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태풍

헬로, 앤디 1

by SY전서주


‘비가 오고 있었네…’


하늘이 흐린 것이 이상해 우산을 챙겨 나오길 잘했다. 혜진이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다. 물을 머금은 짙은 회색 보도블록은 무겁고 차가웠다. 낮인데도 사방이 우중충했다. 대로변 높은 건물 위 커다란 전광판에 뉴스가 나왔다. 서울은 구름이 끼고 비가 조금씩 내리는 정도였지만, 부산은 심상치 않다고 했다. 태풍이 부산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혜진이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띠 띠리링


<“찐아~.”>


자신을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에 혜진이 미소를 지었다.


“어~ 잘 지내?”

<“아~니~. 잘은 아니고 그냥 지낸다. 그냥.”>


미희는 부산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공무원으로 근무한 지 20년이 넘었다. 부산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릴 때면 처음 듣는 직책을 받아 달고 참여하곤 했다.


<“내가 이번에 시설 관리하는데, 비 오는데 계속 밖에 돌아다닐 생각 하니까 점검이고 예약이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네.”>

“그런 걸 아직도 네가 다 해야 해? 밑에 직원들은?”

<“시켜 먹는 것도 쉽지가 않아. 최종은 내가 내려야 하잖아.”>


미희의 앓는 소리에 혜진의 표정이 안쓰러워졌다. 그래도 영화제는 미희가 좋아하는 행사였다. 애들이 어릴 땐 미희가 영화제 구경시켜 준다고 혜진과 주연의 가족 전부를 부산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은 남편들까지 다 모여 영화제 구경을 했고, 그 후에는 애들이 좀 커서 영화배우를 보고 싶다고 해서, 엄마들이 애들만 데리고 영화제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아이고, 어쩌니. 듣기만 해도 고생이다.”


확실히 오늘은 서울도 좀 쌀쌀한 것 같았다. 휴대폰을 쥔 혜진의 손등이 시리었다.


<“태풍이 오려면 확 와서 아주 다 취소되든지, 일정이 밀리든지 했으면 좋겠다. 나 이제 비 쫌만 맞아도 으슬으슬해서 3일은 누워있어야 하는데.”>


혜진은 동감했다. 나이 50이 넘어서 비를 맞으면 폐렴을 걱정해야 했다. 혜진은 건강 조심하라고 미희에게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 걸음을 재촉한 끝에 혜진은 하늘 꼭대기에 닿을 듯 거대한 회색 건물의 입구에 도착했다. 젖은 우산을 털어 정리한 후 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긴 대리석 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사방이 조용했다. 복도 끝에 불을 켠 사무실이 보였다. 유리 벽에 걸린 예쁜 색등이 반짝거렸다. 혜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혜진도 출근했다. 이곳은 서울도심공항이었다. 인천국제공항처럼 출입국 업무와 세관 업무를 하지만, 비행기와 활주로가 없고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 있으며 규모가 작다는 점이 인천공항과 달랐다. 특수 단체 관광팀이나 주요 인사, 혼잡한 공항을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출입국 절차를 밟았다. 그래서 이곳은 사람들이 몰리는 때를 제외하고는 매우 한가했다.


“오늘 예약이 있어요?”

“한 시간 뒤에 단체관광객 예약이 있어요. 오늘은 그거 하나예요.”


혜진은 폐백실 안 창고로 들어갔다. 화려한 병풍 뒤에 숨겨진 문을 열면 창고였다. 작은 전등을 켜자 아담한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혜진이 입고 온 겉옷을 벗어 벽에 달린 나무 옷걸이에 걸었다. 이제 남색의 정장 바지 근무복 차림이었다. 그녀는 근무복을 입고 출퇴근을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짙은 남색의 공항 근무복을 입었다. 이름이 새겨진 명찰도 가슴에 부착했다.


혜진이 일하는 곳은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도심공항 안에 있는 예식장이었다. 공항 안에 예식장이 들어오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처음 도심공항이 생겼을 땐 지하철이 들어오기 전이었고, 도로 확장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이어서 공항 주변의 차량 통행이 매우 복잡했다. 게다가 공항 건물 1층에 있는 주출입구가 다소 작고 눈에 띄지 않아 방문하는 사람들이 찾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공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새로운 출입구를 찾아 내게 되었다. 바로 공항 건물과 지하로 연결된 옆 건물의 예식장 출입구였다.


