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체에 담겨있는 내면
무의식 속에 나타나는 진정한 나의 모습이 궁금할 때면 종이에 이름을 써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이름을 적은 글씨 속에 나의 내면이 담겨 적혀있다.
경험상 움츠러들거나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는 이름이 작게 적혀있었고, 안 좋은 감정을 회복하고 나서 적힌 나의 이름을 보면 전보다 이름이 크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즉흥적이고, 귀찮음이 많은 성격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날려 적는 글씨체는 변하지 않았고 어쩌면 내 이름을 적어 놓은 글씨체는 나의 겉모습과 무의식의 깊은 내면까지 전부 담아 놓은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소한 발견은 놀이동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처음 알았다.
놀이동산의 알바 특성상 같은 놀이기구에서 근무하는 근무자가 시간대별로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서류에 이름을 적은 후 근무를 시작한다. 그래서 항상 서류에는 같이 일하는 친구들의 이름이 다양한 글씨체로 적혀있었는데 문득, 각자 자기 이름을 적어 놓은 글씨체가 '참 그 사람과 잘 어울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이 들어간 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격이 활발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한눈에 보이도록 크게 적었고, 상대적으로 말 수가 적거나 차분한 성격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구석에 작은 크기로 적어 넣었다. 일하는 사람 중 엄청 소심한 오빠는 이름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작게 쓰고, 'ㅇ'을 점찍듯이 써 놓아서 왜 그러냐 물었던 적이 있는데, 오빠는 글씨를 크게 써서 자기 이름이 크게 보이는 게 어색하다고 대답했다. 듣고 같이 웃었지만, 'ㅇ'을 점처럼 찍어놓은 글씨체가 그 오빠와 참 잘 어울렸다.
또 꼼꼼한 성격에 뭐든 꼼수 없이 배운 대로 일을 하는 친구들의 글씨는 항상 반듯하고 글자 간의 간격도 일정했지만 나처럼 즉흥적이며 털털한 성격의 친구들의 글씨는 대부분 갈겨쓰거나 자음과 모음을 이어서 쓴 글씨체였다.
대부분 어렸을 때 글자를 배우는 단계에서 쓴 글씨체는 다 비슷하다.
아마도 책에 나온 한글의 정석대로 따라 쓰며 글자를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본의 글씨체에 제 각기 다른 삶의 경험과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성격을 더해서 자신만의 글씨체를 계속해서 만들어간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비슷한 글씨체는 있어도 똑같은 글씨체는 없는 것 같다.
요즘 과학적인 방법으로 나의 내면을 살피는 검사들이 많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끔은 소소하게 어딘가 적힌 내 이름의 글씨체를 살피면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글씨체는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과 형성된 자아를 살짝 보여주는 매개체가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 내면을 가졌기에 저 글씨체로 내 이름을 써 내려가는 것 일까?
문득 궁금해진다.