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을 정말 잘 자는 체질이다. 너무 잘 자서 문제였지, 못 자서 문제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아침이 오기 전에 잠에서 깼고, 그 이유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뭔가 이상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의식이 또렷해졌다.
- 이게 무슨 일이지?
처음 겪는 낯선 상황에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순간 가슴이 미친 듯이 조여왔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몰려왔다. 물이라도 마셔야겠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내 손이 아닌 것 같은 제멋대로 떨리는 손으로 물을 겨우 따라 마셨다.
방황에 방황,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세무사 시험을 깔끔하고도 홀가분하게 접은 후로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나도 모르게 내 뇌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나 보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답도 없는 고민을 머리로만 하다 보니 한계에 다다른 것이겠지.
분명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은 아니었다. 내 한 몸 따뜻하게 지낼 공간이 우선 있었고, 11년 근속만큼의 퇴직금도 있었고, 팔다리가 멀쩡하고 정신이 똑바로 박힌 나 자신이 있었다. 돈이 급하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생활비를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유연한 사고방식도 있었다. 이건 내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나는 사회적인 체면을 생각하느라 폼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체질은 아니다. 사실 내 또래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전업으로 한다고 하면 안됐다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온라인의 유명 커뮤니티에 이런 설문이 올라온 적이 있다.
< 30대 중반의 나이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
1.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2. 한심하다.
3.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
4. 아무 생각 없다.
당연히 4번이 압도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번과 4번이 공동으로 선두권이었고 오히려 1번이 더 많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댓글로 투표를 했어서 결과가 똑떨어지게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1번이 너무 많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런 이성적인 생각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불안했다. 불안해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비정상적인 불안은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누워있어도, 앉아있어도, 걸어 다녀도, 집에 있어도, 밖에 있어도 계속 따라다니며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내가 너무 혼자 있어서 그런가 하고 고향의 부모님 집에도 내려가 보았다. (부모님은 지방에 사시고, 나는 수도권에 거주 중이다.) 하지만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 얼굴을 일단 마주했을 때는 잠시 안심되는 것 같다가도 그 잠시가 지나면 불안이 어김없이 몰아쳤다. 그런 내 상태를 부모님이 눈치채서 걱정하실까봐 더욱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혼자 사는 집으로 금방 올라왔다. 다시 혼자가 되면 더더욱 불안한 것 같았고, 뜬금없이 부모님 집에 내려갔다 금방 다시 올라오는 비효율적이고도 산만한 행위를 서너차례 더 반복했다. 티내지 않으려 해도 티가 났을 것이다. 나는 무심한 편에 속해서 평소에 부모님을 잘 찾아뵙지도, 연락을 자주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꾸 불쑥불쑥 찾아 내려오니 말은 안해도 뭔가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 정도는 눈치채셨겠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진로를 너무 고민하다가 불안해졌는데, 그 불안 때문에 진로 고민조차 할 수 없게 된 이상한 상태. 나에게는 앞날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냥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게.
이때까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우울증, 불안장애 같은 정신적인 질병의 수준까지 도달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거나 개선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나는 우울지수0, 불안지수0 인 사람이었으니까.
회사를 다닐 때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았다. 정신적인 건강을 점검하는 항목도 있었다. 물론 자가 문진의 형태로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꽤 신빙성 있게 여러 분야별 세분화된 수치로 나왔다. 회사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해에도 나의 우울지수, 불안지수는 거의 0에 가까웠다. 평이한 나날을 보냈던 해에는 정말로 0이 나왔다. 특별히 낮은 지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검사 자체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나 보다 했다. 재미 삼아 친한 동료 몇 명과 서로의 검사 결과를 돌려본 후에야 내 지수가 엄청나게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역시 멘탈갑, 긍정인이라며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고, 나도 같이 웃었지만 속으로는 의아했다. 요즘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는데 우울지수 0이라니. 단순하게 기분이 안 좋은 것과 우울은 다른 것인가 보군.
참고로 말하면 나는 지속적으로 '긍정적이다' '멘탈이 강하다' '자존감이 높다' 등의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평판을 받아왔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학시절 별명 두 가지. '행복소녀'와 '최태평'.
대학 시절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요즘은 많이 사라진 주차도우미 아르바이트. 당시에는 핫한 건물 주차장 입구에는 대부분 도우미를 세워놨던 것 같다. 1시간 반 서서 일하고 1시간 반 쉬는 시간인 교대업무였다. 때는 겨울이라 야외에서 일하느라 너무 추웠고, 영화관이 있는 건물이라 주말이면 주차장이 꽉 차서 주차가 어김없이 밀렸고, 줄이 밀리기 시작하면 참을성 없는 아저씨들에게 욕먹기 일쑤였다. 그 고된 근무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도우미 휴게실에서 난로 옆에 붙어 앉아 수다를 떨기도 하고 소파에 누워서 쉬기도 했다. 잠이 많은 나는 주로 잠을 잤는데 내가 자는 모습을 보고 같이 일하던 언니가 붙여준 별명이 '행복소녀'다.
- OO이는 잘 때도 행복하네. 행복소녀야 행복소녀. 맨날 웃고 있어.
