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학위 수여라는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부모님께 교직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알릴 차례였다.
어느 평일 저녁에 나는 친정집으로 찾아가, 흡사 고해성사를 하듯이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준비한 말을 전했다.
“이제 더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겠어요. 일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니. 분명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나는 부모님의 기대와 어긋난 길을 가기로 한 결정에 분명하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어쩌면 이 일로 가족과의 연을 끊어야 할 수도 있다는 비현실적인 공포감까지 더해져 말을 하는 내내 심장이 요동쳤다.
자식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부모님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먼저 정적을 깬 사람은 아버지였다.
“직업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아무래도 우리가 이제껏 너를 잘못 키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말을 마치고서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해요.”
“정말이야! 너에게 크게 실망했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눈물을 흘리며 일그러진 어머니의 얼굴 위로 십여 년 전, 임용 시험에 합격했던 날의 장면이 겹쳤다. ‘우리 딸,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라고 했던 다정한 말과 함께. 이제 그것을 잃었다고 생각하자, 발밑에서 나를 지탱해주고 있던 지지대가 푹 꺼져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궜다. 어린 시절, 아버지 앞에서 그림을 내보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로부터 며칠 뒤에 처음으로 정신과 의원을 방문했다. 감정조절 기능이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면서 혼잣말로 욕설을 중얼거린다거나 남편과 별것 아닌 화제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아무 맥락 없이 눈물을 흘리는 일이 반복됐다. 병원에서 MMPI검사를 포함한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의사와의 면담을 거쳐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아마 발병은 2~3년 전에 했을 것 같네요.”
“네, 그게 맞을 거예요.”
나는 힘없이 웃으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진단을 받고 나니 차라리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망가진 상태가 확실하게 체감이 됐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 한참 동안 침대에 누워 고장난 채로 배터리가 방전된 로봇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슬프고, 허탈한 심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