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라는 존재를 인식할 무렵부터 예쁘다는 말은 나에게 당연한 말이었다.
하얀 피부에 맑고 큰 눈, 긴 속눈썹, 높은 코와 붉은 입술, 계란형의 작은 얼굴.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외모였다.
가치관이 형성되기 전부터 받은 사람들의 호의는 아침이면 해가 뜨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으로 전락하기 충분했다. 나는 어른들에게, 또래의 친구들에게도 인기의 대상이었으며 화제의 중심이었다.
뛰어난 외모 덕에 밖에 나가면 명함을 받는 일도 수두룩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레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카메라나 사람들에 대한 공포는 없었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젬병이었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울고 웃어야 되는 그것들이 상의와 하의를 바꿔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애초에 감정을 온전히 표현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기침이라도 하면 걱정 어린 얼굴로 나를 걱정하기 바빴다. 그런 나에게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거나 공허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연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스로도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나는 어설프고 같잖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의 촬영이 끝나면 최고라는 말과 함께 엄지를 치켜세웠다. 시청자들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연을 맡은 드라마의 첫 화가 나가고 인터넷 게시판은 나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했다. 연기보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지만 계속되는 칭찬에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칭찬이 커질수록 승완에 대한 미안함도 커졌다.
승완은 나와 달리 배우를 하고 싶어 스스로 오디션을 보고 들어온 친구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불에 그을린 듯 부스스한 머리, 작은 눈과 툭 튀어나온 입. 촌스럽다는 단어가 어울리는 아이였다. 처음 승완을 보고 ‘이런 아이가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연기하는 모습을 보자 걱정은 감탄과 존경으로 변했다. 몇 줄 없는 대사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능력은 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연기는 승완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나와 달랐다. 그들은 피부가 별로라 화면이 튄다, 입이 혼자 너무 나와서 설치류 같다는 등 외모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배우는 연기를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의아했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승완에 대한 비난은 현장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승완을 보면 노골적으로 나와 비교를 했고 없을 때면 뒷담화를 해댔다. 그걸 들을 때마다 미안함과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승완은 자신을 향한 지적에 익숙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죄송하다 말하기 바빴다. 승완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비난과 질타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어넘기고는 연습실에서 밤늦게까지 대본을 들여다봤다. 승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반응은 언제나 냉랭했다.
드라마가 끝났을 무렵 나는 한 토크쇼에 출연을 하게 됐다. ‘천재 아역배우 정원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천재라는 문구가 부담스러워 나가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되는 요청에 며칠 더 고민을 하고는 승낙을 했다.
토크쇼는 작품에 대한 얘기보다는 내 얼굴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어릴 적 사진부터 현재의 사진, 미래의 모습을 예상한 사진을 보여주면 방청객들이 감탄을 하는 식이었다. 시청자들의 질문도 비슷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잘생겼는지, 뭘 먹는지, 취미는 뭔지 등 개인적인 것들이었다. 그런 질문에 답을 하며 억지웃음을 짓고 있을 때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정원 씨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나에게는 퍽 크게 다가왔다.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잠시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승완이 같은 사람이요.”
“승완 씨라면 같은 드라마에 나온 동갑 친구 맞죠? 왜 그 친구를 닮고 싶어요?”
“저는 승완이 연기를 보며 많은 자극을 받거든요. 연기를 너무 잘하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아닌가 봐요. 연기가 아닌 다른 것을 봐요. 까만 피부나 얼굴을요. 연기를 못하는 저한테는 언제나 칭찬만 가득하고요.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얼굴이 못생겼는데 연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못생기면 연기를 하면 안 되나요? 아니, 못생기면 안 되는 건가요? 승완이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잘났기에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보다 못생겼으면서.”
그 말을 끝으로 토크쇼 녹화는 끝이 났다. 마지막 말은 편집이 되어 TV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 ‘얼굴 믿고 까부는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촬영을 했던 스텝 중 한 명이 올린 것 같았다. 영상은 편집이 되어 내가 사람들에게 못생겼다고 말하는 장면만 나왔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인터넷에는 나에 대한 욕이 가득했다. 소속사에서는 영상이 조작되었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반응은 식을 줄을 몰랐고 나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맹목적인 사랑만 받던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국민 싸가지가 된 나는 겁이 났다. 하지만 말을 한 건 사실이었기에 별다른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를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혼란스럽다.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일이 두려워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생활을 하다 지금은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얼굴이 아닌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승완은 언제나 그랬듯 사람들의 비난과 질타를 받다 몇 년 뒤 코미디 영화로 소위 말하는 대박 스타가 됐다. 하늘을 날겠다며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동네 바보 역할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연기에 사람들은 승완을 향해 깔깔 웃어댔다. 못생긴 외모에 대한 얘기도 여전했다. 승완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여전히 머리를 긁적이며 죄송하다 말했다. 세상은 여전했다.
창문에 붙은 승완의 사진을 바라봤다. 하얀 망토를 두른 승완이 점프를 하는 사진이었다. 남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나에게 승완은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백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