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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Dec 02. 2023

40대 퇴사? 인생에서의 퇴장은 아니잖아.

일하기 싫어 핑계 대며 퇴사한 40대 중반 아저씨

8정신병이 올 거처럼 혼란스러운 1년 9개월을 견뎌낸 나에게 치얼스~! 누가 욕하던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계획 없이 나왔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려 하루하루 애쓰고 있답니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고, 오히려 퇴사를 통보하기로 마음먹은 날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지난 1년 9개월과는 다르게 조금은 생산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40대 직장인, 하루아침에 하얀 손(백수)이 돼버리다.

지난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떻게 저러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무의미한 1년 9개월을 보내고, 드디어 퇴사통보일을 제 나름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전날 잠들기 전까지도 이게 맞는 선택일까에 대한 고민에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나네요. 무서움과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작은 설렘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순간은 회사를 나온 뒤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기도,

또 어떤 순간은 티브이나 각종 매체에 나오는 것처럼 나이 50이 되어서도 백수가 되어 일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진 않을까 하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퇴사통보 전날임에도 이쪽저쪽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채로 혼란스러운 밤을 맞이하였죠.


당일아침,

16년을 한결같이 알람소리에 죽을 것같이 일어나던 저와는 다르게, 이른 새벽시간 눈이 저절로 떠졌습니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컴컴한 거실 의자에 앉아 2-3시간을 멍하니 있습니다.

머릿속은 멍합니다. 갑자기 오한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해가 뜨네요. 평소 같았다면, 정신없이 씻고 출근준비에 바쁜 순간이지만 이상하게 움직이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거실창문만 생각 없이 바라보다, 무언가에 홀린 듯 씻기 시작합니다.

이미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은 훌쩍 넘겨 버렸고, 씻은 후에도 여전히 거실 의자에 앉아있습니다.

갑자기 거실에 있던 거울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 진짜야? 진짜 내가 원하는 거지?

- 출근해서 내 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거 알지?

- 충분히 고민해 본 거지?

- 몇 달만 더 해볼까?

- 아니, 1년만 더 다녀볼까? 마음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 잘할 수 있어

- 회사가 인생의 종착지는 아니잖아, 단지 경유지일 뿐이야

- 되돌리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렸잖아

- 기왕 이렇게 된 거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쉬어보자

- 몸과 마음의 재정비가 더 중요해



팀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얘기 좀 하시죠.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수십 번을 얘기하고 점심시간이 다 되었을 때 회사로 출발하였습니다. 스스로의 최면에 걸려 마음의 결정은 내렸지만, 명확한 계획이 없다는 사실은 변함없었습니다.

광화문역에 내려 아무 생각 없이 회사주위를 다섯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곤, 정문앞쪽 볕이 잘 드는 공간에 서서 다시 1시간을 아래 질문을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며,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 자, 오늘 저지르면 주워 담을 수 없다.

- 계획유무에 상관없이, 마음을 돌려서 회사를 지난 시간처럼 다닐 수 있을까?

- 정말 마지막이야, 진짜 괜찮은 거 맞지?

- 양자택일이다. 그냥 다니던가, 조금 쉬면서 다음일을 생각해 보던가

- 성향의 차이일 뿐이야. 나 같은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 마지막으로 묻는다.

- 회사로 돌아간다면, 지금까지처럼 10년은 월급 받으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사는 거고

- 회사를 나간다면, 인생 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게 될 거고

- 계획은 차치하고, 지금 당장의 너의 마음의 방향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 거냐


"더 나이 먹기 전에 방향을 바꿔보자."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해보았습니다. 나의 귀에 명확하게 들어오는 내 목소리.

시간이 지나, 당시 그날을 떠올려보면 정말 혼자서 영화를 찍고 앉았었습니다. 그저 제삼자가 보았을 땐, 일하기 싫어 도망치려는 핑계를 찾는 거로밖에 안 보였을 거 같거든요.


사실, 그것도 있었습니다. 계획 없이, 그저 회사를 나간다고 다 일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이렇게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상황에선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다 풀긴 어렵지만, 지독하고 가난하게 집도 없이 지내던 그 시절의 꼬맹이가 노력하다 보니 지금의 회사와 생활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경험도 한몫했고요.


그리고 마음속에 아주 작아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이지만,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 있긴 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의 크기가 너무 좁쌀만 해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막연하게나마 해보고 싶었거든요.


지난 1년이 넘는 시간이 오늘 하루에 압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중압간과 생각, 고민들의 시간을 보내고, 큰 심호흡 3번.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팀장님이 너 왜 이렇게 늦었냐라는 듯한 의아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고, 작게 인사를 드리며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개인면담을 좀 하고 싶습니다."



40대 준비 없는 퇴사, SNS에서처럼 망하는 지름길인가?

