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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Oct 25. 2023

1화. 나는야 새끼 캥거루

독립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31세.

31세 여성.

31세 여성 (프리랜서라 우기는) 무직.

31세 여성 무직 미독립.


이걸 보는 사람들은 세 번째 줄까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보다가 네 번째 줄에서는 조금 갸웃거린 후 ‘무직’과 ‘미독립’ 이 두 단어를 인과관계로 이어 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 다닐 때도 직장에 다닐 때도 독립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지난 31년간 착실히 엄마아빠의 품에서 꾸물거리며 붙어 살아온 ‘캥거루족’이다. 캥거루족이었던, 아니 캥거루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가장 큰 이유는 엄마 아빠가 그걸 지금까지 ‘허락했기 때문’이다. 부수적인 이유는 내가 독립을 원하지 않아서이고.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의아해했다. 나는 주위 그 누구보다 자신만의 시간을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라 오히려 빠르게 독립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놀랍다는 식이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아무리 내 평생 모든 모습을 보여준 엄마 아빠라고 해도 개개인으로 따지면 결국 남이고, 정말 미치도록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은 저녁 시간을 방해하는 아빠의 요란한 드라마 시청 타임은 가끔 사람을 돌게 만든다. 나이 서른이지만 여전히 내 속옷 빨래를 하는 엄마를 보면 민망스럽고 미안하고, 딱 내 나이 이맘때쯤 결혼을 결정해 현재 형부와 조카와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 엄마를 흐뭇하게 하는 언니를 보면 결혼으로라도 독립을 해야 되는 건가 혼란스러워진다. 


가족 관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독립할 다른 이유들도 충분하다. 몇 시에 일어나 하루를 어떻게 보내도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 내가 손수 고른 가구들과 집기들로 집을 채워나가는 로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 매 끼니를 먹고 싶은 배달 메뉴로 장식해도 상관없다는 것 등등.. 대학 시절 지방에 본가가 있어서라든가 취직 후 출퇴근에 드는 시간이 너무 길어 반드시 자취를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 정말 독립을 위한 독립을 한 친구들은 다들 흡족해했다. 본인 생활에 터치할 사람 없고, 오히려 가족은 멀리 있을 때 더욱 애틋해지는 게 ‘국룰’이라고. 그니까 여건 될 때 어서 빨리 나오라고.


근데 왜 나는 독립을 하지 않았는가. 일단 경제적인 여건이 있을 수 있겠다. 요즘 전세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월세도 천정부지로 오르는 통에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독립을 위한 돈을 모을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독립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멋진 옷을 사 입었고 맛있는 걸 사 먹었다. 그럼 불편한 게 없어서 안 했나? 그것도 아니다. 대학 때는 엄마 아빠가 감사하게도 서울로 이사를 해주어 학교 다니기가 보다 수월했지만 졸업 이후 다시 경기도로 돌아왔기에 취직 이래로 통근시간이 한 시간 반보다 적었던 적이 거의 없다. 매일마다 전쟁 같은 지하철에서 혼이 쏙 빠지며 거지 같은 일호선을 욕했지만 그때도 내 분풀이 대상은 철도공사였지 우리 집은 아니었다.


그럼 대체 왜 독립할 생각이 없었냐? 하면 그럴 이유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기로 한 이상 내가 고른 직장의 위치는 내가 감내해야 하는 책임 중에 하나로 생각했기에 그건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멀리 가야 할 일이 있다면 자차로 이동하면 되기 때문에 그도 문제가 없었다. 엄마 아빠가 고른 지금의 집이 인테리어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손을 절레절레 저을 공포의 체리몰딩이라도 나는 상관없었다. 이쯤 나이를 먹어도 가끔 엄마아빠가 소리 높여 다툴 때 겁이 와락 나지만 그것도 괜찮고 화장실 채수 구멍에 낀 엄마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휘저어 버려야 할 때도 그런가 보다, 한다.


언젠가는 한 번쯤 혼자 살아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아빠는 언니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서른 살에는 꼭 독립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는 서른 살에 결혼으로 출가를 했고, 나는 이미 서른을 넘어버린 올해의 내가 독립을 해낼 수 있을지 연말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도 잘 모르겠다. 언제까지나 부모님이 나와 함께일 수 없다는 걸 알고 내가 또래보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나이브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은 엄마 아빠의 시간 속에서 그 흐름을 함께하고 삶에 간섭받는 것이 사랑이라고 느껴진다. 엄마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장난치며 깔깔대고 아빠가 보는 드라마에 열 마디는 참견하다 면박받는 것도, 생소한 저녁 메뉴거리를 사들고 가서 엄마 아빠의 반응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언젠가 물리적인 독립 말고 온전히 정신적인 독립은 하더라도 지금 이 시간들이 나를 지탱해 줄 것임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자청해 엄마 아빠 사이에 부대끼며 정답게 살아간다.


*일상의 한 장면

나:(운동 중에 파리가 뺨을 치고 지나감) 아!! 저 파리가 내 싸대기 때렸어 엄마!!!!

엄마: 아유, 사람들도 많은데 그냥 조용히 지나가면 되지 뭘 그리 시끄럽게 굴어!

-잠시 후-

엄마:(팔을 휘두르며) 여기 벌레 너무 많네!! 감히 우리 딸 싸대기를 때려!! 여기 조심하면서 와!!

나: (든든/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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