공항 옆 건물에 있던 예식장은 지상 1층과 지하 1층이 합쳐져 층고가 높은 데다, 예식장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지상에서부터 지하로 내려오는 멋지고 넓은 대리석 계단이었다. 공항 방문객들은 예식장의 거대한 지상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화려한 계단을 내려와 아름답게 꾸며진 작은 정원과 장식품들을 지나 옆 건물로 이어진 지하도를 통해 도심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이 길로 도심공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곳곳에서 예쁜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통로가 유명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몇 달 후 예식장 주인은 예식장을 공항에 넘겼다. 예식장 사업이 침체기였기에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공항은 새 입구를 단장하기 위한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그런데 예식장과 폐백실은 없애지 말라는 의견이 계속 들어왔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복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는 체험이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항은 예식장은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폐백실엔 공항 직원을 배치하여 방문객들이 한복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예식장을 공항에 넘긴 주인은 폐백실 집기들과 쌓아 두었던 한복도 함께 공항에 팔 수 있어서 좋아했다. 혜진이 병풍 뒤 창고에서 나왔다. 함께 근무하는 공항 직원은 책상에 앉아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예약이 다 취소되고 하나 남았어요.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가…”


직원의 말에 혜진의 시선이 폐백실 구석에 켜져 있던 작은 티브이 화면으로 향했다.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혜진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걱정했던 것보다 태풍은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곧 화면 속에 익숙한 장소가 등장했다. 영화의 거리였다.


“……”


바로 저곳에서 승우가 어릴 적, 남편과 친구들과 아이들 모두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었었다.


‘아빠, 이거. 이거 들어줘.’


승우가 들고 있던 뜨끈한 호떡이 담긴 종이컵을 받아 등 뒤로 숨긴 채, 사진을 찍으려 어색하게 웃던 종훈과, 호떡을 돌려주기 전 한 입 뺏어 먹었다고 좋아하던 그의 턱에 묻은 꿀을 닦아주었던 것까지 기억나는 데는 순식간이었다. 티브이 화면을 보는 혜진의 표정이 말없이 굳어졌다. 이렇게 갑자기 솟아나는 오래된 기억은 진짜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하늘은 분명히 참 파랬다. 티브이 화면 속 저런 모습은 아니었다. 한낮인 데도 어두컴컴한 부산 하늘 아래, 영화의 거리에 걸린 국제영화제 깃발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꺾어질 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미 고여 있던 물웅덩이로 굵은 빗방울들이 무겁게 떨어졌다. 혜진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혜진은 미희가 부디 오늘, 내일만큼은 어디든 실내에서 근무하게 되기를 바랐다. 혜진이 말했다.


“부산은 태풍이 저렇게 다 올라왔는데, 서울은 조금 흐리기만 하네요. 작은 나라인데 날씨가 이렇게 달라요.”

“그러게요. 내일부터 영화제라던데, 어떻게 하려나. 직원들 고생깨나 하겠어요… 아참, 조금 있다가 올 단체 관광객들이 외국 학생들이래요.”

“학생들이요?”

“네. 여기서 무료로 한복 사진 찍어주는 게 외국까지 소문이 났는지, 어디 유명한 학교에 학생들이 단체로 예약했대요.”

“그래요? 어느 나라에서 온대요?”

“저~기 밑에 어디인데… 아까 어디라고 했더라?”


삐삐삐삐 삐삐삐삐


폐백실 인터폰이 울렸다. 직원이 책상 위 인터폰을 받았다.


“서울도심공항 폐백실입니다. 네, 네… 맞습니다…”


직원이 통화하는 사이 혜진은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작은 드레스룸 안에는 혜진의 키만 한 옷걸이들이 여러 개 있었다. 옷걸이엔 고운 한복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그녀는 옷의 치수를 확인하며, 학생들이 입을만한 것들을 하나씩 골라내었다.


지금은 서울 한 복판에서 일하고 있지만, 혜진이 처음 근무를 시작한 곳은 인천국제공항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집에만 있던 혜진을 승우가 걱정했다. 혜진도 자신이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애써도 마음을 달랠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다. 어떤 날은 몸을 가눌 힘이 조금도 없었다. 눈을 꼭 감고 하루 종일 자듯 누워있기도 했다.


“엄마, 인천공항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계약직 일자리를 만들어서 제공한대. 해보실래요? 엄마, 공항 좋아하잖아?”


그래, 맞다. 공항을 좋아했다. 그런 적도 있었다. 둘이 있었고, 그다음 셋이 되었던 그날들에.


“어때요, 엄마?”


