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타는 막내작가 얼굴이 된 대표님.

by 김다지


공사 3일차에 욕실 타일이 탈탈 털린 후, 우리집의 모든 공정은 겹치기로 진행됐다. 이건 대표님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일이었으며, 평소 공정 겹치기를 극혐하는 대표님은 한 번도 공정이 겹치게 시공을 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하나의 공정이 마무리 될 때마다 깔끔하게 현장을 정리한 후 시공을 하는 걸 추구하는 대표님으로서는 이 엉망진창 와장창이 된 우리집의 공정 겹치기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공사 6일차, 이미 뚫어놓은 조명의 위치를 옮겨야 하는 이슈가 생겼다. 서재의 책장이 들어가야 하는 곳에 다운라이트 조명을 뚫어놨으니, 책장에 가려 조명의 효과가 없을 거고 아무래도 조명의 위치를 바꿨어야 했다.


미리 생각하고 계획해 조명을 뚫기 전에 정했어야 했는데, 이건 철저히 나의 불찰이었다.

현재 뚫려있는 조명의 위치와 변경해야 하는 위치의 조명을 표시해 대표님에게 전달 후, 현장에 들렀다.

그런데, 각 공정의 사람들이 잔뜩 들어와 바글바글한 집안에서 마주친 대표님의 얼굴이

'잠수타고 도망갈 거 같은 막내작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송일이 워낙 힘들다보니, 막내들이 출근하고 몇일 안됐을 때 잠수타는 일들이 왕왕 있었다. 어차피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어떤 말도 어떤 연락도 없이 그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소문만 들어봤지, 직접 겪어본 적은 없었는데 왜인지 그날 대표님 얼굴을 보는데 그 생각이 들었다. 한 손으로는 다친 허리를 움켜쥐고, 내 눈도 제대로 마주 보지 않는 대표님은 굉장히 지쳐 보였고, 서재를 가서 확인하니 조명은 요청내용과 반대로 뚫려있었다.


내가 문을 표시해놓지 않은 탓에 오른쪽과 왼쪽의 구분이 어려웠던 것이었을까? 모르겠다, 대표님 얼굴을 보고 나서는… 모든 게 무의미해졌다. 공사 중에 조명을 수정한 내 잘못이건, 조명을 잘못 뚫도록 지시한 대표님 잘못이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조명을 반대로 뚫으면 어떤가, 아직 수정할 수 있는 단계니 뚫은 조명을 막고 제 위치에 다시 뚫으면 됐다.

그것보다 그에겐 지금 따뜻한 그 무언가가 필요해보였다.

바글바글한 공정별 인원을 파악 후, 커피를 사러 갔다. 커피셔틀을 하는 길에, 잠수타고 도망친 막내작가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봤다. 그들에게도 따뜻한 그 무언가가 필요했던 건 아녔을까…


사실 인테리어 과정 중 벌어지는 돌발상황들을 대처하느라 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나보다는 현장에서 한데 얽혀 고군분투 중인 각 공정의 사장님들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진두지휘하는 대표님 역시 고군분투 중이었을 거다. 누구보다 열심히…


타일이 털리고 꽤나 오랫동안, 우리 집은 각 공정의 사장님들로 가득했고, 바글바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장에 가야 할 경우 최대한 방해가 안 되게 최소한으로 다니는 것과 최대한 빨리 빠져주는 것이었고. 커피를 나를 뿐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대표님을 뒤로하고 현장을 나온 나는 대표님에게 연락을 했다.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냐고, 진짜 힘들어보여서 그런다고..."

대표님은 웃으며 "시멘트 날라주실래요?"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 웃어넘겼다.


나를 거쳐 간 많은 후배들을 생각한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너그러이 그들의 고군분투를 알아줬다면 어땠을까? 어린 날의 나는 그들의 얼굴을 살필 여유가 없는 선배였다. 어린 날의 나는 이런 상황이었다면 아마 화를 냈을 거다. 내가 명확히 공유한 사안들이 파일로도 남아있는데 왜 이걸 그대로 하지 않았냐며 몰아붙였을 수도 있고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제대로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둥, 벼랑 끝으로 그를 내몰았을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일을 처리했다. 최선을 다해, 틀림이 없도록. 누가 봐도 완벽에 가깝도록, 그 누구도 입을 대지 못하도록.. 시뮬레이션을 하고 또 하고 놓친 건 없을지, 체크하고 또 체크하고… 예민했고, 완벽을 좇았다. 힘든 티도 내지 않았다. 힘든 티를 내면 왠지 지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밤을 새웠고, 잠을 줄였고, 발버둥을 쳤다.


그리고.. 그 세월들은 서서히 나를 갉아먹었다. 그렇게까지 하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내가 나를 내몰았다. 나는 지쳤고, 아팠고, 몸도 마음도 병들었다. 사소한 것들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고, 나를 살필 시간도숨 쉴 틈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인생의 참 빛나는 시기를 손해를 보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나에 대한 성찰은 인테리어를 하는 내내 계속됐다. 집을 고치는 일은 사람을 고치는 과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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