라고 웃으면서 놀렸다. 나는 몰랐다. 그날도 진상아저씨가 한 명 있어서 속이 왕창 상했고, 날이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인상을 쓰면서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행복하게 웃으면서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속상함도 추위의 고통도 그저 난로의 따뜻함에 다 풀어졌었나 보다. 나는 참 단순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최태평은 대학시절 같이 다니던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다. 대학 입학 후 죽이 잘 맞는 좋은 친구 둘을 만났고, 우리 3명은 자매처럼 꼭 붙어다녔다. 너무 달랐지만 굉장히 잘 어울렸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적성에 안맞는 학문을 하느라 늘 전전긍긍했는데, 그렇기에 중요한 시험이나 레포트 제출같은 문제에는 오히려 초연했다. 어차피 잘 몰라서 잘할 수 없으니까 대충 해내기만 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초연한 모습이 태평해보였나 보다. '우리 태평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같이 편해져!' 그 친구가 자주하던 말이다. 나는 사람이 허술해서 남들을 안심시켜 줄 수 있구나, 싶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내가 비교적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우울에도 불안에도 나름대로 강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나에게 우울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였을까.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다 잠시 멈추면 우울의 상태였던 것 같다.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고, 어디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었다.
전에는 '식욕이 없다.'는 상태를 몰랐다. 먹는 것을 좋아했고, 배고픈 상태를 잘 못 견뎠고, 음식은 항상 맛있었으니까. 그런데 농담 삼아 '나는 식욕이 없다는 느낌 자체를 몰라'라고 방정 떨던 내 입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식욕이 없는 상태를 경험하게 됐다. 음식조차 먹고 싶지 않은, 에너지의 완전 고갈상태. 그렇지만 안 먹으면 정말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억지로 먹어야 하는 상태. 겨우겨우 입에 음식을 밀어 넣으면 놀라울 정도로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그냥 어떤 물질들을 입을 통해 목구멍으로 넘기는 느낌. 그 귀찮은 작업을 굳이 해야 하는 느낌. 예전에 지인 중 누군가가 밥을 꾸준히 챙겨 먹는 일이 너무 귀찮다며 하루에 한 알만 먹으면 영양소도 기력도 보충되는 알약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손사래를 치면 질색을 했었다.
- 그런 걸 왜먹어!!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야지! 그럼 즐거움이 하나 사라지잖아.
세상에.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더니 그 알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다니.
늘 잘 자던 잠도 오지 않았다. 밤만 되면 더 극에 달하는 불안의 상태. 이대로 더 이상 돈을 못 벌고 굶어 죽을 거라는 비정상적인 사고 회로가 계속 돌아서 머리가 뜨거워졌고, 뜨거워진 머리는 점점 아파져 잠들 수가 없었다. 이런 상태가 일주일 넘게 계속되자 진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갑자기 회사가 너무 그리워졌다. 삼시세끼 밥을 주고 월급을 주던 나의 회사. 퇴사 전 상무님과의 마지막 면담 장면이 머리를 스쳐갔다.
퇴사 전 마지막 면담. 이미 몇차례 면담이 있었고, 이 날 최종 면담 후 사직서에 사인을 했었다.
- 잘 생각해봤어? 어느 파트로 보내줄까?
( 이전 면담에서 퇴사하지 말고 다른 업무로 다시 시작해보라고 말씀하셨었다. )
- 아니요. 어느 파트든 이제는 하고 싶지 않아요. 나가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최책임, 몇 년 근속했지?
- 저 11년이요.
상무님은 '일만시간의 법칙'을 인용하면서 지금 내가 쌓은 이만큼의 경력과 그로 인한 실력을 다시 쌓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부터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라는 아주 논리적인 이유로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경력을 통째로 버리고 싶은건데.
-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분야가 적성에 안 맞아서'가 가장 큰 이유라서 더 늦기 전에 새롭게 다시 쌓아야겠어요.
- 적성에 맞아서 하는 건 없어. 나도 사실은 다른 걸 하고 싶었어.
상무님도 평사원 시절에 한 번 퇴사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서 본인의 사례까지 들어가면서 성심성의껏 이야기해주었다. 의사가 되려고도 했었고, 작가가 되려고도 했었던 이야기. 유명 글로벌 기업까지 돌고 돌아 다시 왔지만 이 회사가 제일 좋다고. 아무도 나가라고 안 하니 정년까지 다니라고.(이건 좀.. 무리가 있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귀찮음 반, 의아함 반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일이다. 회사 내에 수두룩 빽빽인 책임급 사원 하나 나간다는데, 몇 차례나 진지하게 퇴사를 만류해주었다. 본인 이야기도 많이 해주면서. 그럼에도 내가 확고한 의지를 보이자 마지막으로는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 평사원급도 아니고 애매한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서는 신입으로도 잘 안 받아 줄 것이고, 다시 뭔가를 새롭게 공부하기에는 좀 늦지 않아? 사업도 하던 사람이 해야지 이런 직장 다니다가 새로 시작하기도 쉽지 않고, 웬만해서는 여기 월급만큼 벌기 힘들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여기 월급만큼 벌 생각도 없다. 뭘 해도 그저 생활비 정도로 시작하면 된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자신 있었다. 그래서 멋지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날렸다.
- 제가 적성에 안 맞는 일도 10년 넘게 나름 잘한다는 소리 들으면서 해왔는데, 나가서 조금 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훨씬 더 잘하지 않겠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당돌하다. 자신만만하다. 멋지다.
멋진 척을 하려던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는 진심이었고, 확신이 있었고, 정말로 믿었다. 내가 그럴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이불속에서 울고 있다. 회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싫어서 박차고 나왔는데, 집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장소만 회사에서 집으로 바뀌었을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건 똑같다. 더 별로인 건 월급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내가 미쳤었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이유가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 자체의 문제였구나. 그렇다면 퇴사는 괜히 한 걸까. 퇴사 면담할 때의 자신만만했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게 정말 나이긴 한 걸까.
최악의 시기.
답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던 시기.
매일 밤 '누가 나 좀 구해줘.'라고 속절없이 되뇌던 시기.
비정상이라는 걸 알지만 정상으로 돌아올 방법을 몰라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