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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J Jul 02. 2024

30대, 낯설어진 '설렘'이란 감정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봄날이었다. 분명히 온도는 쌀쌀했지만 그와 나는 외투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이내 맞잡은 두 손은 따뜻했고 ( 분명히 나는 수종냉증이 있다. ), 간간히 풍겨오는 그의 향기가 좋았다. 봄날의 벚꽃은 우리를 위해 핀 것 같았고 온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시절.


사회초년생 티 팍팍 내며, 한 달 동안 애쓴 결과로 통장에 찍혔던 월급. 비로소 이 세상에 쓸모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월급을 주는 보스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 지금은 내 노동력 대가 받겠다는데 뭐? 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연애도 꽤나 해보고, 월급도 꽤나 받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언제쯤 되면 싸우겠구나 언제쯤되면 헤어지겠구나 월급날은 빚독촉 하듯이 보스 얼굴을 그렇게 쳐다본다. 설렘을 주었던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더니 경험과 친구를 먹었다. 


설렘이 다시 피어오르려 할 때면, 경험이 참견을 시작한다. ' 내가 해봐서 아는데, 별 거 없을걸? '




어린시절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던 원피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가수 코요테의 OST는 아직 기억난다. 수백번 들었을테지만 도입부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왜일까? 반복이교 경험은 똑같은데 노래는 들으면 설레고 벅차오를까? 돌아갈 수 없는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일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가득찬 옷장과 펜트리에도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허전함 때문일까?



그 때는, 저녁반찬으로 나온 고기에 설렜고, 하교길에 먹는 쭈쭈바 하나가 좋았다.

그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치킨 먹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소풍 가는 날은 한 달 전부터 달력에 x표를 치며 기다렸다. 사소한 것 하나로도 좋았고 설렘이란 감정을 온전히 즐길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마냥 설레하고 행복해하기에 책임져야할 것도 많고 쓸모를 증명해내야 하기에 MBTI F보다 T인 자신을 믿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설레야 한다. 가끔은 F인척 하며, 흩날리는 꽃비에 폼도 잡아보고 옆에 있는 그 사람의 품에 갑자기 안겨보기도 해야한다. 미쳤나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출근길에 설렌다고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따뜻한 커피를 사주는 동료,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 흔드는 아기, 출입문 잡아주는 낯선 사람, 자동차경적소리 잠재워주는 새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간질이는 감정을 오래 끌고 느껴가보자. 이 감정을 휙 잊어버리지 말고 차곡차곡 모아두자. 분명히 오늘 지금 이순간은 내가 그리워할 시간이니까. 여전히 우리는 설렘 속에 살고 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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