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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Jan 06. 2024

퇴사 당한 고객사 팀장을 마주쳤다.퇴사 이후의 삶.

부모님 뵈러 이동하던 중 낯익은 사람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샌드위치집에서 앞치마를 메고 있던 그 사람. 2년 전, 프로젝트를 맡게 된 고객사의 팀장이었던 분.

작년에 회사에서 정리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 길을 걷다가 그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아는 척하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하네요.



고객사 팀장이었던, 현재는 작은 샌드위치집 사장님.

2년 전, 꽤 규모가 있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당시.

고객사 팀장으로 있던 그분.


웃음뒤에 감춰진 갑질.

적당한 카리스마.

인상은 나이스 했지만, 잔소리와 갈굼이 잦았던 그분.

프로젝트 진행당시 그분에게 보고도 많이 했고, 갈굼도 당해보고.

당시 본부장에게 저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해서 한소리 듣게끔 만들었던 그분.

...


아버님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 부모님댁을 자주 가는편입니다.

별다른 생각없이 지하철을 내려, 버스를 갈아타려 걷고 있는데 정말 생각치도 못한곳에서 그분을 보았습니다.


보자마자 '어?' 소리를 내며 나도 모르게 그분에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눈을 마주치며 걸어오는 저를 의식하더니 금새 알아차리시는 눈치.

턱에 걸쳐진 마스크위로 보이는 눈. 저를 힐끗 본걸 알아차린 저.

힐끗 보고선 필사적으로 못본 척 재료를 이리저리 옮겨담는 손.


2년 전 저에게 했던 은근한 갑질과 잔소리는 머릿속에서 날아간지 오래입니다.

희안하게도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습니다.


퇴사하기 전이었다면 보자마자 제가 다른길로 돌아갔겠지만 지금은 무언의 동질감 같은게 느껴지더라고요.

정확히는 그분은 뭔가를 하는중이었고, 저는 백수이니 동질감이란 말은 맞지 않군요.



나 : 팀장님, 안녕하세요~ 이게 무슨일입니까. 여기서 다 뵙게되네요.

그 : 어.. 어? 어~ 어유 이런 우연이 있네. X차장 잘 지내고 있어?

나 : 아..네,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퇴사한 건 왠지 모르게 숨기게 되었;;)

그 : 어 그래. 바쁠텐데 어여 들가.

나 : 괜찮습니다. 여기에 내신 거에요? 샌드위치 맛있어 보이네요~

그 : 어 그냥 뭐 그렇지. 바쁘지 않아? 어여 들가. 날 추운데 건강 잘 챙기고.

나 : 네네, 샌드위치 종류가 많네요~

그 : ...

나 : (아..이런..) 아.. 팀장님 건승하십쇼! 화이팅입니다. 하하.

그 : 어 그래그래. 어여 들가.



반가웠던 저와는 다르게 자꾸 들어가라고(어딜 들어가란 건지;;) 하던 그분.

매장안에서 앞치마를 고 있던 (구) 팀장이었던 분.

눈치없는 저는 반가운마음에 계속 말을 붙이고 있던 것이었죠.


그와중에 샌드위치 사려고 메뉴까지 살펴보던 제가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힐끗 보던 그 순간 흔들리던 눈빛. 순간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했던 제 자신이 미련하게 생각되더라고요.

아는 척하지 말고 그냥 지나칠 걸 그랬나...


한때는 갑의 위치에서 수 많은 팀원을 이끌던 팀장님의 앞치마를 메고 있던 모습. 무언가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현재 샌드위치집을 하는 예전 고객사 팀장님.

아랫글 일부 내용처럼,

1) 50대에 재취업 후 6개월만에 퇴사한 부장님.

2) 경력도 없이 돈만 가지고 음식점을 오픈했다가 폐업한 차장님.


일부 회사선배, 회사지인들의 퇴사이후의 삶을 보고있자니 두려움이 왈칵 다가옵니다.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긍정적인 생각만 합니다.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 합니다. 하지만 퇴사후의 현실들을 직접 듣고, 보게되면 그 충격은 어마어마합니다.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 나도 더 버텼으면 높은 확률로 저러고 있을 거야.


다른 한편으로는 퇴사를 후회하기도 합니다.

- 보장된 몇 년. 월급 받으며 살다가 고민은 나중에 할 걸 그랬나. 회사밖은 지옥이라던데.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내 모습은 오늘도 어정쩡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미 선택한 것을.


"선택을 했으면 그게 무엇이든 집중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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