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민 Oct 07. 2021

'아빠 대출'

대학원 학비 마련을 위하여

"그냥 남들처럼 편하게, 평범 직장 다니다가 결혼하면 얼마나 좋아. 왜 자꾸 힘든 길을 가려는 건지, 참......"

멀쩡히 다니(는 듯 보였), 나름 번듯한 직장을 갑자기 때려치우고 대학원엘 가겠다고, 그러고 나서 졸업 후엔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선언이 얼마나 기가 막히셨지.

어느 날 아빠 술을 진탕 드시고 집에 와서 뒤늦게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내가 '퇴사와 프리 선언'을 하던 날엔 일절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더니 며칠이 지난 그제서야.


어릴 적부터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다행히 지금은 아니다) 아빠는 내게 무서운 존재였다. 남들 눈에는 절대 무서울 리 없는 지극히 자상하고  합리적인 우리 아빠 왜 그렇게 무서웠냐 하면, 평소의 그런 자상한 모습 때문 조금이라도 화가 나거나 기분 안 좋 그 가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번도 회초리를 들고 날 때리나 거친 언어를 쓴 적도 없는 우리 아빠지만, 소심 내 눈에는 아빠가 조금이라도 화를 내면 그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빠의 감정 변화를 미리 파악하려 이리저리 상황을 살피고 눈치코치 봤던 것 같다.


"큰 딸은 똑똑하고 작은 딸(=나)은 끈기가 있지."

아빠는  두 살 터울, 머리 좋은 언니에게는 '똑똑하다'는 칭찬을 쉽게 해 주셨지만, 내게는 그 똑똑하다는 타이틀을 단 한 번도 붙여주지 않으셨다. 그나마 내가 들을 수 있었던 칭찬 몇 가지는 '노력을 잘한다', '집중력이 좋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는 유치원 때부터 완벽한 스토리라인으로 구성된 만화를 그려서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고, 평소엔 여유롭게 잘 놀다가 시험기간 닥치면 뒤늦게 벼락치기를 해 성적이 좋았다.

반면, 줍음 잘 타고 엉뚱한 생각 많이 하던 나는 좋아하는 반찬인 '햄'이나 '소시지'에게 편지나 쓰고, '나팔 방귀'란 별 희한한 제목의 노래 지어서 부르곤 했으니......


덕분에, 나는 기를 쓰고 아빠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늘 발버둥쳤다.

내가 가진 건 '끈기''노력'뿐임을 잊지 않고, 그 둘을 최고의 무기로 내세 치열하게 살아갔다.

그래서일까. 나는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회사에서 일 잘한다고 능력을 인정받아도, 단 한 번도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단지, 그저 '남들보다 더 끈질기게, 더 많이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생각했을 뿐.


아빠의 인정을 갈구했던 나였기에, 뭐든 남들이 다 하는 만큼 꼭 해서 아빠에게 잘 보이려고 부단히도 애썼다. 그렇기에 퇴사를 하겠다고 폭탄선언한 일은  생의 가장 큰 '반항'이었다. 퇴사 자체만큼이나 큰 일이어서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여태 말썽 한번 안 부리고, 늘 말 잘 듣고, 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나름 이름 있는 회사에 취업해 알아서 잘 사는 줄만 알았던 착한 작은 딸이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거액의 학비 예상되는 전문 대학원에까지 진학한다고 하니, 어찌나 당황스럽고 기가 막히셨을까.

사실, 내가 부모였더라도 (딸의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지 않는 한) 죽어라 뜯어말리고 싶었을 거다.


아빠의 취중진담 이후, 오랫동안 괴로웠다.

나의 괴로운 마음을 풀기 위해, 그리고 아빠의 근심을 덜어드리기 위해 장문의 편지를 썼다. 

무서아빠 앞에서 나의 퇴사 사유를 설득력 있고 그럴듯하게 말하지는 못할지언정, 글로 찬찬히 쓴다면 나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충 이런 식의 글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이 중요한 사람'이라서 결혼하고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그래서 나중에도 계속 일하기 위해 지금 잠시 일을 그만두는 거라고. 그게 직장을 참으며 억지로 다니는 것보다 행복해지는 이라고.

