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 우연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행이 아닌걸

by 건너별





공항에서 마주한 낮은 구름과 때타지 않은 전경에 넋을 잃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가이드를 따라 우리 투어에 배정된 푸르공으로 향했다. 여기서 푸르공이란 스타렉스랑 비교되는 개념인데, 오프로드 초원을 달리는 교통수단이자 몽골 투어의 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투어 내내 푸르공을 운전해주시는 기사님과 가이드님이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서 리드해주시고, 우리는 그 뒤에 앉아서 쫄랑쫄랑 놀며 가면 된다. 앞으로도 계속 언급하겠지만 오프로드 초원은 낭만이 있기도 하지만,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지 신기하기만 하고, 운전기사님의 경력이 갈수록 궁금해지는 그런 전무후무한 경로를 따라 가게 된다.


여행을 간다면, 어느 정도는 응당 그 감성에 젖어주어야 예의 아니겠어?
푸르푸르 푸르공



어쨌든, 나는 푸르공에서 동행들과 함꼐 앞뒤로 앉아볼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 전에 직접 요청하니 '와 앞뒤로 앉기를 원하는분은 거의 없던데 알아보겠습니다' 라고 해주셨고, 처음엔 안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바꾸어 주셨다. 역방향을 감수하고 앞뒤로 앉고 싶던 이유는 서로 마주보며 가는게 더 재밌을것 같아서가 첫번째였고, 앞뒤로 앉아서 여러 게임을 하고싶어서가 두 번째였다. 언급하였듯 나는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엔터테이너로의 성향이 발휘되는 게 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달까!


어쨌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당부말씀을 듣고, 가이드와 기사님의 정식 소개를 받았다. 기사님은 터프한 할아버지 스타일이셨고, 카리스마 있어보였다. 그리고 가이드님의 성함은 엥크(Enkh). 한국어가 처음에는 조금 서툰것같아 당황했지만 발음이 어눌할 뿐 언어능력 자체가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것도 차차 느낀거지만 여러 번 해석하며 다시 전달내용을 재확인하는 게 퀴즈를 맞히는 듯한 재미도 있었다. 어쨌든 엥크와 기사님과 함께 본격적인 몽골 초원 탐험 시작! 차에 짐을 싣고 사진도 찰칵!

칭키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2시였는데,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가다 보니 느낀건 정말 뜬금없이 등장하는 가정집같은 음식점에 '음식 돼요?' 라고 직접 발로 뛰며 점심 식사 장소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느껴본적 없던 극 아날로그 감성. 마음껏 여유를 가져보자.

출발하기 전 넘치는 설렘마저 아까워 다시 주워담아서 찰칵.


사진이 나온 김에, 본격적으로 함께할 동행 6인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시작한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 긍정의 힘 긍졍누나 : 에너자이저! 여행 중반까지 입이 귀에 걸리고 틈만 나면 우리에게 힘이되는 긍정적인 멘트를 날려줬다. 초등교사라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어투와, 챙기는 마음과, 글씨체까지 삼위일체.

2. 해외파 Rain 누나 : 유럽에서 살다오기도 하고 여러 여행을 다녔다. 다른 이들이 너무 이상적인 말들을 날리면 현실적인 말로 대화의 밸런스를 맞춰준다. 물맛감별사이자 에어배드 색깔별로 주문해준 배려의 아이콘.

3. 허르헉기피자 헉이형 : 키도 크고 비율 좋고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형님. 양고기가 너무 안맞아서 여행이 거듭될수록 말수가 없어져 짠했지만, 사진 하나는 기가막히게 찍어준 고마운 형.

4. 본인 : 기타로 몽골 뒤집어놓을 부푼 꿈을 안고 온 팀모집자이자 리더이자 오락부장. 스케치북과 각종 게임과 거짓말 탐지기 등을 준비했다. 통치력을 인정받아 가이드 피셜 '왕'으로 불림.

5. 잇몸튼튼마음튼튼 진이 : 총무를 선뜻 자처해주고, 묵묵히 할 일과 사진
찍을 아이디어를 제시해주던 꼼꼼이. 할일을 덜어준 고마운 존재이자 택견능력자. 잇몸건강에 일가견이 있다.

