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았다. 싫은 건 아니지만 불편했다. 모르는 사람과 얘기를 나눌 만큼 너스레가 좋지도 않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넉살이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음료수를 받았기에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반 병이나 비워버린 술기운 탓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공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만큼 배짱이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새벽시간의 유일한 단골이라 용기를 냈다고 했다. 뜬금없는 고백 같은 말에 미소가 번졌다. 밀가루처럼 하얀 피부 가진 터라 뱀파이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던 그는 별명 그대로 새벽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지만 낮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주말이면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고 했다.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나의 바람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 편의점으로 들어간 그의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이 사람이 좋았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죽어가는 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절망으로 점철된 삶에서 의미 없이 하루를 버티는 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내가 동굴 깊은 곳의 어둠이면 이 사람은 동굴 입구에 보이는 햇살이었다.
그쪽은 무슨 일을 하세요?
계산을 마치고 밖에 나온 점원이 물었다. 단순하지만 무게감이 느껴져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애꿎은 음료수의 라벨을 손끝으로 툭툭 건들었다. ‘사실을 말하면 분명 나를 피할 거야.’ ‘사실대로 말하면 안 돼.’ ‘이만하고 얼른 방으로 돌아가.’ ‘넌 그곳이 어울리는 사람이야.’ 머릿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만큼은 솔직하고 싶었다. 전부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안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그럴듯한 직업이 필요했다. 내 안에 어둠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직업이.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저는 글을 써요.
글이요? 멋지다. 그래서 새벽에도 깨어있으시구나.
그런 셈이에요.
글이면 어떤 글을 쓰세요?
소설… 이요.
소설이요? 작가 시구나.
작가라니요. 그냥 지망생이에요.
글을 쓰면 다 작가죠. 멋져요.
호기심 가득한 그의 눈에는 조심의 의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점원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금은 무슨 글을 쓰고 있어요?
지금은…….
얼굴이 붉어졌다. 거짓말에 탄로 날까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목을 옥죄어 숨을 쉬기 힘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음료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