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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Nov 01. 2023

2화. 캥거루는 좋은데 강아지는 싫다

서른에 똥강아지 취급이라니

오늘은 우리 집에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날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드럼 세탁기!  평생 통돌이 세탁기를 사용해 온 엄마가 세탁물을 집기가 너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날따라 신경이 예민했던 아빠는 “평생 남들 써보는 드럼 세탁기 한번 안 써볼 테냐” 역정을 내며 그날로 드럼 세탁기를 주문했다. 그 피나는(?) 역사를 알리 없는 드럼 세탁기는 그 순진무구함만큼이나 새하얀 자태를 뽐내며 우리 집에 입성할 터였다.


이 글을 쓰게 된 발단은 원래 2주 정도 걸린다고 한 배송기간이 갑자기 확 당겨져 오늘로 정해진데 있다. 요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엄마는 오전 중에 집을 비우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받을 수가 없었고, 나는 당연히 집에 있는 내가 받겠지 어림짐작을 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출근했던 아빠가 세탁기를 수령한다고 집에 온다고 하는 게 아닌가. 좀 황당했다. 내가 무슨 “집에 어른 계시니?”라고 누가 물으면 “제가 어른인데요”라고 말할 나이는 아니더라도 물건 수령하는 건 할 수 있는 나이 아닌가? 그렇다고 아빠가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못 봤고, 아무렴 그래도 집안살림 관해서는 내가 더 잘 알법한데 엄마 아빠는 그에 대해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했다. 언니한테도 약간의 투덜거림처럼 “내가 무슨 열다섯이냐”라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언니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네가 아직 애인데 어떻게 믿냐고. 내 안에서 황당함이 점차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아빠는 연락도 없이 기사들과 들이닥쳤고 (옷 안 갈아입고 있었으면 어쩌려고!) 정작 와서는 기사들이 세탁기를 제대로 설치하는지 뭐하는지 보지도 않고 핸드폰만 하다가 다시 출근을 했다. 나가면서 세탁기 위에 설치해야 하는 거치대는 본인이 할 테니 엄마 보고 하지 말라고 하라고 하는데 갑자기 왈칵 짜증이 치받아 올라서 “엄마한테 직접 얘기하세요, 나도 중간에서 얘기하는 거 짜증 나니까”라고 화를 벌컥 냈다. 얼떨떨해하던 아빠는 그러냐 하고 다시 출근을 했는데 정작 남겨진 나는 청소기를 돌리며 훌쩍훌쩍 울었다. 대체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건지 울음을 그치고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다들 나를 너무 애처럼 다루는 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가 하는 자기 의심에서 나온 듯하다. 나중에 집에 온 엄마에게도 이야기를 하니 네가 철이 안 들었는데 무슨 어른 취급을 하냐는 식이다.


이쯤에서 내 입장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아니 멀쩡히 4년제 대학 나와서 사회생활을 10년간 해온 사람이 뭐가 그리 철이 안 들었단말인가. 뭐 사회생활 오래 한다고 대단한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생활력은 있다고 자부하고 혼자 해외여행도 보름씩 훌쩍훌쩍 잘 다녀온 내가 뭐가 그리 어설프다고 엄마아빠 그리고 언니 모두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건지. 분노에 쌓여 친한 언니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둘 다 맏딸인 언니들은 즐기라는 분위기다. 한 언니는 본인 동생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를 왜 이렇게 애 취급하고 감싸고도냐, 그럴 때마다나 스스로 모자란 느낌이 든다고. 우리 집의 막내로서 백 퍼센트 공감하는 이야기다. 정작 가족들은 별생각 없이 하는 일인데 본인은 ‘내가 이런 것도 못하는 애처럼 보이나?’하는 느낌을 준다고요!


언니들은 가족들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라고 하는데, 엄마는 오히려 내 그런 입장을 서운하게 여기는 눈치다. 그냥 밥을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는 내가 반찬 투정을 하는 줄 알고, 오늘 혼자 바람을 쐬러 나간다 하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이쯤 되면 이건 정말 애기 캥거루도 아니고 목줄에 매인 똥강아지 수준이다. 어쩌면 독립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일 수도.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의 케어가 아니더라도 혼자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 건 나 자신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일수도 있겠다. 이런 방식으로 독립을 꿈꾸고자 한 건 아니었는데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에서 독립 뽐뿌가 일어나다니, 정말 인생 알 수가 없다.


*일상의 한 장면

나: (과자를 먹으려 꺼낸다)

엄마: 아, 줘봐 너 또 이상하게 뜯다가 다 흘린다

나: 아니라고!!! (힘 조절 실패로 봉지 이상하게 뜯기고 부스러기 날림)

엄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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