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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편안 Jan 14. 2021

그저 흘러가야 할 때가 있다.

<시에 인생을 담다_삶의 자세>

하루 24시간을 살다 보면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학교 입시나 회사 프로젝트같이 거대한 것부터 금방 해결할 것 같은 우편 전송, 장보기 일상까지 때때로 진전이 안 돼서 끙끙거린다. 모두에게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만 늘 부족해서 마음이 급하고, 예상치 못한 방해라도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한다. 아무도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싫다고 온몸으로 티를 내는 여러 사람 사이에, 진득하게 견디는 몇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개팅에서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뻘쭘하게 기다리며 남자만 오면 움찔거렸을 때도, 친하게 지내던 무리와 멀어지면서 마음에 받은 상처가 회복되길 바랐을 때도 잘 못 견뎠다. 사실 나는 소개받은 남자보다 바람맞고 혼자 돌아갈까 봐 두려웠고, 하하 호호 함께 떠드는 무리보다 더는 끼지 못하는 떠돌이가 될까 봐 무서웠다. 나만의 공간이 아닌, 둘 이상 연결된 세상에서 혼자 남을 수 있는 내성이 없었다.


주변을 보면, 놀랍도록 내성이 강한 사람이 있다. 어떤 공간에 혼자 남겨져도 평상심이 깨질 정도로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살아간다.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너무 궁금해서 한 사람을 관심 있게 관찰했다. 그 남자는 소중한 가족이 하늘로 떠난 아픔이 있는 20대 직장인이었다.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매일 출퇴근하는 일상은 비슷했고,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도 서로 들어주고 말도 적당히 많아서 아주 밝거나 어둡지 않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남자는 마음 관리를 위해 일기를 쓴다거나, 스트레스 푸는 특별한 방법을 궁리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 차이점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찾을 수 없자 김이 빠졌다. 그때, 남자 회사에 큰일이 생겼다. 줄줄이 연결된 사람과 일 사이에 끼여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있었다. 처음 힘든 소식을 전할 때, 남자 모습은 다소 힘이 없긴 했지만 평소와 똑같았다. 더구나 답답한 상황에서도 굳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남이야 뭐라 하건 꾸준히 하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억울해 죽겠는데, 왜 그리 담담해?'라고 물었고,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 끙끙거려 봐야 똑같아.'라며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난 비교 관찰을 그만뒀다. 알아 버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내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 이유는 '피하지 않고 그저 흐르는 대로 사는 자세' 때문이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라도, 바람에 따라치는 파도처럼 흐르는 대로 올라가고 내려가며 흔들흔들 살아 보련다. 이 시에서 파도가 향하는 '너'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꿈이 될 수도 있고, 바라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너에게 치는 파도>


항상 눈부시게 빛나는 너를

나는 바라만 보다

보낸다


가끔 바람에 힘껏 치는 나를

너는 바라만 보다

간다 또


오늘도 너에게 가고 싶지만

그저 보며 기다린다

네가 보낼 바람을




우리는 기다리고, 남겨지고, 떠나야 하는 삶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그저 흘러가야 할 때가 있다. 삶은 배려를 담아 우리에게 자세를 선택하게 한다. 하나는 주저앉아 울면서 아프게만 흘러가느냐, 다른 하나는 할 수 있는 걸 찾아 미소를 띠며 흘러가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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