6. 근육질 토마스 : 함께 여행을 기획한, 버스킹 동아리시절을 함께한 동생. 노래와 뮤지컬 능력자라 기타반주에 노래를 준비하고, 이번 여행의 최연소이자 능글맞은 농담을 보여준 귀요미.






말도 안되는 풍경에 우리는 '첫 느낌'을 말 그대로 '만끽'하고 있었다. 오래 가면 분명히 별 감흥 없어질거야 라고 되뇌이며. 그리고 초원. 윈도우 XP 배경화면에서 보았던 그 풍경이 지구 한바퀴를 도는 거리만큼 가도 지속될 듯이 펼쳐진 아름다움의 시작, 시작, 다시 시작.

푸르공 에서 앞유리를 통해 바라본 풍경. 아직은 포장도로라 승차감이 무난하다.


저 앞쪽에 검게 비친, 초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얼룩은 무엇인가? 나는 궁금하여 물어보니 '구름의 그림자'라고 했다. 나는 바로 믿기가 힘들었다. 구름의 그림자라니. 직접 땅을 밟아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들뜬 목소리로 모든 동행에게 소리쳤다. 사실 구름자든 아니든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설렘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서 그렇게 괜히 부정했나 보다 싶다. 그 어느때보다 낮게 떠있는 구름에 '에이, 저게 말이 돼?' 라는 말을 속으로 외치며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신기해 하고 있었나 보다.


그 초원에 대해 물어보니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평선 끝까지 걸려있는 끝없는 초원, 그리고 사막. 그리고 산까지. 모두 다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풍경을 보고 그 순간을 느끼지 않고 사진으로, 눈으로 담지 않으면 그건 유죄였다.


이윽고 가축 떼가 보이기 시작했다. 소와 양. 특히 양. 몽골에서의 주식인 양 떼가 눈앞에 무리지어 펼쳐졌다. 흰색, 갈색, 얼룩색 알록달록 평화롭게 거니는 양들. 동물원 같은 좁다란 철창이 아닌 드넓은 초원에 자리하고 있는 그 생명체들은 보기에도 너무 편안했다.


양떼에 섞여서 놀고싶었다. 그러기엔 겁많은 종족. 물론 나도.

그리고 도로를 지나가는 말. 그들은 자유롭게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나중 가서는 너무 자유로워 보여서 크랙션을 울려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지나갑니다~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각자 몽골에서의 사업 아이템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했다. 울란바토르에서 게스트하우스 차리기, 초원에서 뜬금없이 화려한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 운영하기, 건축업계 종사하는 형님이 말한 명명 규칙에 따라 한국인 처음으로 '더 퍼스트' 건축물 짓기. 고작 몇시간 있었는데 살 생각을 하다니. 농담 섞인 말일지라도 그 인상이 다함께, 동시에 강렬했음이 틀림없다.


여러 가게에 가이드님이 허탕을 치고 4시쯤 도착한 한 가게(라기보단 가정집에 가까웠지만). 거기서 식사를 하고 마저 이동하기로 했다. 몽골에 도착하고 처음 보는 게르가 우리는 수줍게 반겨주었다.


게르와 아주 작은 마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콩순이 화장대, 세발자전거, 장난감 총 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것들로 동네를 거니는 아이들을 만났다. 처음엔 대치상황이었다. 얘네들은 보통 여행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그리고 용기내에 인사를 건네자 그들 중 한명이 매우 수줍은 얼굴로 손을 흔드는 듯 마는듯 나에게 화답해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엽고 감동(?)적이기까지 해서 나는 돌고래 초음파를 내듯 소리를 질렀다. 그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겠지. 누가 이런 곳에서 그들을 해하려 들었겠는가. 미약하고 소중하고 새벽 공기처럼 평화로우면서도 구름에 비친 햇볕으로 따스했다.

근육질 토마스는 새콤달콤을 준비해서 아이들에게 마술을 보여주었다. 어디로 갔는지 맞히면 주겠다는, 누구나 알듯한 제스쳐로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달콤한 먹을 것은 역시 만국 공통이었다. 그들은 좋아했고 이내 함께 총싸움을 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신나서 함꼐 총을 들고 대치해 주었다. 게르 맵에서 잠시 서든어택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6명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식탁과, 뜨겁고 건조한 날씨 그대로를 담고있는 미적지근한 콜라가 대령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컵이나 시원한 물은 사치였다. 나는 오히려 좋았다. 이런 지극히 로컬 감성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내가 이번 몽골여행에서 기대했던 것 중 하나였다.