혜진은 천천히 일어나 앉아, 앞에 있던 승우를 보았다. 아들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그를 닮은 승우의 옅은 미소는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아이의 마음속에 셋이 함께했던 그 좋았던 날 중 하나가 피어났다는 것을. 그것을 무심히 밟아버릴 수는 없어, 혜진은 거짓말을 했다.


“괜찮을 것 같네.”


승우가 기뻐했다. 근무시간은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네 시간이었다. 월급이 매우 적었는데, 그 정도만 받으면서도 영어를 할 수 있는 혜진에게 유리한 자리였다. 근무가 결정되자 승우는 학교 시간표를 혜진에게 맞춰주었다. 혜진이 출근하는 날에 인천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주고, 먼 길을 다시 돌아가 등교했다. 퇴근은 지하철로 혜진 혼자 했다. 한 시간 넘게 와야 하는 길이었지만, 지하철에 앉아 사람들도 보고, 휴대폰으로 필요한 것을 사거나 영상을 보면 잡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다. 일을 시작하자 혜진은 조금씩 달라졌다. 일을 하는 날이면 일로 바빴고, 쉬는 날이면 일하는 날 하지 못했던 나머지 것들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일할 땐 주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쉬는 날엔 한강 다리를 건너 저 멀리까지 다리가 아프도록 걸었다. 다시 돌아가기 겁이 날 정도로 멀리 걷고 나면, 집에 너무나 가고 싶어졌다. 때론 그렇게 들어가기 싫던, 그 빈 집에.


혜진이 인천공항에서 처음 한 일은 외국인의 출입국 서류 작성을 돕는 것이었다. 나이가 많은 외국인 방문객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누군가가 도와줄 때 더 편안해했다. 그 기분이야 혜진도 수없이 느껴본 적 있는 터라 작은 보람도 있었다. 그를 생각나게 하는 모든 것 중에 한국어도 있었던가? 다른 나라 말을 하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 혜진은 자신과 삶의 교집합이 없는 사람들 속에서 드디어 숨을 조금 쉴 수 있게 되었다. 일도 사람도 익숙해질 즈음 3개월의 계약이 끝났다.


“도심공항에서 일을 계속하시는 건 어떠세요? 페이는 지금보다 더 낮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시면 그쪽에 얘기를 해볼게요.”


혜진을 좋게 봐준 공항 직원 덕분에 장소는 바뀌었지만 일은 계속 이어 갈 수 있었다. 이제 도심공항에서 일한다고 하자 승우는 집 근처라 더 낫다고 좋아했다. 혜진도 긴 출퇴근길에서 벗어나니 좋았다.


“근데, 엄마. 하고 싶어서 하시는 거 맞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엄마 원하는 대로 하세요. 누가 힘들게 하면 바로 그만둬버려. 알았지?”


승우가 혜진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혜진은 그런 승우가 예뻐서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 맞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


얼마나 다행인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될 자유, 언제든 어디서든 원치 않으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혜진은 이제 가졌다. 가져도 될 나이이고, 가져도 될 만한 삶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이, 막상 이런 자유가 생기자, 이 자유를 이 세상에서 누릴 생각은 옅어지고, 혜진은 자꾸 다른 세상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 말고 그가 있는 세상. 나무 기둥에 단단히 묶여 어디도 갈 수 없이 바람에 펄럭거리기만 하던 풍선이 드디어 저 언덕 위로 날아갈 수 있게 묶인 실이 풀렸을 때, 그때에는 이미 사랑했던 것들이 더 이상 이 땅 위에는 없어서, 풍선은 눈을 감고 바람이 올려주는 대로 높이높이 올라가고만 싶었다. 계속 오르다 간 펑 터져버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차라리 그렇게 사라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세상에 묶어주던 것이 이제 없다는 게, 너무나 자유롭기도 또 아득하게 외롭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서 지금 가봤자, 그 사람은 화만 내겠지.’


당분간은 이 공항에 내 두 발을 좀 묶어 놔야겠다고 생각하며, 혜진은 마루에 가득 쌓인, 단체 손님들이 벗어 두고 간 한복들을 접기 시작했다. 폐백실은 입구 옆에 있는 조그만 직원용 책상과 그 맞은편의 좁은 의자 몇 개와 작은 탁자를 제외하고는 전체에 무릎 높이의 마루가 깔려 있었다. 짙은 색의 나무 마루 끝에는 멋스러운 자수를 놓은 5폭 병풍이 있었고, 그 앞엔 노란 바탕에 초록 테두리를 두른 두꺼운 보료와 귀여운 다리가 달린 다과상이 있었다. 마루 양쪽에는 그리 높지 않은 은빛 자개장이 쪼르륵 놓여 있었는데, 자개장 서랍 안에는 갖가지 한복 장신구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관광객들은 드레스룸에서 한복으로 갈아입고 마루에 올라와 사진을 찍었다. 서비스로 짙은 옥빛 잔에 따뜻한 녹차를 담아 대접하면, 관광객들은 찻잔을 들고 즐겁게 셀카를 찍었다. 사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혜진이 고운 색의 한복들을 한창 접고 있을 때, 찻잔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온 직원이 말했다.


