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미드 'Grey's Anatomy'에 나오는 대사가 있다. 주인공 매러디스는 결정적인 순간, 무너질 듯한 마음을 붙잡으며 친구 크리스티나에게, 동료 의사 알렉스에게 기대며 이야기하곤 한다.
"You're my person."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터지는 이 병원 드라마의 긴 세월동안, 매러디스는 평생 자신에게 외로움과 아픔을 주기만 하다 떠나보낸 엄마, 끔찍한 사고로 잃은 동생, 너무나 사랑했지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남편... 을 모두 보내고 홀로 남겨진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서고 환자를 살려내는 의사로 살아간다. 이 세상에 처절하게 던져지듯 혼자 남겨진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이다.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그 어떤 순간에도, 누구에게나 기댈 수 있는 존재는 분명히. 있다.
관계같은 거, 다 소용없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철저히 혼자 있고 싶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만큼 헝클어진 문제들을 붙잡고 있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살다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아무도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순간도 맞닥뜨리게 된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이에게 오히려 내 안의 가장 캄캄한 그늘을 보여주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실망할까봐, 나약해보일까봐, 초라해질까봐....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 캄캄하게 내 문제를 끌어안고 혼자 웅크리기도 한다. 이게 어른의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가끔,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머뭇거리며 의견을 구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힘들게 꺼내 놓을 때...
그렇게 나에게 털어놓아주는 것 그 자체로 고맙고, 우리 사이의 관계가 비로소 좀 더 깊어졌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보통 그런 순간, 내가 상대에게 정확한 해답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상대가 원하는 해결의 조언을 적절하게 찾아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게 털어놓는 내 앞의 사람과 그저 같은 마음이 되어 끄덕이며 들어주는 나 사이에 생겨나는 온기로 인해... 그렇게 깊어지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철저히 혼자인 것 같은 나도, 내 문제만으로도 버거운, 작고 초라한 나 자신도 사실은 누군가의 my person, '내 사람'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때로는, 놀라운 경험이다.
그러니까 다시 바꾸어 생각한다면...
'사실은 말이야, 나 이런 일이 있는데 들어볼래?'
...라고 내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한뼘 더 가까와지고 깊어질 수 있는 인연과 관계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