아르바이트며 장학금이며,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 최선을 다해서 학비 보탤 테니 한 번만 딸의 선택을 믿어달라고.

딸이 행복해지기 위한 일이라는데, 어느 부모가 극구 반대하랴.

아빠는 '돈은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딱 한마디 툭 뱉으시고 다른 말은 삼가셨다.


그 후로도 아빠는 나의 계획에 노골적으로 반대하진 않으셨지만, 종종 "프리랜서는 어떻게 되는 건데?", "일은 어디서 받는대?" 등 아직 대학원 입시도 치르지 못한 나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앞서 걱정하는 말을 흘리며 나의 걱정과 근심을 증폭시키셨다.


그리고 몇 달 뒤, 적적으로 진짜 내가 원하던 대학원에 붙어서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종종 집이 학교와 멀다고 징징거리기도, 통역 수업을 들으며 하루가 다르게 일희일비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하는 내 모습을 아빠가 탐탁해했을 리 없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다는 나의 소박한 계획에도 별 반응이 없으셨고, 내심 대기업 어딘가에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취업했으면 하시는 눈치였다.


힘겹게 진학한 대학원 생활 동안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직장생활 기간에 저축해 모든 돈을 생활비와 학비에 다 쏟아부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가진 돈이 바닥나자, 결국 아빠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 학비의 약 절반가량은 '아빠 대출' 찬스를 활용해야만 했다. 물론, 졸업 후 갚겠다는 조건을 내세워서 겨우 승낙받은 '조건부 대출'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 n년이 지난 지금.

아빠가 바라던 대로 대기업 통번역사로 취업하는 대신, 나는 여전히 집에서 아빠와 평일에도 부대끼며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있다. 확천금을 얻거나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매달 내 생활비는 알아서 따박따박 벌고 있고 저축도 점점 늘리고 있다.

비록 아빠가 원하던 대로 평범한 직장에 취직해 결혼하는 딸은 되지 못했지만, 하루하루 내 속도에 맞춰 일하고 자급자족하는 행복한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이제야 겨우 프리랜서로 조금 먹고살만해진 내가 '나 회사 그만두고 대학원 가길 참 잘한 거 같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아빠에게  당하게 했다. 그랬더니 아빠는 '그래, 목표가 있어서 간 거니까. 통번역은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이니까.'라답하. ^^


그리고 며 전, 아빠 은행 계좌로 '아빠 대출금'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수의 돈금했다.

물론, '아빠 대출 이제야 갚는다.'라고 뽐내기를 잊지 않았다. '나머지는 내년에  갚을 거야.'라고도 덧붙였다.

그냥 갚는다고 약속한 줄 알았지, 결국 떼이려나보다 체념했가 갑자기 뜻밖의 소리를  들었던지, 아빠는 어랏?하는 표정이셨다. 하지만 절대 '괜찮다'거나 '그래, 좋다'거나 한마디 없으셨다.


뭐야, 내 딴에는 힘들게 모아 나름 큰 마음먹고 드린 건데. 좋아하시는  맞기는 한 건, 액수가 너무 귀여워서 별 감흥이 없으신 건가, 좀 더 모았다가 크게 한 방에 쐈어야 했나 고민하던 찰나. 아빠로부터 짧은 카톡을 받았다.

'장하다, 제스민.'


아직 '아빠 대출금'을 완전히 갚은 것도, 내가 프리랜서로서 유명세를 떨친 것도, 큰돈 모아 내 이름으로 집을 산 것도, 주식으로 대박을 터뜨린 것도, 부잣집에 시집을 간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과거에  내가 힘겹게 내린 결정이 결국엔 잘 풀린 것 같아 뿌듯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무서워하던 아빠에게 직접 맞서, 용기 내어 내렸던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아서.


이번 역시 '똑똑하'는  끝내 듣지 못했지만 '장하다' 으쓱해져 괜히 한 번 국사전 찾아봤다.


장하다壯하다

1. 형용사 기상이나 인품이 훌륭하다.

2. 형용사 크고 성대하다.

3. 형용사 마음이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아무래도 이게 '똑똑하다'보다 더 멋진 표현인 것 같.











이전 01화 Prologue: 회사 밖은 지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