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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직장인 Dec 24. 2023

나의 투자를 되돌아보다

2023년 투자 소회


투자 늦깎이로 서른이 넘은 나이에 주식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2021년도부터 의미 있는 금액으로 시작하여 사업 보고서를 열어보고 엑셀로 숫자도 넣어보고 나름의 분석을 하면서 투자를 한 것은 작년 초쯤인 거 같다. 투자 스터디에도 처음 들어가게 되어 사람들을 사귀게 된 2년 남짓한 투자 여정을 기억해 보면 내 인생의 많은 것을 걸었고, 삶의 궤적 또한 크게 변한 것 같다. 가까운 이들의 반대도 불구하고 7년 이상 몸 담았던 대기업 전략실을 박차고 나와 잠시 헤지펀드에 투신하기도 했고, 이리저리 구르면서 많이 다치고 또 성장해 왔다. 평범한 직장인, 초보 투자자의 분수에는 맞지 않은 수익을 얻고 꿈에 부풀기도 했고, 이후 큰 실패를 통해 인생의 바닥을 확인하고 올라오고 있으니 나름 '흥망성쇠'의 한 사이클을 겪어 낸 거 같다.


아래의 유명한 투자자인 포즈랑 님의 글을 읽고 '현재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다음 주 대만행 티켓을 끊었기에, 조금 이른 연간 결산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올해는 운이 정말 잘 따라주었기에 기대했 것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냈다. 메인 계좌 기준이고 이 밖에도 비상장 주식 계좌 등도 있어 전체를 희석하면 수익률은 낮아지긴 할 것이지만 수익금은 늘어나기에 만족스럽다.


포즈랑 님 글 : https://cafe.naver.com/vilab/240160








개인적으로 주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결혼을 할 때 사둔 분양권으로 몇 년뒤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 담보 대출을 받으면서부터였는데, 이 당시 PER, PBR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던 형편없는 실력에 비해서 너무 큰 시드였다고 생각한다. 수 백 또는 수 천만 원의 돈으로 차근차근히 본인의 실력에 맞게 투자금 늘리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나는 겪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초심자의 행운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면서 과도한 자신감을 얻었고 뇌가 도파민에 절여졌었던 거 같다. 결국 기다리는 것은 패망의 길이었다. 정말 강한 컨빅션을 얻은 종목에 높은 레버리지의 파생상품으로 집중 투자를 하다가 마진콜을 당하면서 사실상 거의 망해버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더 뼈아픈 것은 나중에 그 종목은 나의 반대매매 가격의 3배 이상이 올랐다.) 대세 하락장에 가까웠던 작년에도 7월까지의 YTD 수익률은 +50% 이상으양호했는데, 하락 싸이클 정점의 짜내기 구간에도 버티기를 하다가 결국 레버리지 관리 실패로 다시 한번 큰 손해를 입었다. (시장 바닥 부근에서 담보 부족으로 매도한 주력 종목도 1년도 안 걸려 2배 이상 올랐다..)


짧은 시간에 이런 큰 실패를 반복해 겪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정말 많이 떨어졌다. '내가 정말 투자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올해 초 에너지 관련 기업의 경영기획실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회사 생활 적응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자 부담이 큰 부채들을 갚아 버리고 미국 대형주 위주로 투자하는 아내에게 시드의 절반 이상을 넘겼다.


그렇게 올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재정비하고, 작은 성공 사례 모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낮은 자신감으로 인해 몇 번의 좋은 기회를 놓치는 판단 미스를 반복하면서 상반기까진 Market Perform 정도한 것 같다. 새벽,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직장인 투자자로서 할 수 있는 거의 최대한 물리적 시간을 투입했고 뛰어난 투자자들과 교류하며 실력이 많이 쌓다. 하반기 들어 투자 폼이 많이 올라왔고 엘오티베큠, 우신시스템, 에이피알, 우양, 브이티 같은 종목으로 알파를 많이 낼 수 있었던 거 같다. 종목 운이 좋아 역대급 수익률을 냈기에 주식을 처음 시작 했을 때의 시드 머니를 그대로 가지고 투자했더라면 아마도 경제적 자유의 초입에는 가까워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이런 부분이 내심 아쉽긴 하지만 결국 내 '투자 그릇'이 작았기 때문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만 준비되어 있다면 내년에도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과거 실패를 뼛속에 새기며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마음이다.




