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경문 Jan 24. 2021

딱따구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이유

Be my guest

딱딱 딱딱딱딱딱 딱딱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발걸음을 멈췄다. 딱따구리임을 실감했다

'내가 딱따구리를 본 적 있나?'
'아니'


어떻게 생겼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상상 속에만 있던 존재의 실체를 본다는 사실에 흥분됐다. 설사 본 적이 있어도 기억을 하지 못하니 수십 년이 지났을 터였다. '어디에 있는 거지?' 숲을 치고 들어갔다. '뱀이 나오는 거 아냐?'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딛는 두려움도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한발 한발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몇십 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딱따구리를 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겨울 산행이었기에 나무들은 앙상했다. 그래서 운 좋게 저 나무 위 딱따구리를 발견했다.

"딱딱딱 딱딱 딱딱 딱딱 "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열심히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다.

딱딱딱 딱딱 따다닥. 쪼는 소리에 어떤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귀 기울여보았다.


딱따구리는. 왜 나무를 쪼고 있을까?


집을 만들기 위해서? 앞니가 계속 자라나는 쥐처럼 부리가 자라나나? 어른이 되었는데도 이런 것도 모르다니. 이유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한다.


딱따구리가 열중하는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무줄기를 뾰족한 부리로 세게 내려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주변 나무의 군데군데가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아마 그가 범인인 듯하다.


잠시지만 그 열정적인 모습에 매료되었다. 신비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신비한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기쁨이 느껴졌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새로움이었다. 순간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아, 어릴 적에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새롭게만 느껴졌는데'

나이가 제법 든 이후로 웬만한 것들은 감흥이 없다.




난 딱따구리와 대화를 시도했다.

"안녕, 너 그거 왜 두드리고 있는 거야? 머리 아프지 않아?"


딱따구리가 내게 말한다.

"딱따다 따다닥 딱 딱따다 딱닦닥 다다따"

통역하면 이랬다.


너희도 아파할 줄 알면서 사랑을 하잖아



어떻게 통역했냐고?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고양이와 대화하는 '나카타'라는 노인에게 동물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그렇다 치자)


우문현답이로군. 우리는 떠날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지. 엄마와의 사랑도 결국엔 헤어짐으로 끝나지. 사랑하는 인연과의 만남도 그렇고. 자식들과의 사랑도 영원할 순 없지. 우린 유한한 존재니까

우리도 아파할 줄 알지만 사랑을 한다


왜 꼭 머리가 아프게 그렇게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뇌 구조상 머리도 안 아프다고 한다.)

우리는 의미가 없다고 고생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우리 생각이다.
그에게는 즐거움일 수도 삶의 의미일 수도 있다.


오히려 새의 눈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땅 위 붙어 있는 우리. 아침부터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이렇게 말한다.  '왜 그렇게 바빠?'


컴퓨터나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넌 말로는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네모를... 사랑하는구나'


딱따구리는 나에게 말한다


관심 끄고 네 인생에 집중해(Be My Guest)


딱따구리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나무를 계속 두드렸다.







인간들이 파악한 '딱따구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이유' 는 아래와 같다.

하나,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아 나무껍질 안에 있는 먹이를 사냥한다.
둘,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는 소리를 통해 소통하거나 이성을 부른다.
셋, 둥지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경우에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모를 일이다.

직접 대화를 통해 알아본 바가 아니므로.



이전 20화 실패하더라도 오래 좌절하지 않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