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다시 해주세요."

by 김다지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인테리어를 하고 이사를 하게 됐다. 인테리어도 같은 업체랑 계약을 했다.

이건 좋은 일일수도,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는 일일수도 있다.


친구와 나는 인테리어를 대하는 온도차가 너무 달랐다. 친구는 인테리어에 대해 레퍼런스도 많이 찾아봤고, 꼭 하고 싶었던 것들도 많았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고, 그저 제 날짜에 무사히 잘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집 공사가 먼저 시작됐고, 친구는 스트레스 상황이나 고충 등을 토로했다. 나는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둘 다 감정이 조금 상했지만, 이내 회복했다.


사실 난, 친구와 같이 인테리어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다.

나는 친구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공통적으로 주방의 아일랜드가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왕 대면형 주방을 하기로 한 거, 쾌적하고 넓게 쓰고 싶었다. 주방의 아일랜드 길이는 3000mm이었는데, 숫자만 보고는 감이 오지 않았다.

수전과 화구가 다 들어가면 아일랜드가 너무 좁은 거 아닌가 걱정하는 우리에게, 대표님은 전혀 안 좁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인테리어 카페를 찾아봐도 3000mm이면 아일랜드가 큰 편이라고들 했다.


공사가 진행되던 날들 중, 나와 친구와 대표님이 모두 우리집 공사현장에 있던 날이었다. 나와 친구는 아일랜드가 설치 되면 크기가 대충 얼마나 되나 줄자를 들고 가늠해보고 있었고, 대표님이 옆으로 와서 셋이 함께 아일랜드의 크기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근데, 여기서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아일랜드를 시공하는 지점에 대한 다른 견해에 의해 아일랜드가 15cm가 더 긴 3150mm이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3000mm으로 시공을 할 뻔한 거였다. 대표님은 복도가 좁아지는 것 때문에 그랬다고 했고, 우리는 복도가 좁아져도 되니 아일랜드가 더 큰 게 좋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둘 다 길이를 3150mm으로 확정했다.


대표님도 그 자리에서 가구 담당자에게 전화해, 아일랜드 크기를 수정했다. 친구와 나는 지금이라도 이걸 발견한 게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던 길, 친구가 말했다.


"오늘 우리가 현장에 와서 아일랜드 크기를 수정해서 다행이야. 만약에 나는 아일랜드를 15cm 늘릴 수 있었는데, 나랑 시작 지점에 대한 상의 없이 대표가 혼자만의 판단으로 그냥 시공했고 15cm 늘릴 수 있단 걸 나중에라도 내가 알았다면, 난 아일랜드를 부수고 다시 해달라고 했을 것 같아."


"...부수고 다시? 설치해놨어도 부쉈을 거라고?"


"응. 난 그게 너무 중요했고, 계속 강조해온 건데. 반영이 안 됐고 상의도 없었다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을 거 같아. 그래서 부수고 다시 해달라고 했을 것 같아." 친구의 단호한 옆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친구와 동일한 상황이었고, 15cm가 아쉬웠겠지만, 나는 그냥 썼을 것 같았다.


친구는 열정적으로 인테리어 레퍼런스를 찾아봤고, 많은 아이디어와 의견을 냈고. 줄자를 직접 들고 재서, 도면을 그리고, 인테리어에 엄청난 의욕과 투지를 빛냈다. 직접 달고 싶은 거울을 찾아 링크를 건넸고, 수건걸이와 탑볼도 직접 골라 세팅 했다. 가구장 내부도 직접 그렸다.

친구는 진심으로 임하고 있기에, 아일랜드를 부숴달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나는 건성이었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그냥 빨리 넘어가고 빨리 끝났으면 했다. 내가 헤쳐나가야 할 미션 정도로 받아들여 계속해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철저히 목표지향적인 나는, 대부분에 그랬다.


수영을 할 때도 1km를 채우자는 목표를 들고 수영장에 가면, 1km만 채우는데 몰두했다. 같이 수영을 다니는 지인은 물에 몸을 맡기고 유영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그저 1km를 채우기에 급급해 과정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목표를 이루고나서야 뿌듯하게 돌아갔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랬다. 아이와 웃고 떠드는 일상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보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줘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자야 하고, 규칙과 규율을 알려줘야 하고, 무언가를 알려줘야 하고,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건, 인생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나는 왜,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친구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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