올해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점은 결국 과욕을 버리고 리스크 관리를 잘 한데 있는 것 같다. 레버리지를 쓰긴 했지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했고 밸류에이션이 낮다는 이유로 주가 하락을 버티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추세가 무너진 주식은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예컨대 PBR 0.6에서 0.4까지만 떨어져도 -40% 손실이 나는데, 0.6배가 Rock-bottom이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을까?)은 작년 하락장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기계적인 손절도 잘 시행해 냈다.


올해 느낀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싶다.


1) 결국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포트폴리오 관리, 리스크 대응력인 것 같다. 이전에는 리서치 뎁스가 수익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던 거 같다. 스터디 발표를 준비하며 수 십장 분량의 분석을 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수익 창출에 있어 리서치의 점유비는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시장의 평균보다 인지우위를 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 남들보다 '특별하게 많이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 편이다. 투자 리서치는 부득불 물리적인 시간을 쏟아붓고 재현성을 끊임없이 검증해야 하는 'Lab research'와는 엄연히 다르고, 투자 스터디는 정답이나 진리를 연구하여 제시하는 학술대회 발표가 아니다. 또한 손익비 측면에서도 투자 리서치의 뎁스를 특별한 수준의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정말 많이 들뿐 아니라, 시장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은 리서치의 뎁스는 결국 수익이 아닌 아집과 소외로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정말 많이 깨져가며 알 수 있었다. (선물 마진콜도 오히려 내가 너무 시장의 생각을 훨씬 앞서나가 이 회사의 성공을 맞춘 것의 부작용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고 AI의 발달로 리서치 역량은 앞으로도 상향 평준화 될 것이다.


따라서 구력이 일정 수준에 이른 투자자라면 판단 능력,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꾸리면서 리스크 관리할 것인지가 수익률을 크게 좌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견으로는, 투자자가 진화하는 단계 살펴보면 리서치 능력 → 판단 능력 → 포트폴리오/리스크 관리 능력 순으로 발달하는 것 같다.


시장에선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어간다. 탁월한 리서치로 남들의 인정을 얻어 가고 싶은지(애널리스트형 투자), 수익을 얻어가고 싶은지(매니저형 투자)는 본인의 판단에 달려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친구이자 훌륭한 투자자의 블로그 글을 읽어 보실 것을 추천드린다. (https://blog.naver.com/haines/222662397088)


2) 좋은 동료가 중요하다. 망망대해와 같은 시장에서 혼자의 힘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함께 어획을 하는 것은 단순한 효율을 넘어 심리적 연대로도 작용한다. 투자는 스프린트가 아닌 마라톤이기에, 함께 페이스를 만들어가며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갈 동료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올해 초에 몇몇 지인들과 함께 스터디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만나게 된 인연들과 정말 많이 친해졌다. 월 1회 온라인 베이스의 스터디임에도 삼삼오오 만나 술을 마시며 친분을 나누는 횟수 스터디 세션보다 훨씬 더 많았던 거 같다. (물론 대화에서 투자 아이디어 공유의 지분율은 상당히 높았다ㅎ) 이들과 함께 치악산도 등반하고 한적한 농막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1박을 보내기도 했다. 12월은 장소 대여를 해서 한 해를 마감하는 리뷰 세션을 갖고 새벽까지 즐겁게 놀며 소회를 나눴다. 스터디에 나왔던 종목들을 리뷰해 보니, 발표 이후 100% 이상 오른 종목이 4개, 50% 이상 오른 종목이 18개나 있었다. 평소에 교류하며 종목이 잘된 경우를 카운트해 보면 이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또 각자 최소 물건 1개를 가져와 경매로 판매(양주, 화장품, 건기식, 지구본 등 다양)하고 수익금은 따로 모아 기부를 했다. 이렇게, 올 한 해 우리는 모두 함께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이 밖에도 비록 대면으로 만나진 않지만 상시 교류하는 스터디에서도 소위 네임드라 불리는 뛰어난 투자자 형님들, 동생들을 만나게 되어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게 되며 개인적으로 큰 인적 자산의 기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좌) 원주 치악산 등반 사진, (우) 연말 Review 세션


