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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J May 18. 2024

나잇값? 어쩌라고. 그냥 울거야


날씨가 기가 막히게 화창한 날이었다. 3월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였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안개가 가득 차 있었다. 딱 한 발짝만 내디디면 모든 고민과 고통을 날려버릴 수 있는데 그 한 발짝이 참 어려웠다. 온갖 보이지 않는 손들이 나의 발을 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 세상이 나를 왜 이렇게 억까하지? "

" 억까한 적 없어. 결국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


학생들의 장난스러운 억울함이 가득한 한 마디에 내가 던진 한 마디가 생각났다.


' 뭣 때문에 이런 일들이 나한테 일어나는 걸까? 남들은 척척 해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


억지로 어깨를 펴고 씩씩하게 걷는 모양새를 냈지만 머릿속은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가 가득했다.

길을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 출판사에 도착했다. 귀에 익은 벨 소리가 책냄새 가득한 공간에 울려펴졌다. 언제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다. 1년을 늘 같은 모습으로 환하게 맞아주는 작가님이 걸어나오셨다. 폭풍우치는 외부에서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 냄새 가득한 오두막에 들어온 느낌일까? 쉬익쉬익 폭풍우 소리는 귓가에 맴돌았지만 포근한 소파에 기대면 언제까지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커피 한 잔으로 숨을 돌리는 동안, 작가님이 들고나오셨다. 나의 오랜 꿈. 나의 책.


표지의 환한 하늘은 티끌없이 깨끗했고 그 아래 나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세상인 듯, 이 세상 아닌 듯, 어쩌면 이상향의 어디,꿈 속 세상 같았다. 울컥울컥 마음 속에서 올라왔지만 꾸역꾸역 참고 작가님과 대화를 주고 받았다. 


"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냈어요? "


나이가 들어갈 수록 아무한테나 늘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많아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나잇값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그 순간에 그랬다. 참아왔던 억울함과 서러움이 밀려들었고 결국 울었다. '억까'하는 세상에서, 슈퍼을로 살아가는 나지만 그래도 꿋꿋이 하고 싶은 걸 해냈다는 감격스러움.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들을 그 따뜻한 눈빛아래 쏟아낼 때의 서러움. 그렇게 한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 저는 왜 이렇게 힘들게 해낼까요? 남들은 쉽게 척척 하는 것 같은데 "

" 절대 쉬운 일 아니에요. 그래도 결국에 해냈잖아요. 제가 보기에 지윤님은 뭘 해도 어떻게든 해낼 사람이에요. 뭘 해도 될 것 같아요. "


나는 왜 이럴까? 얼마나 더 불안하고 힘들어야 할까? 자책하는 물음만 가득했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한마디는 폭풍우 너머 고요한 하늘의 태양로 시선을 향하게 했다. 


나는 왜 '힘들게' 해낼까? 


이제는


나는 '해낸' 사람으로 시선을 돌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출판사를 나서는 순간. 눈물은 그렇게 내 모든 고민을 끌어안고 폭풍과 함께 사라졌다. 나를 제대로 볼 줄 아는 힘. 그게 나잇값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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