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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졔이 Sep 02. 2023

자니?를 안 하려고

작별 9. 폼롤러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 첫 문장을 쓸 때는 맨 앞에 '솔직히'를 적어 넣었고 그다음 그것을 '사실'로 바꾸었다가 결국에는 둘 모두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 생각에 사람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말하면서 굳이 솔직해야 할 필요는 없겠고 그게 사실이라고 강조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솔직해야 하는 쪽은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가. 어떻게 그게 사실로 성립할 수가 있지. 존재 자체가 거짓말 같은 자들이다.




하지만 운동의 효과만큼은 맹신한다. 운동은 언제나 진창에 빠진 나를 끄집어내서 따끈히 마른땅 위로 돌려놓았다. 그러면 나는, 양지바른 바닥에 몸을 누이고 젖은 몸을 말리 아아 이번에도 어찌어찌 살아남았구나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는 것이다.


여태껏 살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히키코모리 신세다 싶어 아찔했던 적이 딱 한번 있는데 그때도 운동이 나를 살렸다. 폐가의 담벼락을 허물거나 타일 바닥을 깨부거나 벽지를 죄 긁어내 페인트를 칠하는 등의 일이었으니 운동이라기보다 노가다에 가깝기는 했지만. 나는 그걸 운동하는 셈 치고 했고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인간으로 기능하기에 충분한 사회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사귀던 친구한테서 결별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 최선을 다해서 잡아도 잡히지가 않았다. 온 동네가 떠나가게 울고 나니까 포기할 마음이 는데… 옆구리를 베어 먹힌 것 같았다. 내 몫의 질량을 누가 한 움큼 뜯어가 버린 것 같은 느낌. 그러나 눈물을 닦고 냉정하게 살펴본 실제의 내 옆구리는 실연에도 불구하고 덜어진 곳 없이, 멀쩡하고 튼튼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까짓 거 이참에 살이나 빼기로.


새벽 두 시에 구남친에게 자니? 따위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으로 전락할 일이 두려웠던 것 같다. 아무리 슬퍼도 그런 품위 없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퇴근을 하면 잠들기 직전까지 윗몸을 일으키고 스쾃을 하고 플랭크 자세로 버티고 온 동네를 뺑글뺑글 뛰었다. 잡다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잠을 잘 수 없고 잠을 잘 수 없는 상태로 새벽 되면 그 애한테 연락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복근이 생겼다. 진짜로 선명한 완전히 복근.


인생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운동을 하러 간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을 하면 구해진다는 믿음은 배신당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갈 때처럼 죽상을 하고. 땀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진탕 몸을 쓰고 나면 말도 안 되게 생생한 허기가 온다. 출출하다 정도로만 표현해도 족할 것을 그간 허기라고 부르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질 만큼의 배고픔이다. 어쩐지 내가 아직 무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는 그 존재가 정말이지 거짓말 같은, 운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잔뜩 있다. 대표적인 게 아빠인데 작년에 환갑을 맞이한 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생애 주기별 운동 종목을 정해 두고 사는 사람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적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퇴근 후에 동호회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친 다음 다시 자전거 귀가했다. 그러기를 십수 년이다가 어느새 족구왕이 되더니 요즘은 당구장으로 마실을 다닌다. 근자엔 당구만으로는 체력 보전이 안 된다면서 가벼운 트레이닝에도 재미를 붙여보려는 듯하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면 탁구를 칠 거라고 했다.


아빠의 유전자를 혼자서만 고스란히 물려받은 모양인지 둘째 동생은 필라테스에 진심이다. 친구 M은 마라톤 풀코스를 몇 번이나 완주한 달리기 대장인데 달리기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등산이라고 해서 나를 경악하게 만든 적이 있다. 오래전 게임에서 만나서 친구가 된 A 언니는 한두 해 전부터 수영에 열심이더니 급기야 적십자에서 발행하는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취득했다. 솔직히 내 눈에는 다들 좀 정상 범주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이나마라도 구제될 수 있었던 데는 주변 환경의 덕이 컸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타폼롤러(90cm)

오늘 버리는 폼롤러와는 안타깝게도 별달리 관계한 바가 없어서 나눌 만한 큰 추억도 없다. 생활이 박살 나기 시작할 무렵 남편에게 부탁해 사 오게 한 것인데 결국 새것인 상태 그대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원래 만 원보다 비싼 물건 만 원에 팔았다고 좋아하니까 남편이 조금 어이없어했. 패인을 분석하자면, 그때는 에너지도 시간도 부족했으니 폼롤러로 하는 운동을 새로 시도해 볼 게 아니라 플랭크나 스쾃 같이 익숙한 운동는 것이 옳았겠구나 싶다.



아빠에게

아빠가 탁구를 천천히 시작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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