(2023년 스터디 Review 자료 中)


연말 행사를 통해 물건 판매 수익금 기부


3. 성장, 성장, 그리고 성장. 성장이 멈춘 기업은 보유 자산이 얼마가 있던 좋은 투자 대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우리 투자자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한 해 한 해, circle of competence를 넓히고, 투자 세계관을 확장하는 일을 멈추면 안 된다. 많은 부를 축적한 원로 투자자들을 보아도 시장의 변화하는 theme에 적응을 하지 못해 열정을 점차 잃어 가는 분들과, 낮은 자세로 MZ 세대와의 교류를 자처하며 또 다른 레벨의 성장을 일궈내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작은 '성장의 유무'로 인해 시장에서 이들의 입지는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2021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마음속으로 우러러보았던 이들과 함께 투자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격스럽다. 처럼 성장의 결실은 무엇보다 달콤하고 자극적이다.


투자와 성장의 선순환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꿈꿔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큰 매력이다. 주식을 알기 전 나의 모습은 학군이 좋은 특정 지역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어 사회적인 영예를 얻는 것 정도였던 거 같다. 이젠 꼭 한 조직에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의 이런 저런 꿈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몇 년 전부터 눈 여겨 보았던, 소외 받은 이들에게 헌신하는 기관을 직접 찾아가 기부도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보탬이 되기 위해 환원을 이어나갈 것이다. 간간히 연재하고 있는 경제, 역사 브런치도 더 열심히 해서 언젠가 내 지식의 소산을 책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또한 언젠가 가족들과 이 세상 구석 구석을 누비며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것도 꿈꾸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을 위해선 앞으로 투자를 더욱 더 잘 해나가야 한다!


이 밖에도 투자라는 일련의 과정은 나의 욕망, 콤플렉스, 잠재성 등과 같이 내면의 깊숙한 것들을 들여보게 한다. 투자를 통해 나 자신은 인간적으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주변 투자자들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한다. 난 그래서 투자가 참 좋다.


4. 결국 한 스푼의 고집이 필요하다. 투자에서 사고의 유연성이 중요한 것은 구태여 강조할 필요가 없는 진리에 가까운 명제다. 이처럼 투자를 하며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또 결국 '내 고집'이 없이는 투자를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올해 높은 수익률을 냈던 종목들에 대해 주변에 정말 뛰어난 투자자들이 부정적인 코멘트를 준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다. 물론 이런 조언이 도움이 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선택에 대한 믿음과 고집으로 수익을 내는 과정을 겪으며 결국 투자는 홀로서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자신이 바로 서있지 못하면 어떤 좋은 정보를 들어도 processing 해낼수 없고,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판단 과정이 없이는 높은 비중으로, 길게 수익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스터디를 하며 매일 같이 교류를 해도 서로의 포트 구성은 신기할정도로 너무나도 다르다. 결국 '각자의 게임'에서 수익을 내야하는 것이 투자의 세계이다.


내년은 더 많은 종목 pool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섹터를 공부해가고 싶다. 수익의 대부분은 결국 소수의 컨빅션 종목에서 나온다. 회전율을 낮추고 국내외에서 길게 수익을 누릴수 있는 진정한 투자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싶다. 또한 내년은 시장의 목소리에 보다 더 귀를 기울여 멀티 베거 주도주를 꼭 한 번 찾아보고 싶다. 투자자들과 더 많이 교류하며 인간적인 친분도 더 쌓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내가 그들에게 꼭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싶다. 

궁극적으로 투자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올해보다 나은 내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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