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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의 품격

by 건너별

너의 시린 발과 손에


충분치 못한 방어막들을


충분치 못한 부지런함으로


단순히 번역 및 할당키에는


무리가 있음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끓을 대로 끓어 버린


너의 흥미의 샘에 속아


열차의 선로를 다시 변경하는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없던 사랑은 그저 없다.


0에다 얼마를 곱해도 여전히 0이다.


다시 글을 쓰지 못할 것 같고


머릿속이 메마른 바다와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아도


결국 나는 부끄러움을 모든 사람이 보도록 알린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보단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이기니까.



이 기회에 나는


회색 빛의 웃옷과 함께



내월의 긴 날씨와 걸음에



마음의 준비를 한다.




언제나 귀에 걸린 입보다


익숙한 나의 이어폰과


순간순간을 공유할 우체통을 찾아다니는




나는 그래도 놓지 않는다.


글을 계속해서 쓴다.



오비탈과 같은 곧 사라져버릴 언어와 불빛일지라도.



산비탈과 같은 삐끗하면 미끄러져버릴 발목일지라도.



자존심보다는 부끄러움의 품격,


고장날 리 없는



우아한 생의,

지칠 줄 모르고 똑딱이는 나침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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