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고 싶었어.

아주 오랫동안. 4년전 그날부터 계속.

by 박하준

인연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된다.

서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 붕어빵 가게를 발견하고 믿기 시작했다.

그래서 혹여나 팥 붕어빵을 좋아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곰은 싫어하는 쑥과 마늘을 먹어가며 100일을 참았다. 그렇게 곰은 원하고 원하던 인간이 되었다.

곰도 했는데 나라곤 못할까. 심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붕어빵이다.

우리가 만약 진짜 인연이라면 만나게 되지 않을까.


서하는 이 따뜻한 공간을 그녀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지나치다 방문해서 그녀가 좋아하는 팥 붕어빵을 먹어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하는 추워져 붕어빵이 생각나는 계절이 오면 이 신비로운 가게를 방문했다.


이 가게라면 왠지 그녀와 한 번쯤 마주칠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마주쳐 슈크림 대신 팥을 주문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뭐라고 할까.


“사장님 이번 년도는 11월 2일부터 문을 여셨네요?”

“1일부터 문 여는 줄 알고 어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헤헤.”

“어제 일이 쫌 있었거든요. 단골손님에게는 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허허 괜찮습니다! 대신 오늘 팥 앙금 가득 넣어서 3000원어치 주세요!”


서하는 사장님에게 단골이라 불릴 만큼 이 공간을 자주 찾았다.

단골손님이라는 호칭은 그의 지난 2년간의 노력을 통해 성취한 것이다.


가게 문을 닫는 3월, 11월이 되기까지 8개월이 남는 기간.

서하는 이번 겨울에는 과연 영주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가게로 향했다.


영주도 이 가게를 알게되서 이 공간의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따뜻함에 마음이 열려, 잠시나마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서하는 생각했다.


가게에는 초등학생들이 보였다.

이제 막 태권도 학원을 마치고 꾸깃꾸깃 천원짜리로 붕어빵을 사 먹는 그들이 너무 귀여웠다.


“사장님! 팥 하나 슈크림 하나 주세요!”

“네. 금방 드릴게요. 귀여운 꼬마 손님들.”


그 애들을 보며 만약 영주와 내가 헤어지지 않고 결혼했다면 우리도 애기를 낳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와 영주를 닮아 귀여운 애기.


엄마를 닮아 팥을 좋아할까 아빠를 닮아 슈크림을 좋아할까 아니면 둘 다 좋아할까.

기왕이면 둘 다 좋아하면 좋겠다.


만약 평행세계가 있다면 거기선 영주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헤어지지 않아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을까.

그쪽 세계의 이서하는 서영주를 외롭게 하지 않고 항상 영주 곁을 지켜주면 좋을 텐데.

그래서 영주가 울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거기선 우리의 연애가 해피엔딩이기를.


이 공간에 오면 순수했던 20대 시절의 나와 나의 가장 소중했던 그리고 내 전부였던 그녀가 자꾸 떠 오른다.


‘영주는 알까. 나의 소원은 너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단 걸.’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고 보통 사람처럼 함께 늙어가고 싶었단 걸.’


따뜻하고 아늑한 그 공간에서 붕어빵을 기다리며 나는 지금은 소식조차 모르는 그녀와 다신 오지 않을 또 다른 미래를 그려봤다.


12월이 되고 야근하는 같은 팀 직원들을 위해 붕어빵을 가득 사 왔다.

같은 팀 직원들은 웬 붕어빵이냐고 놀랐지만, 겨울엔 붕어빵이 당연하듯, 슈크림 붕어빵과 팥 붕어빵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서영주라는 인연을 기다리며 서하의 발걸음은 항상 그 가게로 향했다.

서하는 인연을 믿었다. 언젠간 반드시 만나게 될 인연을 생각했다.

영주와 헤어지고 4번째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냈다. 그러자 1월이 되었다.


이번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서하는 조급했다.

겨울이 끝나기 전 영주가 이 공간을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하는 2년 동안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영주를 만났을 때를 대비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인사는 어떻게 건넬지 2년 동안 열심히 정리한 서하였지만 막상 영주가 눈앞에 나타나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영주는 서하에게 그런 존재였다.

영주를 만나면 바로 그녀가 도망가면 어쩌지 생각했다.

하지만 영주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했다.


그녀의 태연함이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와 드디어 얘기를 할 수 있단 생각에 서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주에게 막상 말을 걸려 하자 조금 무서웠다.


오늘 그녀를 보아하니 자신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이서하라는 사람을 다 정리한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을 떨치고 말을 건넸다.

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 너…. 서영주?”

“어……. 잘 지냈어?”


서하는 그녀에게 다가가기전 붕어빵 주문부터 했다.

영주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젠 습관이 된 주문이었다.


“팥 붕어빵 2개주세요.”

“오늘도 오셨네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젊은 여자 점원은 웃으며 붕어빵 반죽을 틀에 부었다.

