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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아빠 Jul 09. 2021

#9 제부도에 가면

콩이가 딱 좋아하는 곳

제부도 갯벌에는 회색의 작은 '게'들이 산다.

갯벌 위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수천 수만의 게들이 구멍에서 나와 옆걸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자그마한 움직임이라도 있을라치면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 속도로 사사삭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그 많던 게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마치 그 자리에는 애당초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다시 외부 침입자의 움직임이 없어질 때

녀석들은 다시 동시에 기어 나와 열심히 움직인다.


여름의 제부도 갯벌에는 게만큼은 아니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의 수도 많다.

발에는 길쭉한 장화를 신고 손에는 장난감 삽과 양동이를 들고 갯벌 이곳저곳을 파 헤친다.

햇살은 따가워도 바람이 시원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면 제법 견딜만하다.




콩이는 갯벌을 좋아한다.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촉각이 예민해 뻘의 진흙을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웬일인지 이 녀석은 갯벌에 철퍼덕 주저앉아 땅을 헤집으며 좋아라 한다.

움직임이 없는 진흙을 파서 만지작 거리거나

움직임이 둔한 고동을 잡거나

움직임이 있지만 다시 제자리를 채우는 바닷물을 첨벙거리며

제 녀석만의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갯벌에서 놀아요


그러나 남들 다 하는 게를 잡아 빨간색 파란색 플라스틱 통에 모아 보는 것..

이것은 콩이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시지각과 눈손 협응이 좋지 않아

바람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게를 눈으로 따라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그들을 손으로 잡는다는 것은 녀석의 능력 밖의 일이다.

식용 목적도 아니고 단순히 재미로 작은 생명체들을 잡아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자조해야 할까.

안타까운 일이다.


아빠가 게를 잡아주면 녀석은 그걸 갯벌 위 구멍에 꽂는다.

녀석의 표현으로 게를 '심는다'라고 한다.

우악스럽게 게를 심어 게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몇 번 반복되어

"우악스럽게 하면 안 됩니다 콩이 씨~" 하니

우악스럽다는 단어의 어감이 좋은지

"아빠를 우악스럽게 꼬집을거야ㅎㅎ"

"내가 우악스럽게 때리니까 아프지~ 메롱ㅎㅎ"

계속 써먹는다.




콩이는 물을 좋아라 한다.

어린이집에서 물놀이하는 날이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울 때 짓는 표정을 한 콩이의 사진을 받을 수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무슨 신발을 신었던 개의치 않고 물 웅덩이로 첨벙 뛰어들어 한참을 통통 뛰어다닌다.

수영장에 데려가면 손발이 통통 불고 피곤해 잠이 들겠다 싶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나오려 한다.

목욕할 때는 항상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가 첨벙거리며 놀아야 한다.


제부도 해수욕장의 얕은 수심은 콩이가 물놀이 하기 아주 좋은 조건이다.

튜브가 없어도 바닥에 바위와 돌이 많은 부분만 피하면 혼자서도 안전하게 놀 수 있다.

다만, 서해인지라 밀물이 있는 게 탐탁지 않다.

녀석은 밀물이고 썰물이고 간에 일단 물에 들어가면 제 성에 찰 때까지 놀아야 나오려 한다.




푹푹 빠지는 갯벌과 적당한 수심의 물이 있는 제부도는

감각이 정상적이지 않은 콩이 같은 자폐스트럼 아이에게 참 좋은 치료실이 된다.

진흙을 파 모아서 산을 만들고,

발이 빠져 걷기 힘든 갯벌을 힘쓰며 맘껏 걸어보고,

갈매기의 움직임을 좇으며 잡으러 뛰어다니고,

게를 살포시 잡아 구멍에 넣어주고,

작은 파도를 손과 발로 직접 느끼며 물놀이를 하고..

놀이를 놀이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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