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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Oct 30. 2022

6.1 좋은 열망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1/2)

풀어야 할 숙제: 에너지는 유한하다.

이적, 왼손잡이


풀어야할 숙제: 에너지는 유한하다


성장과 생존이라는 화두는 생각해보면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잠시라도 우리 곁을 떠난 적 없는 주제였습니다. 장기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는 잘해왔습니다. 사회경제 시장은 기하급수(초선형)적으로 성장했고, 과학기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는 단일 기업, 조직 마저도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 오히려 과거보다 좀 더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고 동시에 가능한 영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 방향성에 맞추어 과감한 체질 개선에 성공한 기업들은 보란 듯 실제 그러한 성장 궤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떨까? 많은 비관적인 음모론이 있지만 인류 역시 전반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된 것 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간 평균 기대수명, 1800~현재[1]

일련의 데이터처럼 우리는 과거보다 분명 더 풍족히, 그리고 좀 더 오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극빈층 비율, 1800~현재[2]

이제 우리는 불안과 걱정을 떨치고, 일련의 시사점을 바탕으로 좋은 ‘열망’을 갖고 실천만 하면 될까요?


 적어도 지금보다는 성장과 생존에 대해 더 건강하고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제대로 된 맥락을 알고 실천할 수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이슈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작에서 새로운 기업의 속성을 ‘도시, 도시화’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참고 아티클: 도시를 닮은 기업) 이들은 당연하게도 도시가 갖는 전형적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존재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물리 법칙이 인류에게 준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로 에너지 문제입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과거 인류 경제의 폭발적 성장을 불러 일으킨 혁신은 화석 연료, 에너지의 발견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가 혁신에 필요로 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조달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화석연료에 비롯한 에너지가 가지는 문제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대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혁신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생각을 하는 행위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를 조직화한다고 했을 때는 이를 자극하고 지원하는 교육 시설, 휴게공간, 회의실 등 에너지 충전 및 발산을 위한 환경과 경험을 쌓는 장소를 제공하는 데 비용이 듭니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열역학 법칙과 같은 과학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함의는 무한정 무상으로 모든 인류에게 공급되는 완벽하게 효율적인 에너지원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이 좋아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전 지구적인 도시화는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를 낳았습니다. 도시의 기하급수적 확장과 발전은 그만큼 도시가 아닌 곳과의 상대적, 절대적 불평등 문제를 낳습니다. 도시내 구성원 소득의 기하급수적 성장은 동시에 범죄, 독감 환자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업, 조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관점에서 내가 죽지 않는 것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죽음 혹은 흡수를 의미합니다. 이 불편한 사실은 기업이 아무리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초선형 성장과 영속적인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모두가 거대 도시 같은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더욱이 이는 아마도 전체 시장에서 극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기업시장은 구글 연합도시, 아마존 연합도시, 애플 연합도시, 현대자동차 연합도시, 삼성전자 연합도시 등과 같이 몇 개의 수도를 중심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연대하거나(투자를 받거나), 완전 흡수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기업들은 우리가 하나의 수도로서의 성장을 꾀할 것인지 아니면 어떤 수도(중앙 플랫폼화된 기업)와 연합할 것인지를 의사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 생존을 위해 죽을지(완전 흡수, M&A) 자기 유사성을 갖되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는 독립된 조직이 될지도 판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과거에도 이런 패턴은 존재 했겠지만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고 의사결정의 속도와 질에 대한 양쪽의 압력은 더 커질 것입니다. 