글쎄요. 이 부분은 정말 사람마다 성향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저 같은 경우, 지금 당장 "어? 이거 조금 반응이 있네? 이걸로 한번 내 시간 녹여봐?" 할 만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써놓은 것처럼 막연하지만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고, 퇴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깊은 곳에 숨어있던 그 녀석의 작은 머리카락을 보게 되었어요.


유튜브나 각종 커뮤니티를 뒤져보며, 저처럼 40대에 준비 없이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내가 하려는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하게 된 행동인 거 같네요. 정말 끊임없이 찾아서 읽어보고 들어보았습니다.

부정적인 얘기들이 난무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힘을 주는 내용들도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맞벌이해주는 와이프도 있었기에 선택이 그나마 용이했던 거 같습니다.


나름의 인생 포트폴리오를 구상도 해보고, 막연하지만 내가 해보고자 하는 일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고, 그것을 하려면 앞으로 어떤 걸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잠시지만 검색도 해보았습니다. 수동적으로 시키는 것만 해오며 살아오던 것과는 달리 내가 하는 행동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회하지 말자.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네, 이미 퇴사 통보도 했고, 이제 와서 팀장님에게 돌아가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다시 사직서를 반려해 달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반대로, 땅을 치고 퇴사를 후회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나마 이런 막대한 후회가 빨리 찾아온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5년 뒤 내지는 10년 뒤에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순간 찾아듭니다.


세상 누구보다 작아지고 약해지는 순간들이 순간순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보게 되는 폐지 줍는 노인들처럼 내 미래가 되지 않을까라는 공포감이 엄습해 오기도 합니다.

이미 퇴사를 한마당에 다시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1년 9개월을, 병까지 얻어가며 고민하고 결정했는데 결국 또다시 쳇바퀴인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시간만 또다시 흘려보내겠구나"



나란 사람의 성향, 완벽한 준비만이 답이 아니다.

완벽하게 불완전한 선택을 한 저이지만, 이 선택마저도 호불호가 갈리는 시점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저는 명확한 계획 없이 퇴사했습니다.

16년을 앞만 보며 달려온 저로서, 너무나 철저하게 회사가 아니면 내 인생은 없다는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있었습니다.

강제적인 큰 삶의 변화가 있어야지만, 낭떠러지에 몰려야지만 움직이는 성향이라는 것을 파악하는데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고, 저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이도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퇴사의 유무만 판단하였다고 욕할 사람도 분명 있을 거란 거 압니다. 하지만 저와 비슷한 성향이신 분이라면, 십 분 공감하실 거란 것도 잘 압니다.


"앞으로 길게 남은 인생을 어떻게 고민하고, 준비할지가 더 중요하다."


라고 저의 성향에 따른 판단을 한 거 같습니다.


- 16년을 소기업 계약직부터 외국계 대기업까지 달려왔다.

- 난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

- 회사에서 나간다고 인생 망가지는 게 아니잖나.

-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향으로 가보겠다.

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매일매일 외치며 자기 암시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우울해지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힘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스스로 정리하려 노력하였고, 나에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 중 일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마다의 각자 삶의 방식이 있고, 나름대로의 인생의 철학이 있을 겁니다. 제 지난 16년간의 인생처럼 회사에 매몰되어 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시 저만의 인생철학이었을 수 있고요.

다만, 저는 지난 16년의 직장생활을 돌이켜보아도, 딱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없더군요.


물론, 저만 이럴 수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회사에서 의미를 조금이라도 찾으신 분이라면, 저 같진 않겠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치 16년 동안 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다만, 16년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생활자금도 모여있었고, 아내가 하는 개인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오히려 퇴사 결심을 조금 더 수월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 이런 상황이 아니었어도 퇴사를 결심했을까?

- 그저 배부른 사람의 비겁한 변명인가?


아니요. 장담하건대 전 지금이 상황이 아니었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습니다. 물론 특정한 이벤트들이 40살이 넘어 발생하게 되었고, 그것들을 경험하며 선택을 하게 되었지만 데스크 앞에 앉아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이미 가지고 있었거든요.

(모든 직장인 분들이 의미 없이 살아간다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저에게만 빗대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잃어버린 저를 찾기 위해 이런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가족들과 엄청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나를 일정 부분 믿어주는 그들의 지지에 힘입어 용기 있게 회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해보고 싶었던 그것을 해보기 위해서요.


지금 당장은 그 어떤 성과도 없습니다. 시작조차 해보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작은 설렘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고 있습니다.

회사 안에서라면 1년 뒤의 내 모습은 명확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1년 후에 과연 내가 어떤 모습일까가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런 종류의 설렘이라고 설명드릴 수밖에 없군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걸 가지려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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