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잘 못 하는데 변기까지 나보고 고르래요.

by 김다지



사실 인테리어는, 업체를 픽스하고부터가 진짜였다. 내가 고르고 선택해야 할 것들이 나를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이트에도 수십 개의 색깔이 있고, 다 다른 질감을 가진 타일 중 내가 원하는 집 톤에 맞는 화이트지만 쿨톤이며 청소가 쉽고 예쁜 타일을 고르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 어려웠다.


변기도 얼마나 종류가 많고 브랜드가 많은지, 물이 휘돌아감고 내려가는 애도 있고 별의별 변기가 다 있었다.

세면대부터 수전을 지나, 현관문을 감싸고 있는 벽의 필름색까지… 골라야 할 게 무수히 많았다. 게다가 내가 뭘 고르냐에 따라 견적이 날뛰었다. 점심 메뉴조차 잘 고르지 못할 정도로 선택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겐 너무도 가혹한 시간들이었다.


결국, "뭐가 가장 최근에 나온 건가요?" "뭘 가장 많이 하나요?"라는 질문을 번갈아 해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고르고 있었다.


나는 대부분에 선택을 잘하지 못했다. 어떤 사소한 것도 결정하지 못해 주변에 의견을 구하는 나를 보며, 측근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이런 사소한 것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물어보는거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그 말을 듣고 돌아보니, 나는 정말 많은 부분을 지인들에게 의견을 구해 선택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다수가 옳다고 하는 일을 선택하면, 실수가 없을 것만 같았던… 잘못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지표가 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서 혼자 결정을 내리는 일은 잘 없었다.

아주아주 지극히 사소한 것도 남의 의견을 웬만하면 따랐고, 식사 메뉴조차도 다른 이들의 의견을 따랐다.

그런 내가 내 의견을 피력하고 고집을 부리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건 역시 일할 때였다.

겨울이었고, 음식 촬영을 해야 했는데 나는 '팥죽'을 아이템으로 정한 후 섭외와 취재 등 촬영 준비를 모두 끝내놨다. 근데 팀장님이 죽자고 반대를 하는 게 아닌가. 화면에 시꺼멓게 나오는 '팥죽'은 시청률이 잘 안나온다는 이유였다. 내가 레퍼런스 삼아 공부하며 본 '팥죽'은 다 먹음직스럽기만 했는데, 김이 모락모락나며 펄펄 끓어오르는 게 보고만 있어도 따뜻해 보였는데.. 감이 왔다. 대박을 낼 거라는 감이. 그래서 우겼다.

"그냥 저 한번만 믿어주세요. 이거 무조건 대박나요. 진짜라니까요!" 그렇게 촬영을 강행했고, 시청률은 터졌다. 여기저기서 칭찬이 쏟아졌다.

그 외에도, 구성안의 구성 흐름을 조금 바꾸자는 의견에 절대 안 된다고 꼭 이 순서대로 흐름을 가지고 가야 진짜 웃길 거라고 우겼다. 프롬프터로 진행을 하다가, 일단 흐름을 탔다 싶으면 나의 감을 믿고 진행해나간 적도 많았었다. 대부분 내 말과 내 감이 맞았다.


일에서는 누구보다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삶에서는, 화장실 변기 하나도 고르지 못했다.

나는 왜, 나의 일에는 확신이 있으면서 나 자신에게는 확신이 없었을까.


사실은 일보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을 예쁘게, 내 취향대로 꾸미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큰돈을 쓰며 하는 일이었는데…. 나는 집을 꾸미는 즐거움은 놓치고 괴로워하며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을 견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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