서하는 기다리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영주 앞에 앉았다.

영주는 취기가 살짝 올라 있었다.


“영주야 술 마셨어?”

“어…. 뭐, 그냥 한잔하고 싶었지. 그보다 이서하 너 입에서 팥 붕어빵이 나오다니! 대체 무슨 일이야.”

영주는 슈크림이 아닌 팥 붕어빵을 주문하는 내 새로운 습관이 신기한 듯 말했다.

“무슨 일 있었지 ……. 영주야 그 있잖아….”

“어……?.”

“사과 먼저 할게. 그때 일 정말 미안해. 그리고 보고 싶었어.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계속.”


영주의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 뜨거운 무언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떨어졌다.

영주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그녀가 도망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쫓아가리 생각한 서하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상하게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하가 그토록 후회한, 그래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한 4년 전과 같았다.


4년 전 서하는 영주를 놓쳤다. 아니 잡질 못했다.

그날 영주의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무언가 텅 비어 보였다.

소중한 것이 사라진 사람처럼 슬퍼 보였다.


잡고 안아주고 싶었지만 지금 그녀를 잡으면 그녀가 더 아플 것 같았다.

아픈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서하는 영주를 잡을 수 없었다.

오늘 역시 영주의 마지막 표정은 슬퍼 보였다.

그 슬픈 표정은 서하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서하는 자신이 한심한 듯 중얼거렸다.


“나 너무 급했나?”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4년 전과 달라진게 없네. 영주의 저 표정만 보면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자책하고 있는 서하를 배려하듯, 점원은 조용히 서하의 붕어빵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일을 하였다. 점원의 배려는 사소한 것이었지만 항상 따뜻했다.

그 따뜻함에 영주와 서하 모두 이 가게의 단골이 되었고, 이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하는 지금 대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마법사라 칭한, 자신의 아지트인 이 공간의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제가 말한 그 여자가 저 여자에요. 참 예쁜 친구죠?”


술은 영주가 마셨지만 그녀의 알코올이 서하에게 전달된 것일까.

취중진담 하듯 서하는 속 얘기를 젊은 여자 점원에게 털어놓았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안주는 붕어빵이라고 할 수 있겠다.


“4년 만에 만났어요. 꼭 만나길 바랬고 만나면 이번에는 그동안 못했던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아직 아니었나 봐요. 사실 저희 되게 오래 사겼거든요. 8년 정도 됐나? 엄청 길죠?”


젊은 여자 점원은 자신의 할 일을 하며 서하의 말을 경청해 주었다.

이 공간의 주인인 그녀가 자신 가게의 단골손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다.


“저 혼자서 엄청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 친구 만나면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첫인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근데 막상 만나니깐 머리가 새하얗게 된 거 있죠?”

“4년전에 그 친구한테 차였어요 저. 그 친구 외롭고 아프게 해서. 그래서 정말 사과하고 싶었어요 진심을 다해서.”


서하는 잠깐이지만 영주를 만나 좋았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이 영주를 만나 좋아서인지 미안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존재가 그녀를 힘들게 한다고 서하는 생각했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으며,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8년 전 이서하가 사랑한 그 시절 그녀였다.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머리 스타일이었다.

자신과 사귈 땐 긴 생머리였던 그녀가 지금은 단발이 되었다.

서하의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멈추지 않았다.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그 자리에서.


“사장님이 전에 인연은 돌고 돌아 만나게 된다고 했잖아요. 그 말 이제 진짜 믿어요. 오늘 딱 만났잖아요.”

“흑…흑. 사장님 이대로 저희 인연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은 아니겠죠? 분명 다시 만날 수 있겠죠? 흑. 그렇다고 대답해 주세요. 사장님.”

“흑. 아직 영주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있어요……. 흑…흑. 요정님. 산신령님 제발….”


서하는 그 공간에서 어느새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렸다.

그의 투정은 너무나 간절했다.


만약 요정이 있다면 서하의 이런 투정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묵묵히 서하의 말을 듣던 이 공간의 주인은 입을 열었다.


“손님. 인연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의 끈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끊으려 해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이지요.”

“인연의 끈……?.”

“지금은 엉켜버린 인연의 끈이 조금씩 풀려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20대처럼 보이는 저 여자 점원. 말을 할 때면 어딘가 연륜이 느껴 보이지만 겉모습은 영락없는 20대이다.

그런 여자 점원은 알 수 없는 말을 하였다.


척박하고 힘들었던 일제강점기.

사랑하는 이를 잃고 인간 세상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 다짐한 그녀였지만.

눈앞에 얽히고 얽힌 인연이 가여워서일까. 아니면 단골손님에 대한 배려일까.

그녀는 다시 복잡한 인간 세상의 가여운 인연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

이 공간은 나에게 있어 영주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늘과 쑥을 먹은 곰의 마음으로 다시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무언가 신비로운 이 공간이라면 영주를 다시 만나게 해줄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