최근 배달 서비스의 초대형 딜 성사(독일계 기업이면서 기존 요기요를 인수해 가지고 있던 딜리버리 히어로가 또다른 양대 산맥이던 배달의 빈족 인수한 사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항공 인수, 현대 중공업의 위기와 조직 분할(여러 개의 기업으로 분사), 카카오 네이버의 각자 디지털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확장,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전통 시장(ex. 전통 은행, 금융사) 및 또다른 신흥 도시적 기업(ex. 토스와 같이 특화된 시장-핀테크-에 뿌리를 두고 빠르게 스케일 업하고 있는 회사)과의 경쟁, 저항 등 기업 시장 내 주체 간의 상호작용과 그로인한 다이나믹스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어떤 한 기업이 운이 좋아 중앙 도시가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위성 도시, 혹은 그 일원이 된다고 해도 문제는 또 남습니다. 예컨대 아마존은 아마존이 최고의 가치로 삼는 ‘고객’을 위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엄청난 혁신을 제공했지만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악독한 기업’이라는 사회적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고객에게 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제공하려는 과정에서 아마존 셀러는 과도한 할인, 출혈 경쟁을 강요받다 파산하기도 합니다. 아마존은 선제적으로 현장 직원의 최저임금을 미국 사회 평균보다 높게 지급하기로 했지만(미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인데 아마존은 2018년 15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한 켠에서는 과도한 노동착취와 인권침해 이슈를 빈번하게 몰고 다닙니다. 한 예로 2020년 3월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하던 시기 이탈리아에서 감염 중심지였던 밀라노 근교의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감염 예방조치를 요구할 때 아마존 관리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창고 소독이나 휴업 등의 조치 없이 ‘고객 가치’ 충족을 위한 차별화의 일환으로 현장 직원들에게 일상 업무를 강행한 것이었습니다. 일련의 사건은 이탈리아 전역 아마존 직원들의 파업, 나아가 미국 본사 대상 시위로까지 이어진 바 있습니다. 고객에 대한 강력한 집착은 아마존의 거대한 비전이자 철학으로서 아마존의 혁신과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옴과 동시에 그 그림자 역시 짙게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존보다 먼저 상징적 도시화 기업의 반열에 오른 거대한 중앙 플랫폼 ‘구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글은 사실상 오늘날 기술적으로든 사회 경제적으로든 없어서는 안 될 두 키워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두 기술을 앞장서서 개발하고 그 혜택을 소비자에게 사실상 무료로 제공해 혁신을 이룬 회사입니다. 무한한 정보 검색, 그로인한 양질의 컨텐츠, 지식의 무한한 사용을 앞세운 구글과 구글의 철학, 모델을 따르는 수많은 기업들이 고객에게 창출한 사회적 가치는 적어도 ‘비용’ 측면에서는 획기적으로 높다 느껴지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는 공짜 검색 서비스 및 온갖 컨텐츠를 즐기는 대신 그들의 온갖 데이터를 주었습니다. 구글은 ‘세상의 모든 데이터가 단일한 장소에 축적되었을 때 이를 가지고 인간도 능가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는 근본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인류에게 과감한 거래를 제안했고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미래학자 조지 길더George Gilder는 구글을 성장시킨 이 철학에 근본적인 가정을 바꾸지 않으면 종국에 실패하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구글의 철학에는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창의력, 지능의 모든 부분을 충분히 능가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게끔 하겠다는 오만한 포부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사실상 고객은 고객으로서 존재하기 보다 일종의 실험 쥐이자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의 감시대상, 피상적 인간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빅브라더: 사회학적 통찰과 풍자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소설 《1984년》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소설 《1984년》에서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소설 속의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한다. 이는 사회 곳곳에, 심지어는 화장실에까지 설치되어 있어 실로 가공할 만한 사생활 침해를 보여준다.


