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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May 15. 2021

공원을 따로 갈 필요는 없잖아

삼차원의 세계를 이차원으로 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그리거나, 촬영하거나. 후자의 방법이라면 첨단기기로의 터치 한번으로 담아 버리면 그만이지만, 아파트 단지 안에 마련된 휴식공간에 앉아 시야에 담긴 풍경을 그리는 상상을 하여 보니,

 위에서 보면 나란하게 마련된 그 길을 보며,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멀어져 하나로 수렴해 갈 소실점을 떠올리게 된 건 중학교 미술 시간 이후 꽤 오랜만이었다. 평행이 아니게 그려지는 평행선과 그 선의 사귐.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왜곡하는 인간의 감각 기관의 한계라기 보다는, 뻗어나가는 관점의 특별함이 아닐까.




공원을 따로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라서 빠르게 걸어 돌아오기 급급했던, 뇌 청소를 위한 달리기 트랙으로 이용되어 왔던 그 길은, 미시적 관점에서의 사소한 전환의 국면을 반가이 맞이하며 나의 자극되지 못한 감각을 깨워 내고 있었다. 마치 잊고 있던 오래된 물건을 늘 머물던 보금자리를 둘러 보다가 우연찮게 마주한 것 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내 앞에 놓인, 물을 내뿜지 않고 조용히 찰랑이는 분수에 동그란 파동의 흔적이 겹겹이 생겨남으로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리. 가벼운 무언가가 톡 톡 터지는 듯한 소리. 소리가 커진다고 해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저 외출 시 우산을 챙겨야 할 뿐, 비가 올 뿐이라는 걸. 언젠가 그치게 될 거라는 걸.


다시 풍경을 바라본다. 허공의 시야에 쏟아지는 비가 사진에도 담길 만큼 거세어 졌다.


나는 그저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 푸른 하늘을 상상하여 본다. 아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나를 상상하여 본다. 분수에 나오는 예쁜 불빛과 뿜어져나오는 물결을 상상한다.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과거에 대한 상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시 물리쳐내고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을 나는 낭만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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