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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an 08. 2025

트라우마라는 시간 여행

아침에 현관문을 나서는데, 분명 눈에 보이는 건 낙엽과 반 이상 헐벗은 나무들의 가을의 어느 날의 풍경인데, 아직은 찬 바람과 따스한 햇살의 조화와 아득한 흙냄새를 맡으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어느 계절의 근사한 아침 같다.


요 며칠 아픈 부분이 눌린 탓에 몸과 마음이 제멋대로인 증상을 앓았다.


과거와 묘하게 비슷한 상황에서 나는 또 한 번 트라우마라는 시간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한창 몸과 마음이 뜨겁고 열정이 넘치던 시절, 나는 어린 아기와 내 성장 그 사이 어디에선가 씨름 중이었다. 대학 졸업 직후 이렇다 할 도전도 없이 멋도 모르고 아이부터 낳았기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린 아이와 함께 나의 커리어도 같이 키워야 했다. 밑천도 없는 내 커리어에 아기도 함께 키운다는 건 말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엔 여러 역할 갈등에 휩싸인다. 커리어가 아무리 특출난 여성이어도 임신과 출산으로 커리어가 멈추는 것뿐 아니라 온 세상이 바뀐다. 다른 이들에 비해 항상 시간과 마음은 부족하고 거기다 어떤 일을 하다가 나오는 게 태반이며, 가족들의 심적 물리적 지원 여부를 떠나 그들로부터 '애 엄마가 이런 걸 하면 되나,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냐, 애를 봐야지' 등의 몹쓸 말마저 들으면 가뜩이나 아이에게 맞춘 나의 세상을 갉아먹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없고 아이만 있는, 내가 원하는 세상과 아이를 위한 세상 사이에서 점점 나를 잃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부여잡아야 하는 일이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알게 된,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과 이른 아침 브런치를 먹었다. 얼마 전 나의 건강 회복과 근황에 대해 안부 겸 메시지를 드리니 회복한 기념으로 파티를 하자며 성사된 8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나는 평소 누군가와 만나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5년 전 캐나다에 온 이후 곧 코로나가 터졌고, 코로나 시국에 취업해 100% 재택이라 사람들을 사귀기 어려웠지만 이후 이어진 병가로 인해 스스로 사회적 고립을 자초했다. 어딘가에 소속된 것도 아닌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한 달 내내 가족들 외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사람들을 통해 에너지를 얻던 내가 이런 운둔 생활을 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오랜만의 외출에 거기다 좋아하는 분과 한창 무르익어가던 이야기 속 갑자기 드륵, 진동이 울린다. 아이였다. 갑자기 아프다며 30분 안에 데리러 오란다.


그렇게 부리나케 기쁜 만남을 정리하고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또 그렇게 10년 전으로 떨어졌다. 일하던 도중, 즐거운 만남 등 내가 더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마다 아쉬움을 부여잡고 아이를 돌보러 부리나케 자리를 떠나야 했던 여러 날들이 지나갔다. 나는 다시 트라우마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의 울부짖던 날들 중 어느 날로 돌아갔다.


처음엔 이 마음이 뭔지 몰랐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인사를 마친 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이 순간순간 속에서도 감사함을 찾으며 아이를 달래며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려는데 속상한 마음을 애써 농담과 웃음으로 날려버리려고 하지만, 보채고 짜증 내는 아이에게 나도 짜증 낼 순 없고 그저 꾹 참으니 상처받은 곳이 욱신대기 시작했다.


모든 건 아이가 이긴다. 아이 앞에 무너진다. 마음 편히 속상하지도 못한다, 죄책감이 찾아오니까. 아이가 아픈 상황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것마저 이기적인 것 같아서.


그리고 이틀간 아이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로 인해 내가 기대했던 또 한 차례 다른 분과의 만남도 무너지니 내 마음이 송곳처럼 여기저기 툭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이렇게 날뛰니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람에 속절없이 날리는 낙엽처럼 내 마음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내 감정이 뭔지 모르겠는데 마음이 참 아프고 힘들었다.


그 마음을 알아챈 건 이틀이 지난 저녁, 가까스로 샤워를 하고 난 후였다. 아플 때 쌀국수를 찾는 아이와 함께 간 베트남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매운 쌀국수를 시켜 눈물 콧물 빼니 이게 뭐라고 어지러운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어제는 남편의 출근길에 동행하며 나의 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묵묵히 듣고 있던 남편이 손을 잡으며 '내가 문제 해결하는 말 하지 않아 다행이지?'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 뼛속까지 엔지니어인 남편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해결책을 잔뜩 늘어놓기 일쑤라 가뜩이나 상한 속을 더 뒤집기에 그런 그가 이번엔 테라피스트처럼 굴다니 그 변화가 경이롭다.


그래, 이렇게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면서 또 살아가는 거지.


한때는 트라우마가 없는 다른 이들보다 이런 고요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마저 더 많이 애써야 한다는 사실에 못 견디게 억울하기도 했다. 실제로 불편이 따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이런 내가 좋다. 과거의 상처 덕에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내가.


윗부분은 가을이 내려앉고 아랫부분은 아직 푸르른 두 계절 사이에 존재하는 반쯤 물든 나무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나는 온전한 색의 나무로 넘어가는 중이다.



#라이팅게일 #병가일기말고 #활주일기_7

#You_Will_Never_Walk_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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