으나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겨 동물원에 온 주목적을 상실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됐다.
타롱가 동물원은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우리 가족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동물들을 구경하다 놀이터에서 놀다를 반복하며 그야말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펭귄까지 관람을 마치고 맹수 친구들을 보러 가려하는데 이상하게 주위가 매우 한산했다. 몇 년 전 북유럽에 출장 가서 오후 6시만 되면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차 싶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급하게 동물원 운영시간을 찾아보니 문 닫기까지 30분이 채 남지 않았다. 급하게 동물 하나라도 더 봐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렀다. 앞에서 뛰어가던 첫째가 오르막에서 넘어졌다. 무릎을 다쳐 피가 흰색 타이츠 위로 번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속상했다. 아파 우는 아이를 달래며 더 이상의 관람을 포기하고 동물원 밖으로 향했다.
Circular Quay로 돌아가기 위해 페리를 탔다. 주변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Circular Quay 기차역에서 바라보는 하버브릿지는 낮에 보던 것과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