“오늘 제가 좀 일찍 들어가야 해서, 저 이만 퇴근할게요. 한복 정리 오늘 다 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일 제가 좀 일찍 나올게요. 내일같이 접어요.”


그런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라고 직원을 보내고, 혜진은 폐백실 귀퉁이에 있던 작은 티브이를 켜고 남은 한복을 마저 접기 시작했다. 빈집에 한 시간 먼저 들어가나 한 시간 늦게 들어가나 차이도 없었다. 저녁 무렵 도심공항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항 옆 건물인 이곳 지하는 더욱 그랬다. 넓고 웅장한 지하 예식장은 외롭고 어둡고 고요했다. 어둠 속 홀로 불 켜진 작은 폐백실엔 티브이 소리만 낮게 울렸다. 가지런히 접힌 형형색색의 한복 저고리가 혜진 옆에 쌓였다. 티브이 화면 밑에 노란색의 굵은 뉴스 속보 글자가 지나갔다.


<태풍의 영향으로 부산국제공항 오늘 저녁부터 운영제한>


건물 지하에 있어서 그런가 날씨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부산에는 태풍이 올라왔구나 생각하며, 혜진은 자개장에 머리 장식을 정리해 넣었다.


‘비가 아까보다 많이 오려나?’


바닥에 있던 치마저고리를 갈무리하는 동안, 티브이에선 매일 보던 드라마가 끝나고 광고가 나왔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폐백실 인터폰이 울렸다. 혜진은 출입문 옆 책상으로 걸어가 인터폰을 받았다.


“서울도심공항 폐백실입니다."

<“아직 계셨네요? 다행이에요.”>

“안녕하세요? 이 시간까지 퇴근 안 하셨네요? 무슨 일 있나요?”

<“지금 VIP 손님이 오셔서 여기서 입국 심사를 했는데, 공항 밖으로 나가실 수가 없어요. 잠시 폐백실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대기하시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

“네…”


정리는 덜 되었지만, 재빨리 치울 정도는 되었다.


“손님이 많으신가요?”

<“아니요, 두 분이세요. 삼십 분 정도만 계시면 될 거예요.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혜진의 마음이 바빠졌다.


‘갑자기 VIP가 여기로 온다니…’


티브이를 끄고 혜진은 마루에 펼쳐져 있던 한복 치마들을 두 팔 가득 집어 드레스룸 바닥에 쌓아두고는 드레스룸 문을 닫았다. 옷이 있던 곳이라 먼지가 너무 많은데 어쩌나 생각하며 다과상과 자개장 위의 먼지를 닦았다. 정전기 청소포로 마룻바닥을 대충 훔치고 나자 멀리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창고 안에 있는 청소 도구함에 밀대를 넣고, 문 옆에 달린 전신 거울을 보며 자신의 근무복을 점검한 뒤, 혜진은 폐백실 밖으로 나갔다. 길고 어두운 지하 통로 끝에서 걸어오는 세 사람의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맨 왼쪽은 공항 직원이었고, 나머지 둘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가운데에 키가 유달리 큰 사람이 있었다. 정장 차림인 것으로 보아 남자인 듯한 그는 한쪽 팔에 코트를 걸치고 나머지 손으로는 여행 가방을 끌며 걸어오고 있었다. 조용한 복도에 구두 소리가 낮게 울렸다.


‘저 사람이 VIP구나.’


조금 전에 인터폰으로 통화할 때는 급박한 일처럼 들렸는데, 셋 다 조급하지 않은 편안한 걸음걸이였다. 폐백실의 밝은 조명을 받아 셋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공항 직원 옆의 둘은 외국인이었다. 세 사람이 혜진 앞에 멈춰 섰다.


“안녕하세요. 이분들이 잠시만 여기서 기다릴 수 있게 해 주세요.”


친절한 공항 직원이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혜진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이 VIP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그때 혜진은 자신이 앤디 코넬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있게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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