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변화 없이 시간만 빨리 간다 생각하는 분들에게
운이 좋게도 자취방 앞에 벚나무가 가득한 하천길이 있어서 생각이 많아지거나 걷고 싶을 때면 하천길로 내려가 산책을 하곤 했다. 하천 위에는 지하철 입구도 있고, 많은 상가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천길에는 딱 벚나무와 길, 하천만 있었다. 그래서일까? 하천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제 여기까지 왔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멀리 걸어왔다. 그런데 하천 위에 있는 인도를 걸어갈 때면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하천으로 갈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 "아직도 여기야? 언제 도착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문득 같은 거리를 가는데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내가 걸어가면서 보는 것의 차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하천 위로 가면 많은 상가와 저마다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 드문드문 세워진 나무와 새 등 볼거리가 참 다양하고 많기에 자연스럽게 걸음은 조금씩 느려지게 된다. 하지만 하천길을 따라 걷게 되면 보이는 것은 오직 나무, 하천, 길 뿐이다. 따라서 하천 위를 걸을 때보다 빠르게 걷게 되어 목적지에 더 일찍 도착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보이는 것마다 신기하고 새로워 자꾸 걸음을 멈칫멈칫하게 되지만, 어른이 되면 이미 거의 다 알고, 바쁜 일상으로 주변의 사물에 관한 관심이 적어지기에 같은 시간 안에서 쉼 없이 달리게 된다. 그렇기에 어른이 되면 시간의 흐름이 어릴 때 비해 더 빨리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사소하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대단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고 다양하게 널려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어릴 때와 달리 그것을 '안다'라고 치부하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결국. 이런 섣부른 판단은 우리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들고, 변화가 없는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 시간만 빠르게 간다며 한탄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일상 속의 무기력함을 극복하기 위해 점차 주변의 소소한 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내 삶의 작은 관심들을 하나둘씩 모으니 하루가 참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무언가를 보며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같은 모양의 하루들이 사라졌다. 때문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개미, 돌아가는 선풍기, 나무에 달린 사과 등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섣부른 판단을 버리고 관심을 가지는 순간, 시간에 여유가 생기고, 매일 다른 모습의 하루들이 느껴지는 밀도 있는 삶의 변화를 함께 경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