 관련해 2014년 미국 중앙정보국(CIA)·국가안보국(NSA) 출신의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은 “구글이 ‘지메일’을 엿보고,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미국 정보기관에 제공해왔다”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구글의 인공지능 스피커 ‘구글 홈 미니’가 이용자들의 대화를 무작위로 녹음하고, 사진 지도 서비스 ‘스트리트뷰’를 제작하면서 와이파이망의 개인 정보를 무단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구글은 “고의가 아닌 실수” 내지 “다른 의도나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그 해명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적어도 사용자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언제 어디서든 디지털 보안, 개인 정보 노출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우리가 일련의 맥락을 알고 국내 대표적인 기업을 바라보면 유사한 분석이 가능합니다. 쿠팡은 스스로도 ‘한국의 아마존’을 표방하는 만큼, 쿠팡의 그림자는 아마존의 궤적과 자기 유사성을 갖습니다. 카카오, 네이버 등 구글과 어느 정도의 자기 유사성을 갖는 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폭발적인 성장과 혁신, 과감한 조직 정책으로 국내외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도시적 기업 후보 ‘토스’는 넷플릭스를 통해 그들이 갖는 그림자의 자기 유사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토스는 비즈니스 산업, 모델은 다르지만 조직 운용의 관점에서 넷플릭스의 철학 및 조직제도에 있어서의 외연을 철저히 차용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로 선례를 벤치마크하는 기업들은 선례를 가진 기업이 갖는 고유의 세부적인 내러티브와 맥락을 상대적으로 간과하거나 거칠고 성기게 다루는 면도 있기 때문에 그 그림자는 조금 더 짙기 마련입니다.


  토스가 갖는 수많은 장점과 혁신을 뒤로하고 그들이 조직관점에서 갖고 있는 그림자는 심리적 압박, 불안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토스는 채용 과정에서 시장 최고의 보상이라는 과감한 기치를 내건다. 이는 넷플릭스의 정책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한 번 더 나아가 전 직장 대비 1.5배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고 1년에 두 번 연봉 조정이 가능한 절차를 둔다. 토스에는 리더가 없는 동시에 모두가 리더일 것을 강조합니다. 넷플릭스의 유명한 메타포, ‘프로 스포츠 팀’을 토스 역시 추구합니다. 동료들은 가족이 아니라 프로 스포츠 팀의 선수입니다. 프로 스포츠 팀이 서로의 평가, 피드백을 통해 누가 지속하고 도태되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만큼 평가 없이 동료들의 피드백으로 많은 정책을 결정합니다. 해고까지도 그리합니다.


 그런데 일련의 정책 조합은 하나하나 최신 조직 이론 혹은 성공한 어떤 기업의 경험을 결합한 것이지만 ‘복잡계’라는 속성 아래에서 생각지 못한 화학작용을 낳는 측면도 있습니다. 일단 토스라는 조직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내가 이전에 받아보지 못한 ‘최고의 보상’을 받게 되는 것부터 내 성과가 동료를 기준으로만 판단되는 순간 구성원은 업무라는 본질에 집중하기 보다 그 보상을 받는 만큼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고, 특히 동료를 대상으로 그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다수는 이 과정에서 건강한 상호 압력을 넘어 ‘잘하는 척’, ‘많이 알고 열심히 일하는 척’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때로 동료 압력은 적정 선을 넘어 마녀사냥이나 과도한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 이미 높은 보상수준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자신보다 더 나은 보상을 받고 있거나 추가 조정신청을 했다는 소식에 감정적으로 반응해 결과적으로 경쟁적으로 추가 보상 조정을 요구하는 상황도 빈번히 발생하기 쉽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본래 구성원의 심리적 안전과 몰입을 위해 도입된 제도 간의 조합이 조직 구성원의 심리적 압박과 불안을 강화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큰 틀에서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추구하는 인력관리의 방향성과 결과적으로 배치되는 모순을 낳습니다.


 일련의 패턴에 놓인 기업은 그들이 물론 원하는 바는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높은 턴 오버Turn Over (모집인력의 이동)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 도시화라는 용광로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인재를 어떤 식으로든 끌어들이고 찰나의 재능을 서로 주고받은 다음 바로 교체하는 패턴인 것인데 인재 시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무한 반복, 지속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모델이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조직은 새로운 혁신, 해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References


[1] Hans Rosling, Ola Rosling, Anna Rosling / 이창신 옮김, 『팩트풀니스 Factfullness』, 김영사, 2019, 89p 제시 그래프

[2] Ibd, 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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