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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Jan 28. 2023

어묵 국물의 '세 가지 온도'




특정 계절을 생각나게 하는 대표 음식들이 존재한다. 봄의 도다리쑥국, 여름의 평양냉면, 가을의 전어구이, 겨울의 대방어 같은 식의 공식들.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이거나 해당 계절을 잘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의외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 먹는 음식은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결코 미식가가 아니다. 웬만한 음식들이 다 맛있으니까. 그래도 국물의 계절, 겨울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나에게 겨울은 어묵의 계절이고, 어묵 하면 떠오르는 겨울의 세 장면이 존재한다.


     

1.

지은이와는 고3 때 한 반이었다. 같은 중학교 출신도 아니고 고3이 되기 전까지는 학교에서 오다가다 마주친 기억도 거의 없다. 고3 때 꽤 친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졸업하고는 연락을 해서 만나지도 않았고, 건너 건너 안부를 듣지도 못한 친구다. 하지만 이 친구를 잊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이렇게 글에까지 박제를 해 놓았으니 더더욱.

     

지은이는 우리 학교에서 몇 안 되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였다. 나와 지은이의 동네에는 우리가 다닌 학교보다 훨씬 가까운 학교가 있었는데, 뺑뺑이의 운명이 우리를 K여고로 모이게 했고, 그래서 나의 등하교 길은 거의 혼자였다. 혼자 다니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그 덕에 웨스트라이프나 비틀스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겨울밤 야자를 끝내고 집에 가는 날은 예외였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30~40분. 한 번도 쉬지 않고 경보하듯 걸으면 30분이었지만 추운 날 딱딱한 구두를 신고(내가 다닌 K여고는 운동화를 신을 수 없었고 검은색 구두가 복장 규정이었다. 젠장!) 경보를 할 수는 없었다. 밤 10시에 야자가 끝나면 퉁퉁 부은 다리로 어기적어기적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인적이 드문 캄캄한 길을 걸으려면 친구가 있는 게 좋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지은이와는 교실에서 같이 지낸 기억보다 야자를 끝내고 함께 집에 가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인적도 드물고 불 켜진 가게도 별로 없었는데, 우리가 제일 무서워하던 길 딱 중간에 분식집이 있었다. 그 분식집에 앉아 떡볶이나 순대를 먹은 기억은 없다. 가게 앞에 쳐 놓은 두꺼운 비닐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서서 손잡이가 빨간 100원짜리 어묵을 먹었을 뿐. 밤 10시가 넘은 분식집에는 탱탱 불은 어묵만 있었지만 나와 지은이는 그 불은 어묵을 좋아했다.

      

2002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 중순부터 수능을 보기 전까지 나와 지은이는 그 분식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묵을 먹고 집으로 갔다. 서로의 어묵 취향을 확인한 날, 우리는 몹시 기뻐했다. 여간해선 기쁜 일이 없는 고3에게 어묵 취향이 같은 친구와 뜨끈한 어묵 국물을 호로록 거리며 마시는 일은 고단한 일상의 작은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2.

나는 ‘혼밥’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혼자 많은 것들을 했다. 혼자 쇼핑도 다녔고,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 보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뿐 아니다. 혼자 콘서트도 다녔다. 혼자 하는 일 중 가장 쉬운 건 혼밥이었다. 학교 앞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 먹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 혼자 포장마차에 서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건 나의 혼밥 레벨 중 가장 하급 아니, ‘오히려 좋아’였달까.

    

모교에서 조교로 일할 때였다. 일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늦게 끝나는 날이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저녁을 먹어도 에너지가 쏙 빨려 집에 오는 길에 허기가 지곤 했다. 학교 앞에서 거의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당산역에 내리면 12시가 넘었다.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했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는 배가 뜨듯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라도 스치면 출구 앞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당산역 앞 포장마차에서 나는 주로 빨간 어묵을 먹었다. 적은 조교 월급이었지만 포장마차 어묵 정도야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먹을 수 있었다(빨간 어묵은 일반 어묵보다 조금 비쌌다). 적은 돈이지만 돈을 벌고 있는 게 어디냐,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묵을 먹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종종 현타를 느끼곤 했다.

