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와 사춘기의 격돌 6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죠.
세상이 온통 나에게 등을 돌린 것 같은 날. 서러움과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날.
오늘이 저에게는 그런 날이에요."
라디오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 그런 날에는 무조건 날 위해 뭔가를 해야지.'
그런데 만약 TV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떨까? '뭐래' 코미디가 아닌 이상 십중팔구 채널을 돌릴 것이다. 단지 매체가 달라진 것뿐이지만, 말이 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라디오에서는 감성적인 말, 멜랑꼴리 한 말, 낭만적인 말을 부담 없이 할 수 있고 듣는 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얼굴이 보이는 텔레비전에서는 그게 어렵다. 하는 이는 어색하고, 듣는 이도 불편하다. 왠지 닭살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텔레비전의 언어는 훨씬 담백하고 직설적이다. 어쩌면 돌직구가 많아진 것도 영상시대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고객 접대용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작가들에게는 '섭외용 목소리'가 있다.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솔'음 정도의 억양에, 데시벨은 평소보다 살짝 높인다. 물론 평소 목소리가 큰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크기는 살짝 높이는 편이 좋다. 너무 작은 목소리는 자신감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정확한 의사전달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내 기분이 언짢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섭외를 하면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 목소리에서 부정적인 감정이나 피곤이 느껴져 상대방이 본능적으로 꺼려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얼굴에만 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도 표정이 있다. 말투나 리듬, 박자, 억양, 목소리 높낮이 등이 목소리의 표정을 만든다. 미드 [라이투미]의 '칼 라이트먼' 박사라면 사람을 표정을 보고 진실 여부를 귀신같이 알아내지만, 보통 사람들은 목소리 표정에서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 진실여부를 쉽게 읽어낸다. 심지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목소리만 들을 때 더 잘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시각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목소리에 더 집중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목소리는 정보보다 먼저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목소리에는 쉽게 감정이 담기지만, 통제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포커페이스 보다 더 어려운 것은 포커 보이스'일지도 모른다.
목소리에는 나의 감정이 담길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도 담긴다. 언젠가 '배우자를 향한 목소리만 들어도 그 부부가 몇 년 안에 이혼할지 추측할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지나친 주장만은 아닌 것 같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없으면 말이 억양이나 톤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진다.
사춘기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사춘기력'이라는 게 있다면 99%는 입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말을 참 밉게도 한다. 제 기분이 나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극히 이기적인 시기가 사춘기이니 말이다. 그런데 부모도 사람인지라 미운 말이 날아들면 발끈하게 되지만, 그래도 참아야 한다. 똑같은 힘으로 받아치면 결과는 뻔하다. 충돌이다. 그 옛날 '귀 막고 3년, 눈감고 3년, 입 막고 3년 시집살이' 했던 것처럼 '귀 막고 사춘기살이'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그 사이 부모의 몸에는 사리가 생기겠지. 그 사리를 꺼내서 팔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몸속 어딘가에 영롱한 보석이 생기고 내면으로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그런데 아해들아, 세월이 흘러 엄마에게 갱년기가 찾아오면 '갱년기살이'를 해야 할 수도 있단다. 참고로 갱년기는 사춘기보다 훨씬 길단다.)
매일 같이 거울을 보며 얼굴과 표정을 살피듯이 목소리도 살펴가며 살아야 한다. '내 말투가 원래 그래'라며 넘길 일이 아니다. 일상 혹은 일에서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