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마을에서(1)

연재소설 - 그림자를 찾아서

by Chris

이곳에서 생활한 지 닷 세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떠날 채비를 하겠다던 스승은 그러한 준비는커녕 낮에는 수도원의 도서관에서 저녁에는 이리 저리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나 역시 이곳의 생활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사람들하고도 매우 친해져 이제는 어디를 가도 이상하거나 호기심으로 바라보진 않았다. 친구도 몇몇 사귀었는데 그중에서도 유상이라는 친구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존경받을 만했다. 그가 일하는 것을 보면 마치 황소가 일하는 것 같았고 어떤 말을 꺼낼 때면 그 안에 진리가 담겨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호기심 어린 눈에는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으며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을 했다. 그는 또한 친구들과 앉아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는데 누구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농담을 즐길 줄 알았다. 자신의 신을 경배하면서도 이것만을 진리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아직은 사막과 이곳 이외의 장소를 떠나본 일이 없기에 다른 세상을 동경하였고 그도 역시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그와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게 될 무렵 나는 이곳이 무의식의 세계로 불리며 나는 그림자를 찾아 다른 세계에서 이곳으로 왔다는 말을 했다. 차마 이 세계가 나의 무의식의 일부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내가 한 말만으로도 꽤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바보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 많은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땅 밖으로도 나가보지 않는 사람이 이해한다는 것은 귀신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었다. 내 말에 유상은 놀라는 듯하다가 이내 자세를 고치고 내 손을 붙잡고서 말을 했다.

“사원 안쪽에서 수도하는 고승들에게는 다른 환상이 보인데. 그 환상 속에는 우리와 다르게 입고 있는 사람들이나 이상하게 생겨서 사람들을 태우고 빠르게 굴러다니는 물체들도 보인다고 하지. 또한, 저 성상보다도 높은 건물들도 있다고 해. 좀 더 도력이 있는 사람은 그곳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거리를 걷고 실제로 만져보기도 한다는 말도 있었어. 나는 그 이야기가 단지 환각작용이나 환상 따위로 생각했어. 하지만 너를 보니 그것이 사실인 것 같구나. 이럴 수가! 보이지 않는 세상이 실제 하다니!”

그들 역시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림자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신기하게 느꼈던 감정들을 지금 이 친구는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체화되어 자기 앞에 있다는 생각이 그를 고무시켰고 그는 그 느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그쪽에는 무엇을 먹고사는지부터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까지 상세하게 물어봤다. (나는 그들이 영혼이 벗고 간 그림자라고 끝내 말하지 못했다) 유상의 눈망울은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났다. 호기심을 가진 어린아이와 같은 그 빛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내가 찾아야 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언가 간절히 갈망할 때 느껴지는 빛은 그림자를 찾아야만 하는 내가 가져야 하는 아이와 같은 호기심이었다. 그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내게 질문을 던졌다. 첨단 기술이나 과학과 같은 이야기도 좋아했지만, 의식의 세계에서만 알고 있는 다양한 신의 존재에나 철학에 관해서도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질문이 끝나면 그는 언제나 나에게 자신이 직접 키운 작물이나 음식들을 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자신이 소유한 것 중에 합당한 것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좋은 것을 받는 데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미안해했다. 그는 마을에서 인기가 많은 터라 여기저기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들에게도 점차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마을에서 지낸 지도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이곳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의외로 식량과 물자가 풍부하다는 점이었다. 산 위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협동으로 인해 적은 노력을 들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식량을 보유할 수 있었다. 마을에는 공동 창고가 있어서 그곳에서 누구나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탐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어린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가 자기 일을 해야 했지만, 사원의 수행자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소유하는 일에 얽매이면 안 되었다. 이들에게는 얻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그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현실의 기억을 잊어버린 채 죽기 전에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이들이기에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념은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 아기들은 어떤 일을 하는 거야?”

“그들은 젖을 물리는 이들에게 행복감을 주지. 물론 이들은 자기가 행복감을 주어야 한다고 의도하지는 않아. 그런데도 그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행복한 마음을 주지. 그들은 그런 행복감을 주는 것을 그 스스로 꺼리지 않아.”

유상은 이곳에서는 이방인도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해야 한다며 자신이 들었던 것들의 일부를 자기 마을의 친구들에게도 들려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으나 유상의 이야기를 듣고 달려온 친구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저녁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그들은 유상과 마찬가지로 맑은 눈과 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놀라워했고 신비로워했다. 점점 소문은 커져 그의 친구들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저녁을 찾아왔고 나는 그들에게 나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들은 내게 먹을 것과 자신들이 가진 것의 일부를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이곳에서의 생활이 완전히 적응한 것 같이 느껴졌다. 보름이라는 시간은 서로에게 끈끈한 유대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아이들은 나를 두고 이름 대신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더욱더 친해진 어떤 아이들은 내가 떠나지 않고 자기들과 함께 있기를 바랐다. 따뜻한 그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온기 속에서 어린 시절에 어머니, 아버지 품에서 느꼈던 가족의 의미를 차츰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이곳을 떠나 나의 그림자를 찾아야 하는 것이 내 사명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질수록 마음 한편에는 잃어버린 그림자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져만 갔다. 이곳 사람들과 친해지고 웃음이 많아질수록 머무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울고 싶어 졌다.

밤이 되고 잠을 청할 때면 자리에 누워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생각을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의 삶에 만족해버릴 것만도 같았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같이 느껴졌지만, 마음 한쪽이 뚫린 듯한 느낌이 끊임없이 나를 흔들었다. 이곳은 이곳만의 규율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의 일을 하기만 한다면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또한, 누구도 남을 비방하거나 헐뜯지 않았고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추구하고자 노력했다.

며칠이 더 지났을까, 한동안 보이지 않던 스승이 다시 찾아왔다.

“이곳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따뜻하며 자상합니다. 가족도 아닌 저를 가족처럼 맞이해 주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그래 그 감정을 잊지 말게. 그 감정은 자네가 현실로 돌아가 다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니까. 다만 그대가 그 마음을 다했을 때, 준 만큼 받지 못한다고 여기지 말게. 그렇게 여기는 순간 그대 앞에는 벽이 생기게 된다네. 그대는 그 마음의 악마가 쌓은 그 벽을 부숴야 하네. 계속 부수고 나면, 그 노력을 지켜보는 이들이 벽을 넘어 그대에게 올 걸세. 바로 여기 사람들처럼 말이지. 그대는 이들처럼 결코 마음을 주는 행위에 한계를 정하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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