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사계절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지만, 1년의 흐름과 날씨에 따른 온도는 여전히 체감할 수 있다. 피부에 닿는 온도와 상관없이 마음의 온도는 계절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한여름에 계란이 굽힐 만큼 피부가 뜨거워도, 마음은 북극곰과 뛰놀 정도로 차가울 수 있고, 겨울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또, 쾌적한 봄과 가을에도 누구는 첫사랑에 마음이 불타오르고, 가끔은 평균 온도보다 더 미적지근한 상태일 때도 있다. 이렇듯이 우리는 계절이 아닌, 마음에 따른 고유 온도가 있다.
내 마음 온도는 어떨까? 나는 따뜻한 온도를 꿈꾸면서도 어떤 감각도 무뎌지는 차가운 온도를 바랐다. 나만 따뜻하고 몰랑한 상태면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고, 더 깊게 상처를 받을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스스로 '차갑다'고 되뇌는 게 무색할 만큼 내 마음은 작은 친절에 크게 기뻐했고, 뾰족한 말에 많이 아파했다.
타인의 마음 온도는 어떨까? 코로나 시대로 우리는 안전을 지키고자 거리를 둔 채 살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 상태를 볼 기회와 관심이 적다. 누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집에만 있는 생활로 타인보다 나를 볼 시간이 늘었고, 나는 쓸데없는 걱정 탑을 쌓아 홀로 갇혔다. 그에 반해, 타인을 생각하고 베푸는 마음은 줄어갔다. '이래도 괜찮을까?' 어느 날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모처럼 장을 보러 눈 쌓인 밖으로 나왔다. 지잉-지잉- 핸드폰이 울렸다. 오랜만에 보는 동료 이름이었다. 요즘 서로 연락도, 만남도 없어서 사이가 멀어지던 참이었다. 조금 이따 보려다가 궁금해서 몇 발자국 걷다 말고 확인했다. 문자엔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생생한 동료의 마음이 녹아 있었고, 보고 싶음과 그리움에 이어 현재 힘듦과 응원을 부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장 보러 가는 것도 잊은 채, 거리에 서서 동료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문자를 읽었다. 타인의 마음 온도는 내가 바라볼 때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내 안에 숨어 있던 동료를 향한 진심 어린 걱정과 궁금증이 올라왔다. 마음 그대로 답장을 썼고 몇 시간 동안이나 대화를 나눴다.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 온도를 표현하자 어느새 마음이 데워지고 있었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온기처럼
<마주 잡은 두 손>
뜨거운 당신 손이
내 손을 잡을 때
차가움은 데워지고
차가운 내 손이
당신 손을 잡을 때
뜨거움은 시원해집니다
마주 잡은 두 손 사이
하나 되는 온기로
오늘도 살아갑니다
인생은 결국 혼자라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자극을 받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점점 더 마스크와 모니터에 갇히다 보니 앞으로 살아갈 '나의 미래'를 고민하게 되지만, 그 미래에 따뜻한 마음이 담길 때 바라던 '우리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나는 매번 급급하게 살다 보니 주변 보는 것을 놓치고 만다. 그래도 경계하던 매서운 눈빛을 지우고, 상대에게 부드러운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 내 마음의 온도가 조금 높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