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엄마에게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건 할머니 집에 가서 할머니께 통장을 전해드리는 것. 혼자서 할머니 집에 갈 일은 거의 없다. 보통 아빠가 다녀오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아빠가 아프기 때문이다. 두세 달 전부터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시더니 아픈 배를 부여잡고 엄마와 응급실에 갔다. 내시경을 했을 때 별 이상 없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초음파 결과 담석증이란다. 쓸개에 돌이 많이 생겨서 혈관으로 흘러가 피가 통하는 걸 막고 있어서 그런 거라고. 아빠는 그날 밤 바로 입원하셨고, 엄마는 며칠 동안 병원과 집을 오고 가셔야 했다. 그 덕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혼자서 버스를 타고 할머니께로 갔다. 할머니 집에 가는 길은 꼭 도시에서 시골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 건물들을 지나, 점점 더 낮아지는 건물을 지나서 높은 골목을 올라가다 보면 초록색 나무들이 보인다. 버스에서 내리자 초록 나무 사이로 하얀 머리를 한 할머니가 보였다. 그렇게 나와 있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결국 정류장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신 것이다. 할머니와 말할 때는 평소보다 두 톤 더 높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더 명랑하게 말한다. 그래야 할머니가 좋아하신다. 잠시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아빠의 안부를 물으시며 우시는 것 아닌가.
"내가 동윤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어제도 느그 아빠 걱정돼서 계속 울었다..."
아빠가 50대든 60대든 할머니의 눈에는 그저 어린 아들인가 보다. 할머니는 아빠를 걱정하고, 아빠는 할머니의 걱정하고. 걱정의 선순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할머니를 배웅하고 수혁이에게로 향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침에 집에서 나설 때는 엄마가 나를 배웅해 주고, 지금은 내가 할머니를 배웅하고 나는 마침내 수혁이에게로 간다. 아빠는 병원에 있고, 엄마는 아빠를 간호하러 병원으로 나서고, 할머니는 아빠 걱정에 울고 나는 수혁이에게로 간다. 이상하게 사랑이 가득한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보는 일과 걱정하는 일과 누군가에게로 가는 일 모두 사랑으로 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께 밤에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의 대화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너의 파란만장했던 일주일을 전해 듣고, 곧 보자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장장 세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였다. 나는 그 세 시간 동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그저 벙찐 표정을 짓고 있어야만 했다. 너의 지난 일주일이 너무나도 고되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들을 말하는 네 말투가 너무 덤덤해서,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나는 더 슬퍼졌다. 네가 덤덤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두운 밤들을 보냈을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너보다 더 화를 내고, 너보다 더 슬퍼하는 수밖에. 차라리 네가 울면서 전화가 왔으면 달래주기라도 했을 텐데 울지 않는 너를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는 혼자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네가 울면서 전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네 마음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흘려보내며 전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울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언제까지나 우는 너와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보다 훌쩍 어른이 되어 이런 일로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는 너의 말투에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점점 눈물이 메말라가는 과정이라면 나는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앞에서는 울 수 있지 않을까. 눈물도 그 눈물을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흐른다는데 내가 너의 눈물을 봐주고 네가 나의 눈물을 봐주면 되는 거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걱정을 먹고 사는 거 아닐까. 아이가 엄마 앞에서 더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그렇게 엄마의 걱정을 먹고 자란 아이가 커서 다시 엄마를 걱정하는 것처럼. 인생은 그렇게 굴러가는 게 아닐까. 나는 어른이 되는 일은 덜 우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픔에만 우는 게 아니라 너의 아픔에도 눈물을 흘리는 것. 내 손가락에 상처가 있듯이 너의 팔에도 상처가 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 내 눈물의 범위가 나에게서 너에게로 또 당신에게로 그렇게 확장되는 것. 더 잘 우는 어른이 되고 싶다. 잘 우는 법을 안다면 너의 눈물을 더 잘 닦아주는 법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마음에서 흐르는 눈물이든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아빠가 8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셨다. 배에 남은 수술 자국, 팔에 남은 링거 자국을 보여주면서 엄청 아팠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그러면서 병원에 있을 때 봤던 드라마와 영화들에 대해서,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에 대해서 어제는 죽을 먹었는데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그럼 나는 열심히 아빠의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친다. 이제는 내가 아빠를 걱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빠를 통해 배운 '잘 우는 법'을 아빠를 위해 쓰고 싶다. 되도록 오래 그러고 싶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문장은 박준 작가님의 산문집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