      

20대 중반. 일은 하고 있지만 오래 할 수 없는 일인 데다 월급도 최저임금 수준이었고 내가 따로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했는데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자면 학점도 좋지 않고 뛰어난 스펙도 없다는 걸 알았기에 남들이 다 가는 길은 처음부터 배제하려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직업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한 건 맞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단점들이 탄로 날까 봐 그 꿈을 포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의 부족한 점이 드러나지 않는 그 길을 간다면 나는 특별 케이스가 되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한번 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해 늦가을 나는 결국 마지막 도전을 하고 더 이상 그 길은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더 이상 그 일에 노력하는 척하지 않아도 되어 홀가분했다. 그리고 난 더 깊은 방황의 길로 들어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방황은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추운 겨울 생각나는 그맛!' 집에서도 호로록 마시려고 어묵 국물 티백을 샀다. MSG 팍팍 들어간 자극적인 맛이지만 나는 이런 맛을 좋아한다.

     




3.

나의 첫 연애는 스물일곱 살 때였다. 20대 초반, 대체 무엇이 나를 긴 모쏠의 터널로 이끌었던 걸까. 일단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 자신감 부족의 첫 번째 원인은 외모였다. 수능이 끝나고 미용실에서 그 웨이브를 넣지 말았어야 했다. 이건 진짜다. 오히려 재수생일 때가 대학 1학년일 때보다 미모 성수기였다(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금 자신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뿔 떼 안경에 긴 머리 웨이브는 진짜 아니었던 점, 근 20년이 지나서야 인정한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으면 꾸미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대학생이 되면 흔히들 낀다는 렌즈조차 나는 낄 생각이 없었다. 스스로를 꾸미는 데 관심도 워낙 없었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했던 나로서는 주변에 신경을 쓰고 싶은 사람도 딱히 없어 편하게 대학을 다녔다.

     

연애를 못 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이성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같은 학교 오빠를 두 명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원래 내 성격과는 다르게 고백은 다 했다. 그때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게 유행이라도 했던 것처럼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 고백했다, 사귄다 이런 얘기들이 학교에 너무나 많이 돌았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 이끌려던 걸까. 하긴 내가 직접 고백하지 않더라도 장난기 많은 친구들이 티를 다 내줬다. 그 오빠들과 사귀지 못했지만 나름 편지를 주고받거나 전화 통화를 하며 지낸 적이 있었다. 편지나 전화였으니 가능했던 일 같다. 동성 친구가 아닌 이성과 직접 만나는 일은 무서운 일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만나서 마음을 나눠야 하는지, 또 스킨십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이런 것들을 미리 걱정하며 두려운 마음만 키웠다.

     

그러다 스물일곱에 첫 연애를 했다. 지금의 남편이다. 20대 초에 비하면 외모 자신감도 있었다. 그 사이 라섹 수술도 고 나름 어울리는 헤어스타일도 찾았다. 남편은 처음부터 왠지 모르게 편했다.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을 것 같았고 함께 있으면 편안했다.   

   

연애 첫 해 겨울, 신촌 현대백화점 뒤편에 있는 오뎅바를 갔다. 스테인리스 칸막이가 있는 커다랗고 네모난 냄비에 꼬치어묵, 곤약, 감자수제비, 유부주머니 등이 가득 담겨 나왔다. 한참 먹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 쪽 테이블에는 빈 꼬치가 서너 개쯤 있었고 내 쪽에는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렇게 먹고도 우동 사리를 추가해 더 먹었다.

      

그때도 취준생이었던 건 마찬가지인데 불안함보다는 안정감이 더 컸다.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든든했다. 새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도 생기기 시작했고, 가짜 노력이 아닌 진짜 노력도 할 수 있게 됐다. 남편을 만나고 난생 처음으로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드디어 따뜻한 어묵 국물 온도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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