이곳은 집인가 식당인가!

그리고 한쪽에는 몇개월 되어보이지 않는 갓난아이가 옆에 지켜보는 보호자도 없이 너무도 씩씩하게, 울지도 않고 누워있지 않은가!

강하게 자라고 있는 애기와 바로 우유먹이기를 시전하는 누나( 이하 긍정의힘 긍졍누나).

갑자기 애기 돌보기 시험이 펼쳐졌다. 그 중에는 아무도 결혼하거나 아이를 길러본 사람이 없었고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한 아기를 누가 잘 돌보나 이야기를 나누고 어쩜 울지도 않나 하고 신기해 했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설렘 중 하나는 예상하지 못한 그 무언가이다. 몇개월 되지도 않은 그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그런 거. 그리고 문 앞에 서서 그새 친해졌다고 우리를 바라보고, 악수하고, 뽀뽀를 받으려 볼을 건네니 흔쾌히 마중나오며 다가온 입술에 참을수 없는 기쁨. 이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여행이고 우리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움과 감동인 것이다.


또 올꺼지? ><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 마주한 몽골로컬 음식! 양고기 볶음면이라고 불리는 '초이왕' 이 우리가 처음으로 몽골 현지에서 마주한 음식이었다. 양고기와 단순히 밀가루 면으로 만들고 후추를 뿌린,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었지만 내 입맛에는 너무도 딱 맞았다. 면을 좋아하고, 양고기도 냄새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무난하다는 평가를 했지만 유난히 동행 중 한명은 맞지 않아했다. (그때는 그 형이 그렇게 먹을 걸로 힘들어할지 알지 못했다).

고소하고 별다른 맛이 없는(말 그대로 맛이 존재하지 않는), 밀가루 맛이 강하고 후추로 맛을 낸 그 양고기 요리는 무언가 몽골 로컬 감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듯 했다.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 '몽골에 온걸 환영한다! 일단 이것부터 먹어봐' 라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동행 6명중에 유일하게 그릇을 싹싹 비워서 맛있다고 요리해준 아주머님께 전하기까지 했다!

미적지근한 콜라와 양고기볶음면. 이것이 몽골 감성이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출발했다. 몽골 투어를 하면 차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매우 많다. 실로 긴 여정이었다. 그 사이에 석양이 지는 곳에서 잠시 사진을 찍었는데,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름, 석양, 초원

삼박자의 붉은 조화.

이쪽을 봐도 멀리 펼쳐진, 끝으로 가면 왠지 아름다운 절벽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느낌. 동, 서, 남 북이 모두 구름과 석양과 초원의 기가 막힌 조화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러고는 더 긴 시간을 달렸다. 마지막에는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지쳐갔지만 나는 혼자 노래를 계속 불렀다. 그리고 불이 꺼지고 어느 게르에 도착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오프로드 길을 달리며 시간은 9시에서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윽고 여러 게르가 모여있는 마을에 도착. 늦은 저녁을 먹었고 메뉴는 허르헉과 샐러드였다. 뜯어먹는 갈비가 식었어도 맛이 끝내줬다. 나는 마음에 들었다. 몽골 음식 별거 아니네, 나랑 잘 맞네라고 느끼고 있었다.

배고파서 허르헉헉대며 먹은 허르헉!




아직 어떤 특별한 관광을 한 건 아니지만 몽골의 첫날은 나를 더욱 더 기대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샤워실에 벌레와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향은 몽골 여행에서 감수해야 할 첫번째 허들임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첫날에 아쉬워 기타 연주를 잠깐 시작했고 사람들이 지나가며 '낭만있다' 고 외쳐주었다. 같이 놀자고 했는데 수줍어 계속 그 근처를 뱅뱅 도는 중이라고 했다. 별보기에는 아직 구름도 많고 날씨가 좋은 날도 아니었고, 아직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았기에 잠깐 맛을 보고 들어가서 잠을 청하였다.



게르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여행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려고 해.


나는 자면서도 입이 귀에 걸렸고,


몽골의 첫날 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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