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좋아 한다

by 우선열

한강을 좋아한다.

물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충청북도, 바다는 물론 변변찮은 강도 없었다

툭하면 바닥이 드러나는 작은 무심천이 전부였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좋은 건 그런 결핍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강이 있는 서울에 살건만 우리 집은 한강까지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걸린다

한강을 좋아한다고 해서 자주 볼 수는 없다

거미줄같이 촘촘한 대중 교통망이 있으니 거리가 좀 있다 하더라도

한강에 나가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니겠지만 일상의 틀이 있다

누가 억지로 묶은 건 아니니 스스로 묶은 셈이기는 하다

한강을 찾는 건 일상을 벗어나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 같은 풍요의 시대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전후 궁핍한 시대를 사는 지혜는 아끼는 것이었다

부족한 물자를 아끼고 나누어 쓰는 것은 물론 꿈도 사랑도 아껴야 했다

원하는 것은 마음속 깊이 감춰야 했다

발설하면 부정 탄다며 간절한 소원은 마음속 깊이 묻어두어야 했다

귀한 아이일수록 천한 이름으로 불렀다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경박한 짓이었다

'밥은 먹었니?' 정도가 부모님에게서 들을 수 있는 애정 어린 말이었다.


한강을 자주 찾지는 못했다

어쩌다 대중교통으로 한강을 지날 때면 고개를 빼고 반기는 게 전부였다

예전의 대중교통은 지금처럼 한가하지 않았다

버스엔 차장이 있어 승차할 때마다 사람들을 밀어 넣었으며 전철에는 푸시 맨이 있었다

더 이상 들어 설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승객이 들어찼다

차창 밖으로 한강을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던 시절이다

한강에 대한 동경은 커질 때로 커졌다


남편은 현실적이기보다 꿈을 좇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결혼식은 한강 유람선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나는 한참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또래의 친구들이 학부모가 될 때쯤이니 낭만보다는 현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시점이었다

육아 스트레스를 막 벗어난 친구들은 유람선에서 열리는 결혼식이 반가웠다

동창회를 연상할 정도로 많은 친구들이 올 수 있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 좋아하고 낭만을 꿈꾸는 남편에게 현실은 무거웠다

생활은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되었다

당시의 사회상은 여자에게 녹록하지 못했다

집안 일과 바깥일을 동시에 해야 했다

나도 그리 유능한 편은 아니니 현실은 늘 무거웠다

한강을 보는 일은 사치였다

모든 일은 지나가는 법,

시지프스의 바위같이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상도 세월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은퇴라는 이름으로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인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벗어난다는 건 다른 의미에 내려놓는 일이었다

양손에 쥔 떡을 쉽게 내려놓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새로운 것을 잡기 위해서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우선은 들고 있는 것이 아까워 포기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막상 내려놓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볍다

그건 내 역활보다는 변한 사회적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도 부족하다지만 복지시설이 많이 좋아져 있다

원하기만 하면 젊어서 포기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리는 문은 아니다

두드려야 한다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두드리는 문이 익숙하지는 않다

가족이 우선이던 사람들이다

미련이 많은 성격인 나도 처음엔 힘이 들었다

나이 듦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막상 받아들이고 나니 인생 2막이 시작된다

100세 시대라지만 그리 길거 같지는 않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얼마나 버텨줄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귀할 수도 있다

유한하기에 최선을 다해보려는 의지가 생길 수 있겠다.


이젠 한강이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걸어서 두 시간 걸리는 한강변 산책도 즐겁고 곳곳에 마련된 한강 공원에 들러보는 재미도 있다

올해 가장 인상에 남는 한강 투어는 새해 벽두에 찾은 삼성 중앙공원이다

한강에서 해 뜨는 모습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새벽부터 발 디딜 틈도 없었지만

그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반으로 줄어든다지 않는가?

한강에서 해 뜨는 걸 보는 즐거움을 수많은 사람들과 즐겼으니 2025년의 행운은 당연하리라

2025년 상반기가 지나가고 있다

오늘은 한강 변에 나가봐야겠다

삼성 중앙공원에 가서 한강변을 내려다보며 하반기를 맞는 심정을 다스려 보아야겠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이 먼저 떠오른다

반짝반짝 빛나는 2025년 하반기를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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