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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l 22. 2022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캔디바 색 우산

“저, 아가씨!”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하늘색 긴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 머리에 떨어지는 비를 막은 채 한 남성이 가볍게 뛰어 온다. 가까이서 보니 30대 정도의 젊은 남성인데 비로 인해 머리가 약간 젖었다. 나는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 포기 상태로 서 있었다. 비가 눈에 계속 들어가 간간히 눈을 닦아냈다. 차 안이 습기로 가득 찬 것처럼 갑갑했다.


“저, 나중에 지나갈 일 있을 때 여기로 갔다 줘요.” 하고 나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아! 아니요. 귀찮아서.. 괜찮아요!” 하고 고맙지만 괜찮다는 시늉으로 손을 내저었다. 동료들과 <헤어질 결심>을 보고 한 동료가 데려다주겠다는데 이 정도 비는 맞을 수 있다며 걸어가는 길이었다. 동료가 헤어지기 전 우산을 빌려주겠다는데도 거절한 건 다시 갖다 주는 게 귀찮고 무겁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낯선이의 우산을 받아서는 여기를 또 언제 지나갈 거며 언제 지나갈 줄 알고 우산을 갖고 다니겠는가. 갖다 주기에 너무 번거로워서 싫었다. 집에 다 와 가기도 하고.


너무 젖은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그 남성은 아, 남는 거니까 그냥 쓰고 가요, 하고 손에 쥐어주고 버스로 뛰어갔다. 버스 종점 차고지 근처였는데, 그중에 한 버스의 기사인 듯 보였다.


‘저는 비 맞는 걸 좋아해요. 어차피 집에 갈 건데 시원하게 맞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느낌이 진짜 좋아요,’라고 평소에 말하는 나지만 이 정도는 맞을 비는 아니었다. 이 정도로 올 지 몰랐다.


우산을 쓰니 의외로 기분이 좋아졌다. 낯선이가 깜짝으로 선사한 캔디바 색 우산. 탕웨이가 입었던 노란색 옷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떠올리며 걸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사랑의 아름다움과 깊이와 진정성을 극적으로 극대화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저렇게 적극적인 죽음을 택할 수 있을까. 탕웨이는 왜 이리 연기를 잘하는 거야, 진짜 신비롭고 몽환적이야.


다음날 회사에서 동료들이 비가 많이 오는데 걱정됐다면서 어떻게 갔냐고 물었다. 아, 이 캔디바 색 우산을 길가다 누가 줬어요. 로맨스가 싹틀 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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