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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y 08. 2024

29화. 어버이날 선물은 독립!..이라 하고 싶다.

중학교 동창의 결혼이 불러온 나비 효과

요 며칠 엄마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붙어있었지만 이렇다 할 짜증이나 불평은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느샌가부터 만사가 다 귀찮고 의미 없는 듯했다.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잦아졌고 기분이 널뛰기를 하며 어떨 때는 너무 좋고 어떨 때는 너무 안 좋아 보였다. 애써 모른 척해도 난 그 시발점을 알고 있었다. 바로 내 중학교 동창의 결혼식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거나 연락을 하진 않아도, 엄마끼리는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딱히 동네 친구가 없는 엄마에게 그분은 한 달에 한번 만나 등산을 가는 등산 메이트이자, 고민거리에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인생 후배이자 미니 텃밭에서 경작한 채소를 푸짐히 나눠주는 고마운 지인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엄마는 근래 다녀온 수많은 결혼식처럼 깔끔하게 준비해 결혼식을 다녀왔다. 괜히 어설프게 아는 동창을 만날까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나는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른다. 그저 그 안의 상황이 엄마를 자극했다는 것만 알 뿐.


엄마는 결혼식에 돌아오자마자 지쳐 소파에 누운 채였다. 운동에서 돌아온 내가 그 모습을 보고 하객이 많아 기가 빨렸냐고 물었지만 이미 그때부터 알았다. 엄마의 심기가 상당히 뒤틀렸다는 것을. 하지만 그걸 직격으로 물어봐야 나한테 좋을 것도 없으니.. 모른척하고 다른 이야기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의 원점은 계속 결혼식으로 돌아갔다. 결혼식에서 아버님이 우시는 걸 보고 엄마도 눈물이 났고, 하객으로는 친구의 직장 동료들이 많이 왔고.. 그러다가 빵! "너도 빨리 나가!!!!!" 결국 그 얘기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이 이야기가 끝나려면 이 문장이 나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럼 내쫓든가!!!" 하며 응수했지만 집에 있는 동안 너무 잘해줘서 안 나간다는 둥, 앞으로는 잔소리를 해야겠다는 둥 엄마의 혼잣말에 울컥 눈물이 흐를 뻔했다. 그랬는데.


엄마가 화장실에서 빨래를 철벅철벅 쳐대는 동안 정신을 수습하고 생각을 해봤다. 아니 내가 왜 울어? 내가 왜 화가 나? 만일 결혼을 위해 뭐라도 노력한 게 있으면 억울해서라도 눈물이 나겠지만 일평생 살며 결혼을 위해 한 거라곤 하나도 없다. 독립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여러 이유로 독립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긴 하다만 이제껏 나름의 상호 동의하에 이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엄마의 분풀이 하나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이 나로 인한 것이라 생각해야 해? 그래봤자 나만 손해고 잠들어있던 내 자격지심에 불을 붙이는 꼴이다.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 마침 언니에게 전화가 왔기에 "엄마가 결혼식 갔다 와서 갑자기 나보고 나가라고 성질내. 그치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 애초에 결혼할 맘도 없었는데 기분 나쁠게 뭐야? 그 정도로 멘탈 털리기엔 난 강해!"라고 조잘거리며 하나의 에피소드로 종결을 지어버렸다. 후. 결혼식 가지도 않았는데 기가 다 빨려.


마침 다가온 어버이날, 사실 내가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은 독립이었다. 어버이날은 명분이고 그냥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일 수도 있다. 근데 올해도 영 그른 것 같죠잉.. 사람들은 어버이날 선물로 용돈이다, 금이다, 꽃이다 한다는데 정작 엄마아빠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할 수 없으니 영 흥미도 시들하다. 차라리 그 돈 빨리 모아서 독립하는 게 선물이고 효도 아닌가 싶고. 이번 어버이날은 또 이렇게 흘러가려나. 언제쯤 독립을 선물로 안겨줄 수 있나. 그날이 오면 이 글도 웃으면서 읽을 수 있나. 제발 그랬으면.


+ 결국 올해 어버이날 선물로 용돈으로 드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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